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12]
이제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대략 4~5개월쯤 되었다. 둥이는 이제 뒤집기를 열심히 하는 중이고, 아내와 나는 틈틈이 짬을 내어 운동을 하고 있다. 오늘은 내가 오전에 운동을 다녀왔다. 크로스핏 1회 무료 체험을 다녀왔는데, 사실 크로스핏에 큰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육아용품 구매를 위해 당근을 쓰다가 크로스핏 무료 체험 홍보 게시글을 봤고 마침 집에서 10분 거리였기에 덥석 신청을 하였던 것이다.
나는 뭔가 꾸준히 하는 것을 잘 못한다. 20대 때는 복싱을 잠깐 한 적도 있고, 30대 넘어서는 클라이밍도 몇 달 했었고, 그나마 자전거 타기와 등산은 나름 오랫동안 해왔던 것 같다. 크로스핏도 그러다가 한 두 달 했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10여 년은 되었기에 그냥 쌩초보라고 봐도 무방 할 것 같다. 여하튼, 멋모르고 갔다가 무지하게 힘들었다. 역도 동작인 클린과 철봉에 매달려서 하는 동작 2개가 메인이었는데 무게를 낮게 했는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른손 손가락을 바벨에 부딪쳐서 손톱이 살짝 들렸고 피도 났 ― 지만 운동 하는 중에는 힘들어서 알지도 못했 ― 다.
그렇게 정신없이 운동을 끝내고 나니 코치님이 오늘 중복이라 회원들과 먹으려고 수박을 준비했다면서 먹고 가라고 말을 건넸다. 나는 그제야 손가락도 아파오고 힘도 없고 멘탈이 살짝 나간 상태여서 정말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고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때 코치님에게 말했던 내 대답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선약이 있어서요.'라거나 '아, 괜찮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또는 그냥 '일이 좀 있어서요.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인 선택지였을 텐데, 나는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라고 말했다. 정말 무의식에서 튀어나온 나의 진심이었을까? 물론 저 대답은 정확히 사실이다. 아내는 얼른 내가 와서 교대해 주기를, 육아파트너가 와서 좀 쉴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었을 것이고, 둥이는 아직 '부모'에 대한 분리불안 증세가 나타날 시점은 아니지만, 얼른 익숙한 얼굴이 다가와서 까꿍하고 말 걸어주고 어깨 위에 올려서 세상 구경 시켜주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요즘 세상에 누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를 초대 거부의 의사 표현 수단으로 사용할까? 뒤돌아 나와서 생각하니 뭔가 너무 올드하고 살짝 민망해지는 표현이었지만,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심연 속의 알맹이를 꺼내어 보니 새삼, 이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집에 있다는 것이 고맙고 또한 동시에 무겁게 느껴졌다.
같은 시기에 육아휴직을 하고 하루 종일 같이 아이를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물론, 공동 육휴가 아니라 단독으로 부부 중 1인이 육아를 전담하고 나머지 1인이 일을 하는 상황도 힘들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육아 관점에서 뿐만이 아니라 '부부'라는 관점에서도 그렇다.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 여유 있는 시간을 갖기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초반에도 그랬고 지금도 가끔씩 투닥거릴 때가 있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런 일이 발생하면 정말 불편한 상황이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 이외에는 오로지 상대밖에 없는 상황인데, 서로 감정을 풀지 않고 냉랭한 상황을 계속 이어간다는 게 보통 감정이 소비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육휴일지 3화(동시 육아휴직이면, 하루 종일 같이 있어요?)에도 관련된 내용을 쓴 적이 있다. 오은영 박사님 덕에 알게 된 '정상적 퇴행'이 그것인데, 지금은 그것 말고도 고정된 루틴이 하나 더 생겼다. 앞선 11화에도 언급했던 필로우 토크(Pillow Talk)이다. 육아 라이프에 접어들기 이전에도 잠들기 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느낌이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는 상황의 변화이다. 아직은 둥이가 같은 방의 아기 침대에서 자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그래서 거의 귓속말로 속삭이는 정도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육아를 하는 일과 중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이렇게 잠들기 직전 서로에게 귓속말로 이야기를 하고 오늘 하루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차이가 꽤 크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예전과 다른 것은 '육아'라는 힘든 시기를 함께 하고 있다는 동지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단순히 너와 내가 맞춰가는 삶이 아니라, '우리'로서, '부모'로서 아기를 돌보며 이 시기를 같이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경험이고, 지금 아니면, 이렇게 같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육휴일지에서 종종 언급했듯, 이번 필로우토크 정책도 아내가 도입을 했고(제안이 아니라 강제 실행이었다.) 으레 그렇듯 이번에도 좋은 성과를 내며 결론적으로 참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아내가 도입한 이 소중한 귓속말 시간들은 계속될 것이다. 단순히 하루의 고단함을 나누는 것을 넘어, 우리가 왜 이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매일 밤 확인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캄캄한 방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속삭이는 이 시간들이, 낮 동안의 투닥거림과 육아의 무게를 기꺼이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체육관을 나서며 무심코 뱉었던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더 선명하게 알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나의 귀가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넘어,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고, 나의 지친 어깨를 토닥여주며, 이 고단한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동지가 있다는 가장 든든한 증표였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가 돌아갈 따뜻한 세상이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