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14]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둥이가 아내 뱃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내의 배가 점차 불러오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아내에게 고관절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해주고, 튼살 크림을 발라주는 루틴이 만들어졌다. 스트레칭 방법이야 유튜브든 인터넷이든 찾으면 많이 나오니 방법론은 차치하고, 그 시간은 온전히 아내에게 바치는 나의 사랑과 헌신의 시간이었다. 정성 들여 천천히, 체중을 이용하여 스트레칭을 하고, 손에 튼살 크림을 덜어서 배를 쓰담쓰담하는 그 시간들. 뒤돌아 생각해 보니 그 또한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스트레칭과 튼살크림, 2개의 세션으로 이루어진 루틴이었다. 그러다 뱃속의 아기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것저것 시도를 하다,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러주게 되었다. 아마도 다양한 동요를 시도하던 와중에 이 곰 세 마리에 정착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저 노래를 불러줄 때 둥이가 발차기를 했던가? 아님 그냥 리듬과 멜로디가 맘에 들었던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여하튼 어느 시점부터 1) 스트레칭하기 2) 튼살크림 바르기 3) 곰 세 마리 노래 부르기로 루틴은 확정되었고 거의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진행했던 것 같다.
둥이가 세상에 태어난 그날, 신생아실로 들어가기 전에 이동식 인큐베이터에서 잠깐 대기하던 그때에도 나는 곰 세 마리를 작은 목소리로 불러주었다. 둥이가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태어난 지 1시간도 안된 작은 생명체의 두려움 가득한 눈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담아 노래를 불러주었다.
둥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우리의 삶은 둥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회사 동료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초기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에 나름 마음의 무장을 단단히 한 채 그 시간들을 기다렸다. 우리는 공동육아를 하기에 훨씬 나을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물론, 혼자 전담하는 것보다는 우리는 훨씬 부담을 덜고 이 시간들을 나름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어쨋든 초반에 나는 우리 둥이가 '나름' 순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그는 언제나 살풋 웃으며(나의 상상이다)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난 행보들을 보여주곤 했다.
지난 회차에도 종종 적었던 우리 둥이의 강성 울음이 터진 육아 초기의 어느 날이었다. 어르고 달래고, 앉아서, 서서, 어깨 위에 올려서, 튤립 ― 이라고 쓰면 요즘 육아 중인 양육자들은 알 것이다 ― 장난감, 토순이 장난감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그는 아직 한번 터진 울음보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러주었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첫 소절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천장이 떠나가라 울리던 둥이의 울음소리가, 마치 누군가 볼륨을 줄이듯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격렬하게 버둥거리던 작은 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젖은 속눈썹 사이 똘똘한 눈망울로 둥이가 우리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나와 아내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내의 눈에는 놀라움과 함께 '어떻게 한 거야?'라는 경이로움이 담겨있었다. 신기하게도 아내가 불러줄 때보다 내 목소리에 더 잘 반응하는 둥이를 보며, 아내는 짐짓 서운한 척하면서도, 매일 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누구보다 기뻐해 주었다. 그 순간, 이 마법은 온전히 우리 부부의 것이 되었다.
뱃속의 아기의 청각 시스템은 생각보다 일찍부터 발달한다고 한다. 대략 임신 20주경 달팽이관이 완성되고, 25주경부터 소리에 반응하며, 임신 35주경에는 성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엄마의 뱃속에 있으니 엄마의 몸 내부 진동을 통해 전달되는 엄마의 목소리보다야 덜하겠지만, 아빠의 반복되는 중저음 목소리를 학습하게 되면 이것 또한 아기가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태아 학습(Fetal Learning)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둥이에게는 이 '곰 세 마리' 노래가 그 학습의 증거가 된 것이다.
이 마법 스펠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필요한 때에 요긴하게 써먹을 것 같다. 엄마 뱃속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고 편안한 곳에서 반복해서 듣던 아빠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반응해 준다는 것, 너무 황홀한 경험이고 또한 고마운 일이다.
둥이야, 너는 곧 훌쩍 크겠지. 나는 '곰 세 마리'를 불러주기는 커녕, 엄마 아빠와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는 너의 뒷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볼 때도 있을거야. 하지만 그때는 그때 생각할 일이고,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목소리로 잠이 쏟아지는 너를 바라보며 네 귓가에 오늘 밤도 또 속삭여 줄게.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잘자,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