광장을 빠져나오자 형 둘은 타고 온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나는 남은 형의 손아귀에 어깨 한 쪽을 저당 잡힌 사람처럼 낯선 길을 따라나섰다. 가까이서 올려다본 형의 흉터는 훨씬 더 길고 깊었다. 무성한 소문처럼 정말 10대 1 싸움 끝에 생긴 흔적일지도 몰랐다. 느리게 걷는 걸음 뒤로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두 대의 바이크 소리가 발목을 조여왔다.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는 작고 단단한 감옥 같았다.
이윽고 걸음을 멈춘 곳은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 골목이었다. 따라붙던 바이크마저 시동을 꺼 버리자 사위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모두가 죽은 듯 잠든 시각. 아스팔트 바닥을 훑는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가로등 불빛이 기운 없이 깜빡이는 골목 안 쪽, 드문드문 세워진 바이크들의 형상이 보였다. 형들은 게 중에 몸체가 가장 크고 힘 좋아 보이는 바이크 앞에 멈춰 섰다.
“그냥 시동만 걸어주면 돼. 너 잘 하는 거 있잖아.”
“이거요?”
“그래. 딸딸이 실력 좀 가까이서 보자.”
비릿한 웃음이 형의 얼굴에 패인 흉터를 따라 균열을 일으켰다. 늘 하던 일이었다.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키를 꽂고, 손을 몇 번 움직이고, 정확한 타이밍에 스냅을 걸고, 엔진이 살아나면 끝. 그런데 그 끝이 나를 전혀 다른 세계로 끌고 갈 거라는 것만 같았다. 미친 듯이 쿵쾅대는 심장과 달리 차갑게 식어가는 손끝이 연신 저릿거렸다. 주머니 속에서 손이 죽은 듯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욕되게 쏟아지는 무언의 압박에 바이크로 걸음을 옮기는 그 때, 키 큰 형이 내 손을 낚아챘다.
“야, 잠깐. 오늘은 이걸로.”
손바닥 위에 작은 쇳덩이가 올려졌다. 부러 모서리들을 갈아낸 것 같은 조악한 모양의 열쇠였다. 어떤 키박스건 매끄럽게 꽂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보면 녹슬고 낡은 폐기물 쓰레기 같았지만 내 눈에는 곳곳에 상당히 공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이렇게까지 준비를 했다고. 이 바이크가 뭐길래.
“새끼, 쫄았냐?”
“그게 아니라 …….”
“졸라 비싸게 구네. 일단 걸기나 해. 우리가 알아서 할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차갑고 거친 열쇠가 손바닥을 파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바이크에 다가가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앉았다. 마치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열쇠가 키박스 안으로 단숨에 밀려들어갔다. 익숙한 감각. 꽂고, 흔들고, 낚아채고. 단숨에 엔진이 울음을 터뜨렸다.
“야! 씨발, 진짜 됐다?”
“딸딸아, 니가 오늘 신세계 열었다.”
귀에 이명이 울렸다. 환호하는 형들의 존재감이 돌멩이처럼 옅어졌다. 주인 없는 바이크가 요란하게 살아난 모습을 보며 심장이 서늘해졌다. 동시에 아주 조금, 달콤했다. 학교 운동장, 하교 길,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던 오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맨 몸으로 맞으며 홀로 걷던 그 언젠가 이런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은데. 더럽고 찝찝하고 짜증나면서도, 동시에 이유 모를 해방감에 들뜨는. 그런 지랄 맞은 기분.
“딸딸이도 태워라, 뒤에!”
주인 없는 바이크를 타고 이 골목을 벗어나자는 거였다.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지 않나.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일까. 혼란스러웠다. 이미 되살아난 엔진은 다음을 요구했고, 내 손 끝에 매달린 환호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덩치 큰 형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거부할 틈도 없이 시트 뒷자리에 엉거주춤 올라탔다.
순식간에 골목을 빠져나왔다. 식어버린 새벽 공기가 얼굴을 세차게 후려쳤다. 등줄기가 서늘하게 젖어들었다. 발목까지 질퍽이며 차오르는 찝찝함에 숨이 막혀오는 줄 알면서도, 동시에 흙탕물을 맘껏 뛰어노는 희열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뒷자리 신세임에도 마치 그 행렬의 일부라도 된 듯, 하나의 오롯한 존재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짜릿했다. 찝찝함과 불안함, 해방감과 소속감. 불안과 환희가 하모니를 이루며 척추를 타고 흘렀다. 모순된 감정이 뒤섞여 밤하늘을 붉고 푸르고 또 하얗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