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11]
달리기가 최근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운동이 되었다고 글을 썼었다. 며칠 전 또 달리기를 하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살던 고향에는 댓거리란 곳이 있었다. 정확히 언제쯤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 아마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였을까 싶다 ― 그 시절 그곳에서 나는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학교 때부터 그곳은 먹을거리 놀거리들이 넘쳐나는 곳이었고, 친구들과 할 일 없을 때면 만나서 시간을 때우는 곳이었다.
그런데 아마도 위에 언급했던 잘 기억나지 않는 그즈음, 나는 그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건물 한 층에서 헬스장을 다녔다. 그리고 헬스장들은 으레 그러하듯, 창가에는 나란히 런닝머신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나는 런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었다. 바깥에는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가득했다. 나는 숨을 헐떡이고 땀을 흘리며 런닝머신 위를 무념무상으로 뛰고 있었다. 그때 문득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니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살아 있나?'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땀방울을 흘리며 순간에 집중하고 있는 스스로가 멋져 보였던 걸까? 허세 가득 차서? 음, 잘 모르겠다. 딱히 그렇게 허세 부릴 만큼 스스로가 잘 났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거니와, 그 당시 나는 세상에 별 흥미를 못 느끼고 살던 터였기 때문에 그냥 쓸데없는 생각의 편린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그때 던진 질문 하나가, 때때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달릴 때, 더 정확히는 앞에 창이 있는 전형적인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달릴 때, 계속 그 생각이 난다. '나는 살아 있나? 살아 있단 건 뭘까?'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있었다. 해서,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면 짙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그 사이 하얀 구름들이 떠다니는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나는 그 풍경을 참 좋아했고, 참 많이도 바라보았다. 당시 내 공상/망상/상상 속에는 잠을 더 자고 싶다는 생각, 배고프다는 생각 등등이 있었겠지만 많은 시간은 산다는 건 무언가 하는 쓸데없는 질문들을 떠올린 시간들이었다.
그때도 종종 나는 생각했다. '왜 태어났지? 왜 사는 거지?' 아무도 정답을 말해 줄 수 없는 그 질문들에 갇힐 때면 정말 답답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땀 흘리며 뛰는 그 순간에는 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이, 그저 순간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기에 ― 아니 그렇게 밖에 할 수 없기에 ― , 그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그 느낌을 되려 확인해보고 싶어서 스스로에게 저런 질문을 던졌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질문은 답을 찾지 못한 채, 내 삶의 배경음악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회사 생활의 치열함 속에서, 결혼이라는 새로운 막이 열리면서, 그 질문은 잠시 잊혔다. 나는 더 이상 답을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질문을 쫓기를 멈추자, 답이 아주 조용히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내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화려한 불빛 아래가 아닌, 젖병과 기저귀, 그리고 아내의 나지막한 목소리 사이에서였다. 저 질문에 대한 정답까지는 아니지만, 어렴풋한 갈피를 잡은 것 같다.
첫 번째 장면은 우리 둥이를 돌볼 때다. 그에게는 오늘도 내일도 없다. 오직 지금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배가 고프면 운다. 지금 이 순간 기저귀가 축축해서 불편해지면 또 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울고 싶어지면 또 운다. 그럼 나는 둥이를 지켜보다 일회성 울음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바로 출동하여 반응을 해 준다. 배가 고프면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 소변 감지줄에 색깔이 바뀌면 기저귀를 갈아주면 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은 일단 달래준다.
그런데 나는, 분유를 먹이면서도 조금 이따 돌아올 아내와 밥은 뭐 먹지를 고민하고, 기저귀를 갈면서도 습진이 더 심해진 것 같은데 소아과는 안 가봐도 될까 걱정한다. 둥이를 어깨 위에 얹고 트림을 시킬 때는 다 먹은 젖병을 얼른 물세척해놔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빽 울거나 하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둥이에게 집중한다. 분유를 먹일 때는 분유를 먹는 둥이만 바라보자, 기저귀를 갈 때면 둥이에게 말을 건네며 세심하게 기저귀만 신경 쓰자, 트림을 시킬 때도 다른 잡생각하지 말고 등을 쓰다듬고 엉덩이를 토닥이며 그의 소화작용에만 집중하자. 다시금 되뇐다.
두 번째는 아내와 필로우 토크를 할 때였다. 아내의 대학 친구들 모임의 이야기. 이제는 결혼한 사람 셋에 싱글 둘인 모임이다. 매년 모여서 사진을 찍는 것이 연례행사인 모임인데, 싱글 친구들의 최근 모임 참여도와 금년도 연례행사 불참 통보로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가 '친구들도 결국 다 제 갈길 가는 거지.'라고 말하고 결국 가족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중고딩 친구들 모임이 있지만, 지금은 1년에 한 번도 보기 힘들고 3,4년에 한 번 모임에 나가는 꼴이다. 회사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지만, 회사는 결국 또 한 때 아니던가. 회사라는 구심점이 없어지면, 나중에 퇴직이라도 하면 그냥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리는 것 아닐까. 결국 돌고 돌아 남는 건 가족이다.
요즘도 나는 가끔 동네 헬스장에 간다. 창가에 나란히 놓인 러닝머신 위에 올라서면, 여전히 창밖의 풍경과 창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그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살아 있나?'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질문에 당황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질문이라 치부하지도 않는다. 그냥 담담히 인정한다. '그래, 나는 살아있다.' 그리고는 이제 더 중요한 질문을 던져본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고 있는가?'
젖병을 씻어야 한다는 생각, 내일 아침 뭐 먹을까 하는 걱정 대신, 오직 발바닥에 전해지는 충격과 거친 숨소리에만 집중하려 애쓴다. 창 밖의 휘황찬란한 불빛 대신,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내와 둥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살아있다는 건 아마도, 그런 순간들이 모여 완성되는 것이리라.
P.S. 글이 뭔가 맘에 들지 않아 이래저래 생각하느라 어제 예정된 발행일을 놓쳐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