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9]
"다짜고짜 화부터 내지 말고, 차근차근 설명부터 먼저 하는 거야, 알았지?" 아내가 가끔 나한테 하는 말이다. 오해는 마시라. 내가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든 화부터 내는 성격파탄자도 아니다. 다만 내가 ― 평소에는 그럴 일이 거의 없지만이라고 말은 하지만 생각보다 꽤 잦긴 하다고 민망하더라도 스스로 인정하는 ―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운전을 개떡같이 하는 경우다. 특히 교통흐름에 방해되게, 얌체같이 본인만 편하자고 운전하는 이들을 경멸한다. 두 번째는 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어떤 서비스를 이용코자 하는데 ― 아니면 했는데 ― 지불한 비용만큼의 서비스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 일단 화가 난다. 물론 후자의 경우 그것을 만회할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납득할 수도 있다.
위 문자와 관련된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얼마 전 봄에 이사를 했고, 이사 온 직후 아기 때문에 급하니 당장 에어컨을 설치했다. 이삿짐센터의 패키지 상품에 포함하지 않고 별도로 동네 에어컨 기사님을 불렀는데, 몇 년 전에 인근 지역에 살 때도 이용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어떤 서비스를 받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견적 비교를 해보니 여기가 더 저렴해서 선택한 것이다.) 설치는 무사히 잘 진행되었다. 그 후 더워지기 시작해서 에어컨 가동을 시작했고 최근 폭염이 시작되고부터 거의 24시간 에어컨을 가동 중에 있었다. 그러다 약 2주 전쯤 '냉매가 부족하니 점검하세요'라는 알림이 뜬 것이다. 얼마 전에 설치한 것인데, 냉매가 없다니? 뭐가 잘못된 거지?라는 생각을 했고, 아기를 위해서 상시 실내 온습도 관리를 하고 있던 터라 에어컨 고장으로 혹시라도 아기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 신경이 많이 쓰였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니 첫 번째 문단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내가 얼마나 평소에도 자주 불만을 표출했으면 저렇게 말했을지, 다시금 반성하게 된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이 사장님 특성이 문자는 잘 확인을 하지 않는다. 저 문자를 보내고 얼마간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바로 전화를 했더랬다. 그랬더니 사장님께서는 시원시원하게 "곧바로 확인해 드릴게요. 근데 제가 내일은 병원 때문에 어려울 것 같고 모레 연락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을 주셨다. 내일 하루는 어째야 하나 짜증이 살짝 올라왔지만 일단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잊고 있다가 사장님이 저렇게 문자를 주셨다. '최선을 다 할게요.' 조금 띵한 느낌이었다. 전화 통화까지 한 상태에서 뒤늦게 문자를 확인했다면 '네, 내일 방문드리기 전에 연락드리겠습니다'거나 '내일 뵙겠습니다' 보통 이렇게 답을 하지 않을까? 그런데, '최선을 다 할게요'라니. 갑자기 내가 쓰레기 ― 라는 표현이 조금 과한 것 같지만 적절한 것 같다 ― 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선을 다 하겠다는 표현을 신입사원 면접장에서가 아니라, 몇십 년 에어컨 일을 하신 사장님께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대뜸 화부터 내려고 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시 나를 뒤돌아보게 된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던가.
오늘 아내와 같이 멀리 다녀올 일이 있어 장모님께 아기를 맡기고 둘이서 차를 타고 다녀오는 길이었다. 둘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기에 상당히 피곤한 터였다. 운전을 하는 내게 아내는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저 문자가 생각났다. '최선을 다 할게요.'
7화 글에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만 비교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나는 내일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나아지고 있는 걸까? 오늘 하루 정말 최선을 다 한 것일까?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한 사람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과 사랑이라 생각한다. 그중 사랑에 관해서는 이 육휴일지 곳곳에 등장하는 이 세상 최고 현명하고 자애로운 이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부분이다. (라고 쓰고 해석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긴다.)
여하튼, 일(Work) 파트는 또 다른 이야기다. 나는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그만큼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은 맞는 것인가? 요즘 그 누가 회사 일에 목을 매고, 그 누가 신명 나게 일을 하나? 그저 따박따박 안정적인 월급 나오는 공기업이니 워라밸이나 찾고 재테크나 열심히, 요즘은 코인이 대세이니 코인이나 열심히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어마어마한 승진 적체는 기본 베이스로 깔고 육휴로 인해 동기들보다 뒤처질 것이 뻔한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나도 뒤늦게나마 코인 공부라도 해야 하는 거일까? 브런치에 항공 기사 리뷰도 꼬박꼬박 하면서 전문성을 쌓고 싶은데, 이거 괜한 짓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경평도 꼬라박아서 블라인드에는 사측과 노측이 서로 비난하는 글이 난무하고, 조직문화는 정말 멍멍이판인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심히 회사를 다닐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회사를 나간다 한들 나의 몸값이, 나의 경쟁력이 '공사' 타이틀을 떼어내고 나서는 ― 적어도 지금은 ― 정말 하잘것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육아휴직 들어가기 직전 이직을 한 동기와의 대화에서 그렇게 한숨을 쉬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나는 정말 아직도 내 일을, 내가 일을 하고 있는 회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회사 입사 후 처음 십년 동안 3개의 부서에서 일을 했는데, 그 당시 야근과 주말 근무는 내게 행복이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주말 혼자 나와서 공부하며 일하는 그 순간들은 내게 그 자체로 평온함과 즐거움이란 단어로 등치 되는 순간들이었다. 물론 비자발적인 순간들이 더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전사(全社)를 상대로 일해야 했던 부서에서는 꽤나 힘든 시간들도 많았다. 당연히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기에 욕먹는 일은 필수였고, 숙명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들, 절대로 '절대'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시간들에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 누가 물어봐도 그렇게 답할 자신이 있다. 회사라는 조직 내의 한 부품일 뿐이기에, 아무리 내가 최선을 다 한다 한들,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고, 전체로서 굴러가는 시스템이기에 누군가 최선을 다하거나, 혹은 탱자탱자 논다 한들, 회사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홀로 회사를 짝사랑하며 일해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흔들리고 있다. 지나온 그 시간들 속의 나는 최선을 다 한 것 같은데, 지금 나는 왜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일까?
욕심 때문인 것 같다. 솔직히 처음에 나는 '자신'이 있었다. 동기들 중에서 능력이 제일 뛰어나서는 아니다. 다만 나름 인정받는 부서들에서 일했고, 애정을 쏟아가며 일했기에 다들 말했다. '열심히 하는 친구'라고. 작은 회사이기에 소문은 빠르게 돌고, 평판 역시 그 소문과 같이 뛰어다닌다. 라인을 타진 않았지만 열심히 하는 친구라는 소리는 듣기 좋았다. 동기들 중에 한 명은 연말모임에서 말했다. "오빠가 제일 빨리 승진할 것 같아." 지나가며 던진 말이더라도 역시 내심 듣기 좋았다. 그런데, 작년 승진 인사에는 또 다른 뛰어난 동기가 먼저 발탁 승진을 했다. 그리고 나는 육아휴직을 했고, 이젠 대다수 다른 동기들보다 뒤처질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나의 애정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열렬히 구애했는데, 매몰차게 거절당한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 내가 어찌 감히 최선을 다할 수 있으리.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기가 싫었다. 분명 육아휴직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 아기와 함께하는 순간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다. 이미 회사에서 남들보다 앞서나가기는 불가능한 상황인 것을 인정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것인데, 그게 쉽지가 않은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데, 나는 천 번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저 옆에 백 번 찍고 나무를 베어 넘긴 친구가 있는 것이다. 도끼질이 즐거웠다는 것, 그것만 받아들이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야 하는데, 아직은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소심한 마음에 그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아니 사실 그것조차 필요 없는 것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회사에서의 나는 잠시 놓아두자. 내 전장은 회사 책상이 아니라, 기저귀 갈이대 앞이다. 나는 지금 내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 최고 자애현명하신 내 옆지기님이 말한 것이니, 그것이 정답일터, 스스로를 조금 더 인정하고 안아주어야겠다. 이제 다시 저 위의 질문에 답해본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던가.
응, 나는 최선을 다 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친구. 앞으로도 잘 부탁해.
P.S. '공기업 과장, 부부 동시 육휴일지' 브런치 북은 앞으로 주 1회 연재로 변경하려 합니다. 다른 글도 좀 써보고 싶은데, 생각보다 글 하나 쓰기가 녹록지가 않네요. 그래서 요 카테고리는 발행 주기를 조금 조절하고, 다른 카테도리 글들도 한번 시작해 보려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