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적

[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13]

by 그냥 하자
화면 캡처 2025-08-13 220003.png 출처: TED.COM <할 일을 미루는 사람의 심리> 영상 캡처 ⓒ TED


지난주 수요일, 나는 글을 발행하지 않았다. 굳이 변명을 갖다 대자면 그날은 오래간만에 회사 친한 형님들과의 저녁 자리가 있었다. 그 형님들로 하여금 말하자면, 결혼식 피로연 때 아내가 그들이 있던 테이블에 가서 '저희 남편, 술 좀 적게 먹여주세요.'라고 했던 사람들이다. (아, 물론 그들은 강요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냥 내가 그들과 먹을 때 많이 먹었던 적이 몇 번 있었기에 아내의 기억에 그렇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달 만에 만나는 자리였기에 우주 최고 자애롭고 현명하신 아내의 윤허하에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잡설이 길었는데, 사실 이건 변명 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날 이래저래 바쁜 일정이 있었다면 그 전날에 글을 써서 예약을 해 놓으면 될 일 아니던가. 나는 그저 게을렀던 것이다.


나의 게으름이 발현되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업무 ― 지금은 일을 하지 않지만 ―, 혹은 아기를 위한 필수적인 항목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내 삶에 적용되는 것 같다. 이걸 게으름(Laziness)이라고 불러야 할지, 미루는 습관(procrastination)이라고 불러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글을 안 쓰고 있는 내내, 설거지 거리를 쌓아두고 안 하고 있던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 불편함의 정체를 파고들다 보니, 문득 예전에 봤던 TED의 강연이 하나 생각났다.


Tim Urban의 'Inside the mind of a master procrastinator(할 일을 미루는 사람의 심리)'라는 강연이다. 그의 이론을 빌리자면, 내 머릿속에서는 매 순간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쪽에는 '이성적 의사결정자(The Rational Decision-Maker)'가 있다. 이 친구는 미래를 보고, 큰 그림을 그리며, '지금 당장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합리적인 나다. 다른 한쪽에는 '순간적 만족감 원숭이(The Instant Gratification Monkey)'가 있다. 이 놈은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직 '쉽고 재밌는 것'만 추구하는 원초적인 나다.


이걸 현재의 내 생활에 도입해 보자면 이렇다. 이성적인 내가 '자, 이제 다음번 육휴 글을 써야 할 때가 왔어' 혹은 '아내가 맛난 점심을 해줬으니 얼른 설거지를 해볼까'와 같이 생산적인 계획을 세우면, 어김없이 이 원숭이가 나타나 조종간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외친다. "잠깐! 그전에 일단 유튜브에서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이 영상부터 보자. 아, 아니다 그때 뭐 사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일단 노트북 열고 검색을 다시 해보자!"


내 머릿속을 MRI로 찍어본다면 정확히 그 모습일 것이다. '이성적 의사결정자'로서의 나는 안다. 설거지는 쌓아두면 더 하기 싫어지고, 빨래는 아기 빨래만 해도 이미 한 가득이어서 바로바로 건조대 널고 개지 않으면 산더미가 된다는 것을. 하지만 내 안의 '원숭이'는 효율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며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어차피 할 거, 한 번에 모아서 하는 게 동선도 효율적이고 에너지도 절약되잖아. 조금만 미뤄 놓으면 되는 거 뭐 하러 지금 해." 라며 합리적인 나를 교묘하게 설득한다.


그렇게 원숭이에게 조종간을 내어준 채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 강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곳은 '어두운 놀이터(The Dark Playground)'였다. 분명 쉬고 있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죄책감과 '언제 치우지...'라는 불안감이 공기 중에 가득해 결코 즐겁지 않은 곳. 원숭이는 신나게 놀고 있지만, 정작 나는 그 놀이터 한구석에서 영혼 없이 그네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실 회사를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나는 나다. 나는 늘 게을렀다. 다만 그래도 업무적으로는 그걸 티가 나지 않게 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강연에 등장하는 마지막 캐릭터, '패닉 몬스터(The Panic Monster)' 덕분이었다. 내 안의 원숭이를 잠재우는 이 몬스터는 회사와 관련된 것에서는 엄청나게 큰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 나는 회사 내에서 나의 평판을 꽤나 중요시 여긴다. 더불어서 내가 선택해서 만들어온 나의 꿈이 실현되는 공간인 이 신성한 회사에서의 일들은 절대로 내 속의 '원숭이' 따위에게 농락당하게 둘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한들 남들 티 안 나게 미루기는 많이 했지만, 그래도 나의 '패닉 몬스터'가 나타나 "너 지금 안 하면 완전히 망한다!"라거나 "쪽팔리게 살 거야?!"라고 울부짖으면 간덩이가 부었던 원숭이도 혼비백산하여 나무 위로 도망쳤다. 그러면 나는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밤을 새워서라도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육아휴직 중인 지금의 내 삶, 특히 집안일에는 마감일이 없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오늘 안 한다고 해서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빨래를 내일 갠다고 해서 인사평가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는다.(참고로 요리를 대부분 아내가 담당하기에, 설거지는 보통 나 ― 와 식세기 이모님 ― 의 몫이다.) '패닉 몬스터'는 영원히 잠들어있다. 내게 패닉 몬스터는 아마도 회사에서만 활동하는 것 같다. 물론, 우리 집에는 그 보다 더 강력하고 현실적인 괴물이 산다. 바로 '아내의 한숨+눈빛 몬스터'다.


처음에는 그저 잔소리 정도였다. "나 비위 약한 거 알잖아. 냄새가 좀 많이 나는 것 같은데?"라거나 "자기야, 그릇들이 다 싱크대에 있는 것 같네?"라고 하면 나는 "응 조금 있다가 할게, 어차피 저녁 먹으면 더 나오잖아."라고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점심으로 닭볶음탕을 맛나게 먹은 후 우리 둥이를 돌보고 있는데, 싱크대에 그릇이 하나둘 쌓여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내가, 영혼 없는 눈빛으로 나를 한번 바라보고는 나지막이 한숨을 "휴우-."하고 내쉬고 고무장갑을 끼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화를 냈으면 좋으련만, 아내의 그 텅 빈 눈빛과 나지막한 한숨에 내 안의 '패닉 몬스터와 원숭이, 합리적인 나' 모두 얼어붙어 버렸다. 그 순간 정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내가 할게, 내가!"

나의 외침에, 아내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끼려던 고무장갑을 내게 건넸다. 그 표정은 '이제야 정신 차렸네'라고 말하는 듯했다. 더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오늘도 숟가락을 내려놓자마자 고무장갑을 낀다.(물론, 아직도 효율성을 완전히 놓아버릴 수는 없기에 어떨 때는 바로 설거지를 다 하고, 어떨 때는 초벌 해서 식세기에 넣어놓는 것으로 일정 부분 타협을 봤다.) 와이파이님의 (눈빛+한숨) 합체 몬스터가 무서워서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의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효율'이라는 게으름이, 사실은 아내의 '평온함'을 비용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어두운 놀이터에서 불안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아내는 어질러진 현실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팀 어번의 강연은 내게 명쾌한 해결책 대신 서늘한 진실을 알려주었다. 내 안의 원숭이를 없앨 방법은 없다는 것. 마감 없는 설거지 더미 앞에서 패닉 몬스터는 영원히 잠들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그 존재를 '자각'하고 내가 직접 그 몬스터를 깨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 '아내의 눈빛과 한숨'이 그 방아쇠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빨리 치워!'라는 명령이 아니라, '우리의 평온한 공간을 함께 지키자'는 신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모니터와 스마트폰 저 너머에서 기다리는 독자들'의 얼굴이 그 자각의 힌트가 되기도 한다. 그들의 존재는 나에게는 강력하고 또한 가장 따듯한 패닉 몬스터이다.


내 안의 원숭이 친구와 타협하고, 아내의 눈빛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고무장갑을 끼고 내 인생 최고의 적인 '게으름'과 싸우러 간다. 게으름과의 싸움은 기술이 아니라, 내가 삶에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가치관의 싸움이었다. 결국 내 인생 최고의 적은 '게으름' 그 자체가 아니라, 나의 효율성이 우리의 평화보다 중요하다고 착각했던 '어리석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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