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도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공연장에서,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와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의 협주를 감상했다. 오늘은 엊그제보다 좀 더 좋았다.
여행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가장 처음에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빈필 공연 예매였다. 특히 여기 무지크페라인의 황금홀에서 열리는 빈필 공연은 꼭 보려고 마음먹었다. 물론 둥이를 안고 올 수는 없으니, 아내와 번갈아가며 공연은 단독으로 보고 오기로 정하고 예매를 진행했다. 아내 것을 먼저 진행했는데, 다행히 아내는 나름 쉽사리 좋은 좌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직접 경험해보고 나서 그 가치가 더 확실히 눈에 들어오는 것인데, 내가 가서 보니 아내가 내일 착석할 좌석은 정말 최고의 명당인 것 같다. 어쨌든 아내 것은 다행히 잘 확보했는데, 그 시점에 다른 날의 빈필 공연은 이미 기존 좌석은 다 예매가 진행되었고 남은 것은 취소표를 잡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취소표가 없는 불운한 경우를 가정하여, 그래도 황금홀에서 공연은 하나 봐야겠기에, 엊그제 뮌헨필의 공연을 잡은 것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취소표 예매에 성공하여 나는 얼떨결에 세계 최고의 공연장에서 세계 최정상급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두 번이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은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Martha Argerich와 빈필의 피아노 협주가 1부이고 2부는 빈필 단독공연이었다. 나는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도 않지만 엊그제 이미 한번 다녀온 터라 나름 익숙하기도 하고 오늘 공연은 피아노 협주가 있기에 좀 더 기대가 되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내게는 바이올린보다는 피아노가 조금 더 매력적인 악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감동을 더 깊게 느끼고 싶어서 가기 전에 유튜브로 해당 곡을 한번 접하고 갔었다. 그런데 실제 감동은 더 했고, 갔다 와서 늦은 시각이었지만 뭔가 그 감동을 좀 더 오래 느끼고 싶어서 다시 한번 공연을 찾아들었다. 해당 곡은 "Prokofiev Piano Concerto No. 3 in C major Op. 26"이다. AI에 따르면 20세기의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독창적이고, 화려함과 깊이를 모두 가진 명곡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오늘 공연이 더 인상 깊었던 것은 피아노 연주자 때문이었다. Martha Argerich는 1941년생으로 올해 84세이다. 일반 적으로라면 거동도 불편할 정도의 노령인데, 실제 피아노 연주를 하러 걸어가거나 공연이 끝난 후 나갔다가 커튼콜에 돌아올 때는 일부 부축을 받거나 아주 느리게 걸어 나가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고령의 노인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백발의 마녀가 사납게 기운을 내뿜으며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손가락들은 곡을 연주하는 30분 내내 쉴 틈 없이 건반 위를 날아다녔다. 다행히 내가 앉은 위치에서는 그녀의 손가락과 얼굴이 보였다. 물론 미세한 얼굴표정까지 확인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열정과 에너지는 충분히 느꼈던 것 같다.
공연 자체의 퀄리티도 당연히 최상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에너지에 더 감명을 받았다. 오케스트라를 휘어잡고 황금홀의 공기 자체를 바꾸어버리는 '살아있는 전설'의 공연. 정말 매력적인 시간이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더 궁금해지고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에게 승인을 받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디지털 피아노를 한대 장만해서 뚱땅뚱땅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부터 조금씩이라도 연습하면 10년 후에는 그래도 들어줄만하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2부 공연 역시 좋았다. 특히 앞에 앉아있던 큰 키의 노인분이 옆에 앉았던 부인과 자리를 바꾸어 앉는 바람에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조금 더 잘 보였고 지휘자의 몸짓과 손짓에 연주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것은 나름 재미난 경험이었다.
내일 아내의 공연 레퍼토리도 똑같다. 꼭 사전에 유튜브로 한번 음악을 온전히 들어보고 가라고 해야겠다. 물론 아내는 첼로도 연주를 했었고 나보다 클래식에 나름 관심도 많은 편이라 더 잘 이해하고 듣겠지만 말이다. 내일 아내가 좀 더 편안하게 자유시간을 갖고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둥이랑 좀 더 많이 놀아줘야겠다. 나는 둥이랑 더 알찬 시간을 보내고, 아내는 음악 감상에 집중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을 뿐이다. 찰나를 즐기고,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여 나중에 잘 꺼내보도록 해야겠다.
오늘의 결론, 빈에 온다면 황금홀에서 빈필의 공연을 꼭 보도록 하자. 빈필을 못 잡으면 황금홀의 다른 공연이라도 잡자. 그것조차 어렵다면 콘체르트하우스든 어디든 무엇이든 공연은 꼭 보자. 음악의 도시인데, 음악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 같은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도 이 정도 감동을 받았으니,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깊은 감동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가격이 문제라면 입석도 좋다. 표제의 사진은 그 입석 자리에서 공연을 감상하는 현지인들이다. 특히 현지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도 이런 수준 높은 공연을 더 편하고 저렴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