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날이 밝도록 바이크에 몸을 싣고 거리를 질주했다. 겨울 바람에 얼굴을 내맡긴 대가로 두 뺨이 얼얼해졌다. 서로 거친 피부를 뽐내며 머리를 마주대고 콩나물 국밥을 한 그릇씩 속에 털어 넣고는 헤어졌다. ‘이것도 기념’이라며 얼굴에 거친 흉터가 있는 형이 밥값을 내 주었다. 그건 앞으로도 있을 일에 대한 어떤 약속 혹은 계약서 같은 거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외투도 벗지 않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자세가 불편해 겨우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하루가 지난 뒤였다. 낮이 아닌 밤에 그렇게 깊이, 오랫동안 잔 건 처음이었다. 이제껏 만나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가 열린 것만 같았던 그 밤이 꼭 한낱 꿈처럼 느껴졌다. 손끝에 아스라이 남은 감각이 불확실하게만 느껴졌다. 다시 또 공허한 적막이 나를 덮쳐왔다. 낮의 고요는 지루함을 넘어 형벌 같았다. 밤이 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나는 다시 억지로 잠을 청했다. 어서 빨리 밤이 오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형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칼, 곰, 깃대. 몇 번 듣기도 전에 곧장 각인되는 별명이었다. 이제는 그 뒤로 하나의 이름이 더 따라 붙었다. 칼, 곰, 깃대 그리고 딸딸이.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야, 딸딸아!’ 소리에 즉각 반응하는 내가 있었다. 매일같이 지후 형을 보기 위해 나서던 길이 어느새 그 형들을 만나러 가는 길로 변질됐다. 내가 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잊은 지 오래였다. 아니, 뭘 원하기는 했던가.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반복됐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약속처럼 형들을 만났다. 장소가 조금씩 바뀌었을 뿐, 전체 패턴은 똑같았다. 새벽 2시가 되면 형들은 낯선 바이크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곰 형은 매번 ‘하루 종일 뺑이 쳐서 찾아낸 귀한 물건’이라며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내용을 부풀렸다. 깃대 형이 키를 내밀면 그걸 건네받아 키박스에 꽂는 순간 상황 종료였다. 뒷자리에 앉아 밤거리를 가로지르다보면 어느새 날이 밝았다.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서로 국밥이나 라면 같은 것을 나눠먹고 헤어졌다. 항상 밥값은 칼 형의 몫이었는데, 계산할 때마다 다른 형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가게를 먼저 나서서 나도 덩달아 먼저 밖으로 나가 기다렸다. 밥값을 내는 손길이 가벼운 걸 보니,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거기까지면 족했다. 더 많은 걸 알 필요도, 알려줄 필요도 없는 관계. 새벽마다 내 손을 거친 바이크들의 행방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겁이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욕심이 났던 걸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잔뜩 매몰되었다. 그것은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소속감이 불러일으킨 용기이기도, 나의 능력에 쏟아지는 감탄이 쏟아낸 중독이기도, 아니면 그 어떤 목적조차 떠올리기 힘든 향락이기도 했다. 하루는 깃대 형이 내민 열쇠를 빤히 보다가 나는 점퍼 주머니를 뒤적였다. 잠시 망설인 끝에 내가 꺼내어 보인 그것은, 내가 만든 열쇠였다. 작업에 쓸만한, 내게 꼭 맞는 열쇠.
곰 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조각 솜씨도 제법인데?’ 형은 매끈한 열쇠를 이리저리 살피며 중얼댔다. 내밀었던 열쇠를 바지 주머니에 거칠게 쑤셔 넣으며 깃대 형의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지는 찰나, 칼 형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딸딸이 이제 먼저 밥값도 하네, 새끼.’ 그걸로 상황 종료였다. 깃대 형은 어깨를 으쓱이며 ‘매번 야스리 쓰기도 졸라 귀찮았는데, 고맙다 새꺄.’ 손바닥으로 내 뒷통수를 가볍게 툭, 밀었다. 칭찬인지 핀잔인지 헷갈리는 강도였다.
손바닥에 꼭 맞게 떨어지는 열쇠의 촉감이 빛날 때마다, 나는 자꾸만 더 멀고 깊은 어딘가로 뻗어나가고 싶어졌다. 그게 절도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매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도 멈추지 못했다. 환호는 달콤했고, 새벽의 질주는 짜릿했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 길 말고는 내가 당장 서 있을 곳이 없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딸딸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내 쓸모를 끊임없이 증명하고 설명해야만 했다. 어쩌면 그 길 끝에 다다르면, 지후 형에게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