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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Sep 11. 2024

열세 살의 나에게

스스로를 사랑하기

 생명존중 교육은 법적으로도 해야 하는 의무교육이다. 하지만 매년 하면서도 매년 고민이 된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어떻게 귀하게 여기게 할까? 

나와 더불어 다른 이도 소중하다는 것을 와닿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너무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의 열세 살을 떠올려 본다. 

나는 지극히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공부는 그럭저럭 했지만 더 욕심내지 않았고, 

몇 명의 친구들과만 관계를 맺었던 아이.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교실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없던 아이. 


 그 무렵이었던 듯하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숙명적인 고민들로 인해 어렴풋이 죽음을 생각하게 된 시점이. 죽음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보다는 생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질문의 시점이었고, 만족스럽지 못한 내 모습에 대한 못마땅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만약 그때의 내가 나를 더 귀하게 여겼더라면 어땠을까? 

조금 더 일찍. 괜찮다. 사랑한다를 나에게 해주었더라면 지금 더 성숙한 내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한 마음을 담아 수업을 시작했다.      


"얘들아, 선생님은 열세 살 때 참 소심한 아이였어.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고, 굉장히 소심했어.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자신감도 없었지. 너희들의 열세 살은 어때?"


우리 열 세 살들은 어떤 고민을 할까? 아이들에게 고민을 적게 했다.       

가장 많은 고민은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 친구와의 관계가 30%로 가장 높았다. 그 밖에 형제 자녀와의 관계, 부모님의 불화, 부모님과의 다툼 등을 포함하면 과반수 이상의 아이들은 관계에서 괴로움을 겪었다. 

그다음 순위는 공부가 어려워서 고민이 3표, 외모 고민 2표, 그 밖에는 마음에 안 드는 성격, 갈팡질팡하는 마음, 신체적인 아픔, 그리고 마음 아프게도 경제적인 어려움이라 적은 친구도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하고 아파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은 열세 살 삶의 무게만큼 힘들어했다. 

책상 한편 빈자리에 나도 나의 열세 살을 앉혀 놓고 말을 이었다.

      

"그래, 힘들었지. 힘들었겠다. 그런데 이 영상을 한번 볼래?" 



내가 만약 없어지면 날 찾아줄 사람 있을까?

난 왜 이렇게 생겼을까. 난 왜 태어난 걸까.     

불우한 가정, 높아지는 언성 그들의 싸움에 난 휘청거려.

눈물이 모여서 바다를 이뤄. 나는 그 위에 떠 있는 작은 종이배 같아.

그들의 싸움 또한 내 탓인 거 같고, 그냥 이대로 쭉 가라앉아 버리고 싶어.

근데 무섭고 어둡고 너무 두려워. 어찌해야 할지 나도 이젠 모르겠어.     


중략.      


미래에서 내가 내게 말을 걸어와. 어둠이 짙을수록 별빛은 더 밝아.

그 빛을 따라서 나를 믿고 용기 내서 나를 만나러 와     

지금 많이 힘들고 외롭지. 괜찮아 괜찮아 앞으로 달라질 거야

그때 힘들었는데 잘 지나갔어! 행복해. 그때 내가 내게 해준 말들 덕분에     


                                - 자살예방 랩 드라마 ‘미나리’ 중 

     



"너희 차례야. 누구보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줄 사람은 너희 자신이야. 

부모님도 선생님도 너희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끝까지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스스로여야 해.

그러니 미래의 네가 지금의 너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을 해보렴."

      

사랑을 담으라고 핑크색 포스트잇을 나누어 주었다. 

과연 아이들은 미래로 날아가 지금의 자신에게 무슨 말을 들려줄까?      


힘내

괜찮아 지금은 힘들겠지만 흔들리지 마. 넌 여전히 잘하고 있어.

넌 할 수 있어. 너 자신을 믿어.

고통스럽다면 하고 싶은 말을 해. 마음속에 너무 담아두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일어나. 미래는 네 생각보다 밝으니.

넌 빛나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조금만 더 힘내자.

별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아

넌 나중에 현명한 어른이 될 거야.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야. 

네가 원하고 그것을 재미있고 끈기 있게 열정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한 거야.

이제는 부모님이 싸우지 않아. 지금 좀 힘들어도 참아. 괜찮아질 거야.

꿈을 이뤘어. 조금마 더 노력해.

다른 사람 시선은 신경 쓰지 마.     


이 순간이 얼마나 기억에 남을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딛고 일어서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나 역시 과거의 나에게 마음속 한마디를 건넸다. 

      

너는 참 소중한 사람이란다. 

너는 매우 귀한 사람이란다.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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