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Day 4

화창한 하늘, 환한 웃음, 그저 오늘만 같아라.

by 그냥 하자
유럽의 여름 그 잡채

어제 우리 계획은 이랬다. 내일 하루는 교통수단을 타지 말고 동네 탐방을 하기로.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늘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고, 계획대로 되지 않은 하루였지만, 그저 더할 나위 없었다.


간단히 여정을 정리해 보자면, 아침에 첫 수유 이후 둥이가 곤히 잠든 틈을 타서, 베이비캠으로 잠든 둥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내와 엊그제 봐뒀던 동네 카페로 향했다. 크루아상 카푸치노 세트 하나와 아메리카노 1잔을 시키고 사람 구경을 했다. 직원이 별로 친절하지 않았지만, 이제 이 동네 특성인가 보다 하고 넘기려고 한다. 그런데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아내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니 그제서야 직원이 "세트 가격이 아니라 개별가격으로 계산했네요 죄송해요" 이런다. 음, 분명 실수겠거니 싶겠지만 뭔가 좀 싸한 느낌이 든다. 이 동네 식당들 관련 구글 리뷰에서 동양인들에 대한 차별과 불친절 했다는 후기들를 많이 봐서 그런가, 실수할 수도 있겠거니 싶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아, 참고로 커피와 크루아상은 정말 맛있었다.


집에선 또 이유식을 먹이고, 분유를 먹인다. 아내가 열심히 준비해 준 덕분에 비엔나에서도 둥이 이유식 스케줄은 큰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준비 과정 중에 아내가 단 하나 계속 불만이었던 것은 '물'이었다. 석회질이 많은 유럽의 수돗물을 사용하는 것이 불안했고, 마트에서 산 페트 생수 역시 끓이면 하얀 석회가루가 나오는 건 마찬가지라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숙소 인근 동네의 마트는 다 다녔는데 '아기 생수'는 구할 수가 없었다. 참고로 Baby water라는 것이 있는 것도 나는 처음 알았다. 미네랄과 질산, 나트륨이 아주 적게 포함되어 신장과 장이 약한 아기들에게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한다. 물론, 어른들은 석회질이 포함된 물을 마셔도 건강에 큰 이슈는 없다. 어쨌든 아내에게는 중요한 문제였고 아기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한 아내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기에 나도 이래저래 신경을 계속 쓰고 있었다. 결국 답을 찾은 것도 아내였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DM이라는 마트에서 Baby Water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올리브영과 유사한 성격으로 보이는 이곳에는 특히 아기 관련 제품들이 아주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고 한다. 삼천포로 잠깐 빠졌는데, 그렇게 두 번째 수유를 하고 나서 다시 집을 나섰다.


아까 아침에 카페를 다녀오는 길에 숙소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59A 노선버스가 링스트라세 입구까지 잘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터라, 또한 날씨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던 터라, 둥이도 밥 잘 먹고 기분이 좋아 보였던 터라, 안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갔다. 일단 버스를 타고서 링 입구에 도착한 후에, 무엇이든 발길 닿는 대로 가보자고 의기투합하고 길을 나섰다. 그래서 우선 카페 자허Café Sacher를 둘러보고 싶다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59A 버스를 타고 가서 Oper, Karlsplatz U 정류장에 내렸다.


그런데 결국 세상일은 계획되는 되는 일은 없다. 내리자마자 둥이가 울기 시작해서 기저귀를 갈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람 없는 곳을 찾아 헤매는데 적당한 곳이 보이지가 않았다. 여차저차 그냥 사람들이 있더라도 블랭킷으로 둘러싸서 유모차 안에서 해결해 보자 해서 세팅을 하려는데,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내가 둥이를 안고 있었고 짐 정리를 위해 아내에게 둥이를 건네주는데 잠깐 서로 신호가 맞지 않아서 둥이를 놓칠 뻔한 것이었다. 아내는 이후로도 몇 시간 동안 가슴이 계속 두근거릴 정도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렇게 놀란 상황에서 설상가상, 기저귀 매트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우린 휴대용 기저귀 매트를 애용하고 거기에는 항상 비상용 기저귀 3개가 들어 있다. 그런데 그것을 통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까 하다 그냥 근처 마트에서 기저귀를 사기로 했다. 마트야 널렸으니, 근처의 Billa로 가기로 한다. 그런데, 분명 구글지도 어플을 따라갔는데 왜 도대체가 보이지를 않는 거니.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다시 정확한 입구를 찾아간다. 그냥 빌딩 반대편에 있었는데 구글에서 잘못 알려준 것이었다. 그렇게 또 힘을 좀 빼고 난 후 기저귀 구매 성공.. 할 뻔했는데, 이번엔 우리가 필요한 단계의 기저귀가 보이지 않는 것 아닌가. 포기할 수 없기에 제일 밑칸의 기저귀들을 거의 다 헤집고 제일 뒤에 딱 하나 있던 3단계를 겨우 찾아서 결국 기저귀 획득에 성공한다. 그러다 또 다음 분유 텀이 돌아왔다.


여긴 정원 같은 곳이 많으니 적당한 곳을 찾아가서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먹이기로 한다. 구글 지도로 적당히 초록색 많은 곳을 보니 부르크 머시기라고 되어 있다. 좋아, 일단 여기로 가자. 그런데 알고 보니 여긴 호프부르크 왕궁 바로 뒤편에 있는 왕궁정원Burggarten이었다. 저 위 사진이 오늘 찍은 '유럽 그 잡채'인 왕궁정원의 주말 모습이다. 아까 빌라에서 산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고 제일 전망 좋은 분수 앞 벤치에 아내와 둥이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여유를 만끽한다. 정말 날씨가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 초록초록한 잔디가 펼쳐져 있고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들이 잔디에 드러누운 빈 시민들에게 그늘을 드리워준다. 한편에는 치어리딩 무리가 열심히 여자를 던져 올려 남자 손에 얹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고 상의 탈의한 곱슬머리 청년은 잔디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한다. 어린아이들은 꺄르륵 거리며 피크닉 블랭킷에 드러누워 책을 읽는 부모들 주변을 뛰어다니고 푸르른 잔디에는 높다란 나무에서 떨어진 색색깔 낙엽들이 운치를 더 해준다. 나무 그늘 밑의 벤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풍광을 감상하노라니 정말 그 순간은 '힐링 그 잡채'였다.


무뚝뚝한 오스트리아 빈 사람들은 우리 둥이에게 관심을 직접적으로 표출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국가 사람들은 우리네랑 비슷한가 보다. 터키쪽으로 보이는 커플이 내 옆자리 벤치에 앉았는데, 둥이는 고새를 못 참고 또 방긋방긋 웃어 보이는 게 아닌가. 게다가 얼씨구, 꺄르륵 소리 내어 웃기까지. 내 옆에 있던 여자분은 미소가 입에 걸쳐 함박웃음을 연신 짓는다. 한참을 낯선 커플에게 애교를 피우는 둥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교대로 자유 산책 시간을 누린다. 저쪽 잔디밭에 돗자리도 없이 털썩 드러눕는다. 푸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일어난다.


집으로 돌아온 후 둥이 수유를 하고서 나는 혼자 공연을 보러 갔다. 그 유명한 Musikverein의 황금홀 Große Saal에서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는 것이다. 무지크페라인과 황금홀에 관한 내용은 검색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별도 기술은 불필요할 듯하다. 나는 2층 중앙 인근에 자리 잡았는데, 오케스트라 단원들 얼굴은 식별이 좀 어려운 정도의 거리였다. 음향은 충분히 좋은 지점 ― 이라고 AI가 말해줬다 ― 같았는데 좀 먼 것이 그나마 단점이었다. 나는 오늘 공연을 보고 아내는 며칠 후에 이곳에서 또 혼자 공연을 볼 예정이었다.


여기서 또 교훈 한 가지. 아내의 말은 무조건 잘 듣자. 무지크페라인으로 출발하기 직전 아내가 현금을 좀 챙겨가라고 했었다. 나는 카드가 있으니 괜찮다고 하곤 현금을 챙기지 않았고, 날씨가 덥지 않겠어라고 아내가 또 얘기를 했는데, 그래도 드레스 코드를 갖춰 입는 게 좋다는 이야기들이 많았어 라며 굳이 얇은 코트를 챙겨 갔다. 사실 더워서 입지도 않고 손에 들고 갔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코트류는 무조건 Cloak room에 보관을 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보관료는 현금으로만 수취. 어휴. 아내 말을 듣고 애초에 코트를 안 입었으면 제일 좋았을 것이고, 입었다 치더라도 현금을 챙겼으면 문제없이 해결되었을 텐데, 나는 두 가지 모두 내 뜻대로 해버렸고 살짝 귀찮은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안쪽에는 ATM이 없다고 하여 나가서 길거리 경찰에게 물었더니 저 쪽에 마트가 있을 것이니 가보라고 한다. 시간은 약 40분이 남은 상황, 살짝 쫄리기 시작한 마음에 뛰어다녔는데 ATM 기기는 커녕 마트도 보이지 않는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 봐도 그 흔한 Billa나 Spar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당황해서 못 찾은 것일까. 한 바퀴 돌았더니 다시 카를 교회Karlskirche가 보이는 그 광장이다. 그렇지 저기 푸드 트럭이 있었지. 돈을 좀 더 계산하고 현금을 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응 안돼. 우린 현금만 받아. 땡. 저기 옆에 다른 노상매점으로 갔더니 줄이 또 왜 이렇게 길까. 그 뒤로 돌아가봤는데 거긴 또 아무것도 없다. 이제 좀 본격적으로 쫄리기 시작하려는 찰나, 아까 노상매점에 서 있던 일행들 중에 왠지 한국인으로 보이는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그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계좌이체를 할터이니 유로 현금 남은 게 있으시면 좀 주실 수 있냐고 여쭤봤더니 아저씨께서 선뜻 5유로를 그냥 가져가라고 하셨다. 거듭 이상한 사람 아니니 계좌이체로 드리겠다 했지만 그냥 좋은 하루 보내라고 하셔서 감사의 배꼽인사를 하고 공연장으로 달려가니 시작 10분 전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공연은 시작되었고, 황금홀의 황금음향을 감상하면서 문화력이 차오르는 게 느껴지려는데, 2층 우측 벽 쪽 좌석에 앉은 흑발의 현지인이 공연석이 아니라 계속 이쪽을 쳐다보는 게 아닌가. 뭐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녀의 시선은 2층 발코니 좌석이 아니라 1층 뒤쪽을 향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2층 왼쪽 편에도 한 명이 1층 뒤편을 쳐다본다. 이게 뭐야 싶은 생각이 떠오르려는 찰나, 1층 뒤쪽 그러니까 내가 앉은 좌석 바로 밑에서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인 와중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2층 우측 편 벽 쪽 좌석에 있던 우람한 덩치의 현지인 남자분이 벌떡 일어나더니 또 이해할 수 없는 독일어로 1층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아까와는 다른 느낌으로 진짜 정신이 멍했다. 약 20초 정도 공연도 중단되었는데, 소란을 피운 장본인은 직원에게 끌려 나간 듯했고 곧 다시 공연이 진행되었다. 1부 공연이 끝나고 휴식 시간에 왼쪽에 앉은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지휘자의 과거 이력과 행동에 반감을 품은 팔레스타인 지지자의 정치적 항의 시위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이 우리가 온 지금 벌어지다니 참 불행하다'라고 내게 한마디 건넨다.


이날 공연을 정리하는 상념 몇 가지. 아내 말을 잘 듣자. 황금홀은 번쩍번쩍 인테리어가 참 멋지구나. 솔직히 공연 자체는 내게 엄청 큰 감동을 주진 않는구나. 정치적 시위라. 일반인들에게는 오히려 반감을 더 크게 불러일으킬 텐데 정말 효과적인 걸까? 등등..


아, 공연 1부는 바이올린 협주였고, 2부는 뮌헨필의 단독 공연이었다. 1부 끝나고 커튼콜이 다섯 번 넘게 이어졌는데, 정말 You deserve it.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부 끝나고 나서 박수갈채에 이어 지휘자가 앙코르 곡을 하나 진행했는데, 그 곡을 끝내는 지휘자의 손짓이 있고 난 직후, 모든 연주자들이 연주를 멈춘 그 순간 적막이 흘렀다. 그런데 그냥 몇 초가 아니라 약 15초 정도를 지휘자가 미동도 없이 그 마지막 동작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이후에 관객석에서 박수가 시작되고 공연은 마무리되었는데, 그 마지막 순간의 Pause가 인상 깊었다. 지휘자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이었을까. 짐작하긴 어렵지만 1부 때의 소란스러운 시위 자체가 지휘자를 향한 것이었기에 뭔가 더 의미를 담아서 정적을 만들어 냈을까? 란 생각도 들었다. 이유를 짐작하는 건 무리겠지만 어쨌든 오늘 공연의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1부의 바이올린 독주도 2부의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아닌, 앙코르 곡을 끝내는 지휘자의 마지막 손짓과 정적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내는 자러 가고 나는 글을 쓴다. 헤어지기전 아내를 꼭 안고 오늘 하루도 고마웠다고 이야기 한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내 곁에 있는 우리 가족이기에, 그들과 나누는 나의 하루는 모든 시간이 고맙고 소중하고 행복하다. 무지크 페라인에서 혼자 공연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나중에 아내와 둥이와 같이 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행복은 비교할 수 없으리. 그래도 지금은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경험하는 것이 목표이니, 또 이대로 이 순간을 즐기자. 01:03, 기록 종료. (날이 갈수록 종료시점이 늦어진다. 내일부터는 좀 더 간략하게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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