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15]
처음에는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투닥거리게 될지는 솔직히 정말 몰랐다. 무엇 때문에? 아내와 모든 시간을 같이 하는 이 '공동 육아' 때문에 말이다.
처음에 괜찮다고 느꼈던 것은, 서로 감정으로 투닥거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처음부터 서로 맞지 않고 삐거덕 거리는 지점들은 많았지만, 그것보다 신생아 키우기에 몰두하다 보니 부부간의 감정 다툼은 사치라고 여겼던 것 같다. 아마도 초반 50일 정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한 세 달쯤 되는 시점부터는 사소한 것부터 본격적으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갈등은 크게 두 가지 뿌리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첫째는 '내 방식이 옳아'라고 생각한 나의 '편협함'이었고, 둘째는 '내가 더 힘들어'라고 느끼는 '피해의식'이었다.
나의 편협함은 육아방식의 작은 차이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진짜 별거 아닌 것들인데 예를 들면, 나는 둥이에게 분유 수유를 할 때 젖병을 조금씩 돌려가면서 먹인다. 그렇게 해야 분유가 침잠해서 남지 않고 골고루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는 요런 것엔 좀 둔감한 듯하여 아내가 분유 수유할 때 한마디 거들었더니 아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소변이 많이 차거나 대변이 양이 많을 때 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저귀 채울 때 최대한 치켜올려서 밴드를 붙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하는 것을 유심히 보니 기저귀가 밑에 내려가져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기저귀 채울 때는 응가가 새지 않게 좀 위로 땡겨 달라고 하니, 또 아내 눈이 가오리 눈이 되었다.
어느 날은 내가 둥이 분유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기 위해서 어깨에 올리고선 사뿐사뿐 집안 산책을 하는데,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자갸, 분유 수유 하고 나서 젖병은 바로 초벌 설거지 좀 해놔 줄래?" 당연히 맞는 말이고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왜 그때는 내 반응이 삐딱선을 탔을까? "나도 당연히 알지, 근데 둥이 트림 시키는 게 먼저니까 좀 이따 하려고 했던 거야. 조금 늦어도 상관없잖아."라고 날 서게 대답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또 젖병 물세척 정도는 둥이 트림을 시키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고 실제 그렇게 했었던 것이기도 한데 말이다.
다음으로 나의 피해의식은 '누가 더 많이 일하는가'라는 유치한 저울질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기저에 깔린 건 이게 제일 큰 것 같다. 보통 아침에는 아내가 늦잠을 자고 내가 먼저 일어나는 편이어서, 내가 둥이를 깨우고, 기저귀를 갈고, 첫 번째 분유 수유를 시작한다. 그러면 아내가 조금 이따 일어나서 환기를 시키고 둥이 방을 청소하고 거실 매트를 닦거나 모아두었던 젖병을 세척하는 등의 일들을 한다.
하나하나 경중을 따져가며 비교해서 양을 가늠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도 서로 아는데 왜 툭하면 '나는 이거 했는데 너는 뭐 했니'라는 말로 괜히 투닥거리게 되는 것일까?
이 처럼 정말 별거 아닌 일들, 정말 사소한 일들, 조금만 융통성 있게 대처하거나 '응, 그렇게 할게.' 한마디면 끝날 일들인데 왜 우리는 이 사소한 것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감정 소모를 하며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연재 초기, 3화에서는 공동육아의 긍정적인 측면에 포커싱하여 글을 썼었다. 또 당시만 해도 오히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육체적으로 힘든 ― 밤잠을 제대로 못 자던 ― 시기였었기에 육아동지인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고 또한 둥이가 잠들기만 하면 우리도 바로 잠에 빠져들던 시기였었기에 투닥거릴 기회조차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둥이가 나름 밤잠도 더 잘 자게 되고 신생아 시기와 초반부의 조심성이 극대화했던 시기를 벗어나니 오히려 서로 간의 사소한 차이가 더 도드라져 보이고 그냥 넘기기보다 한마디 보태다가 투닥거림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기억도 안나는 사소한 걸로 서로 또 '나는 이거 했다. 너는 뭐 했냐' 경쟁을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날은 서로 컨디션이 좋았는지 크게 기분 상하지 않게 말이 이어졌고, 이어서 아내가 이런 제안을 했다.
"자기야 우리 이렇게 한번 해볼래? 어디서 봤는데, 싸울 것 같을 때는 말 끝에 '용'을 붙여서 말하면 화가 잘 안 난대. 우리도 이렇게 한번 해볼까용?" 처음에는 그게 뭐냐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피식 웃음이 났다. 나도 바로 합을 맞췄다. "그럴까용?" 이렇게 말하니까 말하면서도 화 내기가 쉽지 않았고, 상대방도 말투 자체가 웃기게 되니 뾰족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 방식도 짜증이 이미 가득인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는 충분히 대화의 온도를 낮추고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적용시켜 볼만한 아이디어가 하나 생겨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사실 니가 마니 했니, 내가 마니 했니 싸움은 답이 없다. 그리고 답이 없다는 것을 서로도 안다. 서로가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물론, 나보다는 아내가 아마 더 정신적 스트레스가 클 것이다. 이유식을 계획하는 것도, 준비물을 구매하는 것도, 주도적으로 하는 것은 아내이고, 나도 의견은 내지만 주도하기보다는 정해지면 그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에 더 포인트를 둔다. 물론, 육체노동 관련은 당연히 내가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이 문제는 서로를 좀 더 '측은지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는 부부다. 부부는 고난도 기쁨도 함께 나누기로 맹세한 사이. 함께 손을 잡고 길을 걸어 나가야 하고, 같이 늙어갈 존재. 우리는 부부로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를 함께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 젊은지 늙었는지 따위도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고, 결국 모든 것은 찰나의 순간처럼 지나가버리기에 '지금, 여기'에 함께하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겠다는 마음가짐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서 얘기했듯, 우리는 서로 정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아기를 정말 사랑한다. 서로도 사랑한다. 사랑은 표현이다. 고맙다는 말은 단순히 고마움의 표시인 것뿐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며, 존중의 표현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음을, 당신을 존중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나보다 아내가 훨씬 잘한다고 생각한다. 둥이가 없을 때에도 그렇게 잘해줬었기에 이젠 내가 더 많이 고맙다고 먼저 말을 건네야겠다.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서로 약속한 것은, 필로톡(Pillow talk) 정책 재개이다. 12화에도 언급했듯이 필로우 토크는 우리에게 꽤나 유용했다. 그런데 둥이가 분리수면을 하게 되면서 필로토크 시간이 증발해 버렸다. 분리수면 하기 전에는 둥이를 재우고 조용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서로 꼭 붙어서 조용조용 귓속말을 하면서 애정을 확인했는데, 분리수면이 되니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휴대폰을 보면서 서로의 시간을 보내며 따로 잠이 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취침시각을 다시 일치시키고 불을 끄고 폰도 내려놓고 필로톡 시간을 다시 정규 상설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보고자 한다.
글을 시작하며 나는 물었다. 우리는 어째서 하루도 곱게 넘기지 못하는 걸까? 나는 그 답이 더 많은 노력 혹은 더 깊은 인내심 같은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답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서로 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 그 자체였던 것이다. '~~ 해용'이라고 귀엽게 이야기하려 노력하고, 잠들기 전 속삭이는 필로톡을 재개하는 것. 내 방식이 옳다는 편협함을 버리고 사소한 것에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것.
이 모든 과정들이 내 물음에 대한 답인 것이다. 결국, 사랑이 답이다. 하지만 이 답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서툴고 유치하더라도 우리만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지혜도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 지혜를 배우는 중이다.
사랑해 둥이야, 그리고 또 사랑해, 나의 동지,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