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애호박전 또 해줘

[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10]

by 그냥 하자
KakaoTalk_20250716_162015474.jpg 초초간단 맛난 요리, 애호박전! thanks to 류수영!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미식가 ― 라는 단어를 요즘에도 잘 쓰는지 모르겠다 ― '는 아니다. 또 SNS를 하지 않아서 먹는 것을 남들에게 자랑할 일도 없고, 맛잘알도 아니어서 숨은 맛집 찾기 같은 것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맛있는 것' 먹는 것을 좋아하고, 또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에 먹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여담으로 먹는 것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 잠자는 것인데, 고등학교 때는 아침잠이 워낙 많아서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을 먹으면서 겨우겨우 잠을 깼던 기억이 난다. 몽롱하게 잠에서 덜 깬 채로 나오면 식탁에는 따듯한 밥이 차려져 있었던 기억은 늘 아련하게 남아있고, 엄마표 된장찌개는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다. 사랑해요 엄마.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 내가 가장 많이 먹고 좋아하던 것은 '삼양 열무 비빔면'이었다. 미안해 엄마!


난 특히나 면류를 좋아했는데, 언제부터 열무 비빔면을 먹었는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고등학교 3년 내내 우리 집에서는 열무비빔면이 떨어진 적이 없었고, 항상 여름에 비빔면을 해달라고 하면, 2개를 후딱 끓여서 얼음으로 시원하게 식힌 다음에 양념을 비비고 오이를 채 썰어서 얹어 주셨고, 나는 그걸 진짜 게눈 감추듯 후딱 비워버렸던 기억이 선명히 난다. 조금 더 여유 있을 때는 계란후라이가 곁들여지고 가끔 열무김치가 있을 때는 그것까지 얹어 먹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도는 그저 환상의 맛이다. 나의 열무비빔면 사랑은 쉽게 끊기지 않았는데, 전 직장을 퇴사하고 올라올 때 친했던 사수 형님이 내게 삼양 열무비빔면 2박스를 서울집으로 주문해 주셨을 정도다. (이런 나의 사랑 삼양 열무비빔면은 아쉽게도 2024년에 단종되었다.)


서두가 길었는데, 좋아하는 것에 비해 내 요리 실력은 그저 그렇다. 이건 나의 선천적인 손맛과 요리 재능에 비해 너무나도 강력한 나의 게으름이 한몫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자취를 꽤나 오래 했는데도 할 줄 아는 요리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을 보면 그간 늘 게으름이 이겨왔던가 보다. 특히 유년시절에는 감은 눈을 비비면서도 꼭 엄마가 해주신 따듯한 아침밥을 먹었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건 진정 '엄마'가 해주셔서 가능했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침은 챙겨 먹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지금 다니는 직장에선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사 먹을 수가 있었다. 간단한 한식 한 가지와 '해장용'은 내가 붙인 수식어이다 ― 라면 이렇게 두 가지가 있었고, 운영 기간 동안은 정말 잘 먹었었다. 다만 운영업체가 바뀌어서인지 내부 정책 때문인지, 아침 식사 서비스는 오래가지 못하고 없어졌고 나는 다시 의도치 않은 간헐적 단식을 하며 아침을 건너뛰며 살았다.


그건 아내와 결혼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초기에는 둘 다 허니문 파워로 간단하게나마 건강식으로 과일/시리얼/요거트/견과류 등을 챙겨 먹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시기를 지나고부터는 둘 다 잠을 더 자는 것으로 은연중에 합의를 봤던 것 같은데, 깊게 논의를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둘이 살 때도 건너뛰었던 아침인데, 어랍쇼, 우리 둥이(딸의 애칭)를 집에서 키우면서 아침을 해 먹게 되었다.


집에서 공동육아를 하니, 일단 밖에 나갈 시간 자체가 없었다. 지금은 어느덧 4달째가 되어 가고 있고 생활 패턴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다 보니 집 밖으로 둥이와 함께 외출을 종종 하는 편이지만, 초반 두세 달은 집 밖으로도 잘 나가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하루 세끼를 집에서 강제적으로 해 먹을 수밖에 없었다.


둥이를 조리원에서 데리고 집으로 온 이후, 산후도우미 이모님의 도움을 2주간 받았는데, 다른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식사를 챙겨주셨던 점이다. 사소한 일이 있어 한 명이 끝까지 하지 않았고, 첫 번째 이모님이 1주, 두 번째 이모님이 남은 1주를 케어해 주셨다. 두 분 스타일은 조금씩 달랐지만, 손맛은 참 좋으셨다. 특히나 다양한 국을 대용량으로 끓여서 두고두고 먹었던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참 좋았다. 덕분에 초반 힘들었던 시기, 영양소 섭취는 충분히 했었고 이 시기 이후로 우리의 집밥 먹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점에서 아내의 요리 실력에 대해 감히 한마디 평을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데, '창의력이 넘쳐흐른다'로 정리하면 될 듯하다. 물론 아내도 레시피를 참고한다. (방금 찾아봤더니) 무려 방문자수가 4억 8천만 명이나 되는 초초파워 블로거인 꼬마츄츄님의 블로그가 아내의 레시피 창고이다. 한데, 그런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본인의 넘치는 창의력을 가두어 둘 수가 없는 듯하다. 하여서 최종 완성되는 작품들은 살짝 그 족보가 좀 모호한 친구들일 때가 많다. 물론, 그래도 맛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엄마표 된장찌개 빼고)


이렇게 세상 제일 맛난 ― 동시에 창의력이 넘치는 ― 요리를 아내가 해 주지만, 대용량 국 만들기는 내가 더 잘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주로 미는 것들은 무와 배추를 활용한 국 요리다. 특히 소고기뭇국이나, 배추 된장국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 아주 간단하면서도 뜨끈한 국물을 선사하는 ― 메뉴이다.


나는 보통 집에서 제일 큰 냄비를 활용한다. 냄비 바닥 지름이 내 손바닥 하나를 쫙 펴고도 주먹 하나가 남는 정도이니 꽤 큰 편이다. 소고기뭇국은 경상도에서는 빨갛게 해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고, 맑게 해서 먹는 건 서울에 와서 처음 해본 스타일이다. 그런데 일단 레시피가 경상도 스타일에 비해 간단해서 요즘은 보통 맑은 국물 스타일로 먹는다. 배추 된장국은 뭐 레시피랄 것도 없이 정말 간단한데 또 된장의 구수한 맛도 나고 속도 편해서 좋다. 해서 요즘은 저 두 친구가 우리의 국그릇에 주로 담기곤 한다. 그런데 한여름이 오기 전에는 저 큰 냄비에 해서 좀 먹고, 다시 작은 냄비에 옮겨서 냉장고 넣었다가 먹고 또 남은 거 먹고 했는데, 요새는 쉽게 음식이 상해서 작은 냄비에 요리를 하곤 한다.


그리고 또 내가 잘한다(라고 아내가 말해주는) 요리가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감자조림이다. 나는 보통 요리를 할 때 어남선생 류수영 레시피를 참고하거나 아니면 그냥 구글 검색에서 'XX 레시피'라고 검색했을 때 상단에 뜨는 '만개의 레시피'를 참고하는데 요 감자조림은 전에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오셨을 때 가르쳐 주셔서 해봤던 것이 시작이었다.


근데 웬걸, 내가 했는데 생각보다 감자 익힘 정도도 적당하고 맛있었다. 감자 껍질 벗기고 썰어서 팬에 식용유 둘러서 살짝 볶고, 양념장(간장, 설탕, 물엿, 다진 마늘, 물)을 감자가 잠길 정도로 넣고 조리는 게 끝이다. 너무 쉽지 않은가? 그런데 맛있기까지 하다니. 한 달 전쯤 둥이를 보러 부모님께서 올라오셨었는데, 엄마도 맛있다고 인정을 했으니! 일단 감자조림 하나는 상시 출격 무기로 안착한 것 같다.


아내가 칭찬한 두 번째 요리, 바로 대망의 애호박전이다. 사실 이것도 편스토랑에 나온 어남선생 레시피를 보고 해 봤는데, 중요한 건 너무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정말 맛있다. 이건 진짜 요리랄 것도 없이 쉬운데, 애호박전을 적당한 두께로 썰고 기름 두른 팬에다가 튀기듯 양면으로 구워준다. 적당히 구워졌으면 그냥 그릇에 담아주고 양조간장 뿌린 다음, 애호박 튀길 때 사용한 팬에 남은 기름을 마지막으로 올려주면 끝이다. 밥 먹기 전에 바로 해서 먹으면, 따듯하고 고소하고 겉바속촉한 식감이 먹는 재미를 주고 짭조름한 양조간장에 뜨끈한 기름이 얹어져서 밥도둑으로 제격이다. 요즘 아내의 최애 메뉴는 바로 이 애호박전인데, 요놈 하나로 나는 요리 잘하는 남편이 되어 사랑받는 중이다.


물론, 둘이 애를 보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렇다고 뭐 7첩 반상을 차려서 먹을 정도로 여유가 넘치진 않는다. 저 감자조림과 애호박전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아내는 원래부터 진미채/실미채를 좋아해서 항상 만들어 놓고 먹는다. 우리의 밥상 풍경은 이런 기본 찬에다가 (비비고표) 김치, 뜨끈한 국과 잡곡밥에 김 정도가 기본이고, 먹다가 둥이가 울면 한 명이 가서 돌봐주고 나머지 한 명이 후딱 다 먹으면 바통터치하고 와서 또 먹는다. 단출하고 간소하고, 허겁지겁 먹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법카로 먹는 점심 회식도 아니고, 동료들과 밖에 맛집 찾으러 가는 시간도 없어졌지만 하나를 비우고 하나를 채우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이 즐겁기만 하다.


현재 나의 주력 무기는 위에서 언급한 소고기무국, 배추된장국과 감자조림, 애호박전인데 앞으로 좀 더 메뉴 개발을 해서 국 5가지, 반찬거리 7가지 정도를 세팅해 놓으려고 한다. 전에 아내가 순두부계란국을 맛나게 먹었던 적이 있는데 어떤 레시피를 참고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하튼, 잠재되어 있는 요리 본능을 최대한 살려서 아내와 같이 남은 육휴 기간 집밥 살림을 잘 살아보도록 해야겠다.


P.S. 쉽게 만들 수 있는 추천 메뉴 있으시면 지나가다 한 번씩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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