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여행을 온 게 아니야, 육아를 하는 데 장소가 다를 뿐인거지..
2025.9.28 22:26(CEST), Vienna
새벽에 둥이가 잠을 깼다. 시각은 2시 반. 대략 30분 정도를 안아준다. 그리고는 다시 잠에 들었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둥이 덕에 강제 기상행. 6시가 좀 안되게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고 첫 수유를 하고 다시 낮잠을 좀 잔다. 우리는 다시 집 정리 마무리 시작. 아내는 둥이 이유식 준비에 한창이고, 나는 집 정리를 한다. 그런데 어라, 갑자기 전기가 나가는 것 아닌가. 이게 뭔가 싶어 봤더니 빨래와 건조를 한 번에 돌렸던 게 문제였다. 간단하게 현관 옆에 있는 두꺼비집에서 해당 구역 전원 다시 올려서 해결. 그렇게 다시 집안일 마무리를 하다 보니 벌써 두 번째 수유 시간이다. 후딱 먹고 집 앞 SPAR 슈퍼에 갔다 온다. 피곤하지만 첫 외출이니 아내는 힘주어 드라이를 하고 둥이와 함께 슈퍼로 간다.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이유식 재료로 사용할 청경채와 소고기를 구매하지 못하고 온다. 그래도 야채로 사용할 브로콜리는 하나 건졌다. 숙소에서 이유식을 준비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여유롭지가 못하다. 야채 재료로 선택한 브로콜리 향이 생각보다 진했는데, 그래도 나름 잘 먹어줘서 다행이다. 먹이다 보면 항상 손을 입에 가져가고 주변에 묻고 난리가 난다. 난 이런것들에 꽤 스트레스를 받는데 언제쯤 익숙해질까. 13시 30분에 모짜르트가 먹었다던, 빈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에 예약을 해둔 터라 마음이 급하다. 30분은 걸릴 텐데 이제 막 13시가 되었고, 급히 집을 나선다. 둥이를 안고 길을 나서며 뒤에서 유모차를 끌고 오는 아내를 체크하며 허둥지둥, 종종걸음으로 역으로 향한다. 분명 찾아볼 때 엘리베이터가 있다 했는데, 없다. 그냥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내려간다. 내가 앞에서 들고 아내가 뒤에서 들었는데, 손목이 아파 유모차를 놓치고 만다. 아내가 살짝 비명을 지른다. 맘이 아픈데 또 얼른 내려가야해서 아내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한다. 지금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면 그래도 딱 맞게 도착하겠네 싶었는데 이게 웬걸?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어 뒤에 짧게 붙어 나오는 영어 안내방송을 들으니 뭔가 사고가 나서 지연된단다. 10분 넘게 기다리니, 예약 시간 넘기는 건 기정사실, 13시 27분, 혹시나 하고 지메일로 들어온 예약링크에 들어갔더니 시간 변경이 가능한 게 아닌가. 후딱 1시간 후로 변경하고 컨펌 확인을 하니 13시 28분, 이제야 맘이 조금 놓인다. 한국과 비행기 안에서 그렇게 사람들의 귀염을 받던 둥이인데, 그간 정신없었기도 했지만 뭔가 무뚝뚝해 보이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시선에 내심 아쉬움을 느끼던 차, 빡빡한 지하철에서 유모차에 앉아있던 둥이를 향해 살그머니 웃어주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서야 또 마음이 조금 풀린다. 아 둥이의 귀여움은 인터내셔널이구나. 힘겹게 Griechenbeisl에 도착했다. 모짜르트와 슈베르트가 어디서 먹었는진 모르겠고 일단 주문을 한다. 당연히 슈니첼은 먹어야겠고, 다른 하나를 추천해 달랬는데 이거 뭐 정신이 없어서 직원이 뭐라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내가 블로그에서 본 생선 리조또를 시키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마음의 양식이 아니라 맥주도 주문한다. 아내도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시더니, "우린 여행을 온 게 아니야, 육아를 하는데 장소가 빈인거지." 암, 그렇고 말고. 이게 슈니첼이구나 끄덕끄덕하며 먹으면서도 온통 정신은 '둥이야 조금만 버텨주렴, 너무 크게 울지만 말아다오'라고 기도를 한다. 아내와 번갈아 안아가며 슈니첼과 리조또, 맥주를 마시니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는 기분. 허나, 이때 또 회사에서 연락이 온다. 난 휴직중인데, 아직도 챙겨야 한다니. 그래도 내가 애정을 갖고 하던 일이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온전히 빈을 즐길 수 있으랴. 휴.. 내 정신의 80프로는 둥이에게 가 있고 나머지 남은 20프로 정도로 나머지 모든 상황을 관리하려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도 직원들은 친절하고, 계산 즈음에 모짜르트 사인이 있는 걸 볼 수 있냐 물었더니 친절히 안내해 준다. 한 명은 그냥 어디 어디로 가라고 했는데, 다른 직원이 직접 그곳으로 안내를 해 준다. 가자마자 너무도 익숙하게 기다란 나무 작대기를 꺼내어 벽과 천장 가득한 사인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다행히 딱 시작부터 녹화 버튼 누르기 성공, 가장 유명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부터 시작해서, 마크 트웨인, 그리고 에곤 쉴레 등등. 1분 20초가량을 쉬지 않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알려준다. 설명을 들으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이렇게 친절한데, 이 사람한테 팁을 또 별도로 줘야 하나?'란 생각이 몽글몽글. 참고로 팁은 계산서 달라고 해서 숫자를 확인 한 다음, 대략 반올림하여 10프로 조금 못 되게 주고 내려온 터였다. 난 이걸 어째야 하나 싶었는데 설명을 마친 직원은 뭐라 뭐라 하더니 쌩 가버리는 게 아닌가. 친절한데 또 쌩한 그 친구. 츤데레 스타일인가. 지금에야 뒤늦게 검색해 보니, 거기는 마크 트웨인의 방이라 하고, 예약을 하지 않으면 거기서는 거의 밥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평일 애매한 시간대 방문했던 터라, 자유롭게 유명인들의 손글씨를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마크트웨인이나 에곤실레 이후 인물들부터는 실제 친필 서명이 분명하다 하고 그 이전에는 살짝 상상의 영역과 혼재되어 있다고는 한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이제서야 조금 실감이 난다. 아, 예술의 도시가 여기구나. 모짜르트, 에곤실레가 여기서 밥 먹었구나 하고. 그렇게 식당 문을 나서니, 겨우 마음이 좀 놓인다. 맑은 하늘을 보며 아내와 같이 흐뭇하게 웃으며 길을 나선다. 슈테판 성당 앞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 까지는 아니지만, 엄청 붐빈다. 종교인이 아닌 터라 아주 큰 감흥을 받진 못했지만 그래도 경건한 마음으로 빈 역사의 한 축인 슈테판 성당을 보노라니, 모짜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장소라 생각하니 나름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이때부터 온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둥이를 안기 위해 아기띠를 하면 허리에 부하가 집중되고 그 상태에서 걸어 다니다 보면 온몸이 쑤셔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서 트램을 타고 집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다음 분유 텀이 다가오기에 살짝 늦어질게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날씨도 너무 좋겠다, 트램도 한번 경험해 보잔 마음으로 걷기를 택했다. 그런데 둥이 분유 시간이 지난 터라 유모차에 태우면 울음을 그치지를 않아서 계속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생각보다 허리는 더 심하게 아파오고 설상가상 날도 더운 탓에 목도 너무 탔다. 겨우 집에 도착해서 내가 분유를 먹이기로 하고 아내가 마실 것을 사러 나간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왜 도대체 울음을 그치지를 않니. 결국 여행 온 지 이틀 만에 인내심이 폭발한다. 아내가 음료를 사서 숙소로 들어오는 그 순간, 문을 연 그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만 좀 울어! 그만!!"하고 소리쳤다. 아, 아니다. 그렇게 말짱하게 단어를 내뱉은게 아니고 "아악~!"하고 괴성을 질렀다. 그랬다. 그런데, 그런다고 울음을 그칠 리가 있나. 아니, 전보다 한 옥타브 더 올라간 울음소리에 정신을 잃고 만다. 둥이를 임시 조성한 기저귀 갈이대에 털석 눕히고는 침대로 도망쳐 버렸다. 아내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미처버릴 것 같았다. 아내는 둥이를 한참을 달랜 끝에 분유를 먹이는데 성공한다. 아내의 품에서 놀던 둥이를 침대에 다시 눕혔다. 아내가 침대로 오고, 나는 소파로 스위치. 그렇게 이른 시각에 모두들 잠에 빠져든다. 오후 6시였던가 7시였던가, 잠을 자기엔 한참 이른 시간이었지만, 시차 적응도 덜 된 몸으로 진을 쭉 빼버리니 몸이 버티질 못한 것 같다. 둥이도 마찬가지였을 터. 그렇게 우리 셋은 비엔나의 둘째 날을 지쳐버린 몸과 마음으로 마감하고 말았다. 조금만 더 참을걸, 하는 마음이 뒤늦게 가득 차 올랐지만, 어쩌겠는가. 그 순간 나는 참지 못했던 걸. 항상 뒤늦게 후회한다. 그래도 잠이라도 푹 자고, 아내와 둥이의 피로가 풀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일어나자마자 아내와 둥이에게 화해를 청하고 나서..23:18, 기록 종료.
P.S. 일부러 쉬지 않고 타이핑만 했다. 이렇게도 한번 써봐야겠다 싶었다. 정리와 퇴고는 생각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써봤다. 아무리 피곤했다지만 그래도 한 번만 더 참았어야지 싶은 생각만이 가득한 시간이다. 둥이야, 여보,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