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Day 5

그녀의 웃음소리

by 그냥 하자
오스트리아 아가들이랑 친구 먹자!


오늘은 좀 여유로운 하루였다. 둥이를 위해 아기들 체험용 공연을 오후 2시 반에 갔다가 저녁 6시에 동네 맛집에서 맛나게 저녁을 먹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나는 어제 브런치 글을 쓰고 늦게 자느라 곯아떨어져 있는데, 아침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잠이 살짝 깼다. 눈을 게슴츠레 떠 보니 아내가 이미 러닝 복장을 갖춰 입고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한다. 조심하라고 겨우 한마디 하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좀 더 자볼까 했는데, 우리 둥이는 '컨디션 아주 좋음'인가 보다. 어느샌가 일어나 놀아 달라고 보챈다. 얼른 기저귀를 갈고 아침 첫 분유를 먹인다. 먹이는 중에 아내가 들어왔고 조깅하던 중에 클럽 죽돌이 죽순이들이 아침에 나오는 거 보고 조금 무서워서 얼른 들어왔다고 한다.


오늘 아침은 오트밀 소고기 죽. 아내가 둥이 이유식을 위해 쌀과 오트밀을 챙겨 왔는데, 계산 실수로 생각보다 많은 양을 가지고 와버렸고, 그걸 얼른 소비해 내기 위해 오트밀 소고기 죽이 아침으로 당첨되었다. 장모님의 손맛은 처남이 대부분 가져가 버렸지만, 대신 창의력이 충만한 아내는 어떤 상황에서도 적당히 그럴듯하게 요리를 만들어 내곤 한다. 이곳에서도 열악한 환경이지만 아내는 뚝딱뚝딱 요리를 만들어냈고 생각보다 또 그럴듯한 맛이 났다. 그렇게 오트밀 소고기죽 대략 10인분,,은 사실 농담이고 한 5인분이 만들어져서 먹고 남은 건 냉장고에 보관을 했다. 이후 집정리를 좀 더 하고, 살짝 낮잠을 자고, 집주인에게 요청했던 밥솥을 개시했다. 아시안마트에서 산 동남아 산 쌀을 가지고 처음 밥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되었다. 그렇게 집정리를 계속하다 한국에서 챙겨 온 짜장을 데워 먹었는데 맛은 있었지만, 김치가 없는 것이 살짝 아쉬웠다.


둥이 기저귀 세트, 분유 세트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공연장인 Das Muth는 빈 소년 합창단의 전용 연습장으로 사용하는 곳으로 바로 옆에는 합창단 기숙사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일반인에게 개방은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기저귀 교체와 분유 타임을 위해 공연장 인근 공원으로 향한다. Augarten이라는 정원인데, 조금 전에 검색해 보니 빈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라 한다. 혹자는 쇤부른, 벨베데레와 더불어 빈을 대표하는 정원 중 하나라고도한다. 우리는 쇤부른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넉넉지는 않아서 이번에도 정원 한쪽 귀퉁이만 살짝 맛을 보고 나왔다. 쇤부른은 분명 다시 가서 조깅도 하고 시간을 보낼 계획이지만, 이곳은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 공연은 전적으로 둥이를 위해 열심히 손품을 판 결과였다. 물론 독일어로 진행된 점, 그리고 둥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엔 아직 너무 어린 점 등이 아쉽기는 했으나, 글로벌 아기들과의 교류, 신나는 율동과 음악 등은 둥이의 오감 자극과 발달에 충분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한국에도 찾아보면 이런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글로벌 문센이라는 아내의 표현에 맞장구를 치며, 약 1시간 넘게 재미나게 놀다가 나왔다.


올 때는 버스와 트램을 타고 링스트라세를 구경하며 왔는데, 갈 때는 빠른 복귀를 위해 지하철을 타기로 한다.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젤라또 가게를 지나치려다 아내의 제안으로 하나씩 사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또 둥이 분유를 먹이고 나는 또 10분 정도 꿀잠을 자고 일어났다.


저녁에 갈 곳은 SIXTA라는 동네 맛집인데, 구글 지도 평점이 자그마치 4.9이며 까다로운 한국인들 리뷰 모두가 맛과 서비스를 칭찬한 집이다. 7년 전 리뷰도 칭찬일색인데, 아직도 높은 평점을 유지한다니 이런 집은 무조건 실패할 일이 없는 곳이다. 슈니첼도 맛나다지만 우리는 이미 모짜르트와 에곤쉴레가 먹었던 식당에서 슈니첼을 먹었으니, 스테이크와 굴라쉬를 먹기로 했다. 굴라쉬는 헝가리식은 아니고 국물이 적은 걸쭉한 굴라쉬였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아내가 주문한 스테이크 역시 아주 적당한 굽기 ― 한국인스럽게 미디엄 레어로 주문했는데, 거의 레어 스타일로 나오긴 했다 ― 였고 곁들여 나온 시금치 감자 퓌레도 조화롭게 잘 어울렸다. 야외석에 앉아서 먹었는데, 날씨는 여전히 너무 좋고 맛난 음식과 맥주 한잔을 곁들이니 오늘도 역시 더할 나위 없었다. 계산할 때 둥이를 아내가 안고 있었는데, 계산서를 가져온 남자 직원이 둥이의 미소와 꺄르르 웃음소리에 무장해제되어 연신 귀엽고 이쁘다고 칭찬을 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비엔나 사람들 다 무뚝뚝한 줄 알았더니 또 그건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게 여유롭게 맛난 저녁 식사를 하고 둥이를 안고 아내와 산책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 내내 둥이와 꺄르르 웃기 놀이를 하며 오는데, 정말 아기의 웃음소리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매력이 있다. 돌아와서는 또 육아다. 한국과 다를 것이 없는 루틴이다. 둥이를 씻기고 마지막 수유를 하고 재운다. 지금 둥이는 잘 자고 있고 아내는 블로그를 쓰고 나는 브런치를 쓴다.


모든 것은 찰나다. 찰나의 경험은 당연히 소중하며, 그 경험을 하는 '순간'의 가치는 쉽게 따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또한, 이 순간은 흘러가버린다. 흘러가버리지 않게 붙잡아 두려면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 그래서 나중에 회상하고 반추하며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추억을 간직하는 일'이란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이 글 또한 모닝캄 기내잡지에 실린 것이다.)

추억을 푸대접하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버릇없는 어린아이와 같다.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을 일부만 짜내고 나머지는 집어던져 버린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얻은 추억들을 제대로 다룰 줄 몰라서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에 탐닉하는지도 모른다. - 추억을 간직하는 일 -


나는 기억력이 좋지 못하기에 순간에 집중하는 것을 더 편안하게 여기며 살았던 것 같다. 추억을 헤집는 일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행위들을 함으로써, 소중한 순간들을 조금 더 길게 가져가보려 한다.


여전히 순간에 집중하며 순간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나, 살면서 때때로는 지나간 그 '순간'들을 다시 불러와서 느끼고 싶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미련과 후회, 집착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끌어안아주며, 즐거웠던, 힘들었던 그 순간순간들을 가끔씩 꺼내어 보는 것도 재미난 일이 될 것 같다. 오늘도 나중에 꺼내어 볼 추억의 한 페이지가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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