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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쌍이 Dec 11. 2024

새벽을 가르는 출근

비행의 시작과 끝 1

 오늘은 브런치 [틈]에서 소재를 얻어 비행의 시작과 끝, 그중에서도 출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후속으로 퇴근 이야기까지 써보겠습니다. ^^




 아침 첫 비행기의 출발 시간을 아시나요? 아니면, 몇 시쯤 첫 비행기가 뜰까 한 번쯤 생각해 보신 적 있을까요?물론 인천공항은 24시간으로 운영되기에 첫 비행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새벽 1시고 2시고 상관없이 모두가 잠든 캄캄한 시간에도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거든요. 그래서 보통 직장인들 출근 준비하는 시간대(06:00~08:00)를  감안해 출도착 정보를 찾아봤습니다.

 오늘 기준, 인천공항은 나트랑으로 가는 대한항공 5679편이 6시에 30분에, 김포공항은 제주로 가는 진에어 501편이 6시 05분에 출발한 것으로 조회되네요.

 그 이른 시각에 비행기를 타려면 승객들은 얼마나 일찍 일어났을까요. 고양이 세수하듯 눈곱만 겨우 떼고 서둘러 짐을 챙겨 공항으로 나갔을 겁니다. 그 첫 비행기에 타는 승무원들도 일찍 일어나기는 마찬가지겠지요. 국제선과 국내선의 출근 시간 기준이 다르고, 시간대에 따라 출근 장소(회사, 인천공항, 김포공항)가 다르기 때문에 스케줄표를 잘 확인해야 합니다.

 

 띠링띠링!

 새벽 3시 30분 알람이 울립니다. 출근시간이 주는 압박감에 10시부터 누워 핸드폰을 만지다 11시 무렵에나 겨우 잠들었을까? 알람 소리를 못 들으면 어쩌나, 지각하면 어쩌나 걱정하며 선잠을 자던 미쌍이는 무거운 눈꺼풀을 끔뻑거립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려면 굳은 결심이 필요합니다.

 '아, 조금만 더 자고 싶다...'

 손을 뻗어 여전히 울리고 있는 알람을 겨우 끕니다. 찡그린 한쪽 눈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03:40. 꾸물대다 황금 같은 10분이 지나갔습니다. 번뜩 정신이 들며 잠이 확 달아납니다. 늦어도 5시까지 김포공항에 도착해야 하는데, 이제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20분입니다.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 대략 20분. 그 시간을 제외하고 1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합니다. 씻고, 화장하고, 머리 하고, 유니폼 갈아입고 가방 끌고 나가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신입 시절에는 화장이 서툴었기에 공들여 꼼꼼하게 메이크업을 했습니다. 게다가 정수리에 뽕을 띄워 곱게 묶는 올림머리, 일명 쪽머리는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어쩌다 잔머리라도 삐져나오면 스프레이를 한통 다 쏟아부을 듯 뿌려가며 어피어런스(appearance)에 신경 썼습니다. 단정한 어피는 인사고과와 직결되는 문제거든요. 하지만 N연차 승무원인 미쌍이, 이젠 화장도 능숙해졌고 쪽머리도 대충 슥슥 빗어 넘겨 뚝딱 준비합니다. 1시간이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시간입니다. 분명 개인차가 있겠지만 미쌍이 승무원은 연차가 쌓여갈수록 출근 준비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혹여 늦잠이라도 잔 날에는 머리만 후딱 말아 올리고, 간단 화장법을 통해 속성으로도 가능하지요. 화장이 뜨는 건 그저 기분 탓일 겁니다...



 여하튼 여유 있게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기 전 택시를 부릅니다. 보통은 자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이른 시간에는 특히, 출근 장소가 김포공항이라면 택시가 답입니다. 요즘이야 택시 잡는 어플이 워낙 되어있지만 예전에는 택시가 있는 버스 정류장 근처까지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거든요.

 지나는 사람 하나 없이 가로등만 외로이 불 밝히고 있는 거리. 덜덜덜,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미쌍이 승무원은 어둠 속에서 새벽의 찬 공기를 가르며 걸어 나갑니다. 겨울 카바람이 얇은 스타킹만 신은 다리에 매섭게 지나가네요.  출근할 때나 걸쳐 입는 겨울 코트는 시린 다리를 감싸주지 못합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다 보니 마음까지 시려옵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새벽에 밖에서 떨고 있나 회의감마저 듭니다. 보통의 회사에 들어가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출근할 때 출근하는 삶을 살 것을. 지금에 와 후회해 봐야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만 마음이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새벽 4시 30분. 눈이라도 쏟아졌다면 택시 잡기 힘들었을 텐데 도착 예정 시간에 딱 맞춰 택시가 옵니다. 트렁크부터 탁 열어주시는 걸 보니 베테랑 기사님이 확실합니다.

 김포공항으로 목적지를 말하면 기사님들이 질문들이 이어지기에 미쌍이 승무원은 딱 정리해서 인사와 함께 건넵니다.

안녕하세요.
김포공항 국내선 1층으로 가주세요.
2층 아니고 1층이에요.

 "아가씨, 국내선 가네. 오늘은 어디로 가나?"

 "네, 제주도요."

 "한번 갔다 오면 끝나나?"

 "아니요, 왕복 두 번이요."

 "아침부터 고생하겠어. 수고가 많아."


 오늘 기사님은 일과 관련된 질문이 많으시네요. 출퇴근이 용이한 공항 근처에 살아 택시 탈일이 별로 없지만, 가끔 출근을 위해 택시를 타게 되면 여러 스타일의 기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은 아무 말 없이 가시지만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하시거나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시기도 합니다. 다행히 미쌍이 승무원도 낯선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시간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질문과 함께 세게 틀어주시는 히터 바람이 몸과 시린 다리에 온기로 전해집니다. 공항까지 달려가는 20여분의 시간. 기사님과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에 온 세상이 담깁니다. 미쌍이 승무원을 내 자식처럼 걱정하는 말까지 들으니 내내 얼어있던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자신의 일터를 지키며 일하는 분들, 그분들 덕분에 누군가는 편의를 느끼고 있을 겁니다. 미쌍이 승무원이 이른 새벽에 이용한 택시처럼 말이지요. 어두운 밤길을 비추며 열심히 일하시는 기사님 덕분에 미쌍이 승무원도 그 새벽을 가르며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무려 10분이나 일찍 왔네요. 그 아침엔 금 같은 시간입니다. 오늘 비행에 관련된 사항을 체크하고 브리핑을 준비합니다. 승무원들이 브리핑을 하고 비행을 준비하는 동안 비행기도 승객들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모든 비행의 시작에는 보이지 않는 준비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기내 물품을 싣고 청소를 하는 등의 시간들이 있지요. 이런 준비 시간은 누군가가 알아주는 시간은 아닙니다.

 승무원들의 비행기 대기 시간은 물론 출근 준비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행시간을 제외하고도 일과 관련해 소요되는 시간이 많습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임금으로 쳐주지도 않는 시간들. 미쌍이 승무원은 공항 근처에 살았기에 그 정도로 움직였지만, 더 먼 거리에서 출근을 하는 승무원들은 그보다  많은 시간을 썼겠지요. 그 새벽 미쌍이 승무원보다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나 더 먼 거리를 달려왔을 겁니다.


비행기에서 만난 일출

 그렇게 준비의 시간을 마친 승무원들이 누군가의 '시작'을 위해 비행기로 향합니다. 여행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출근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일상의 시작을 띄우러 제주행 첫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그런 숨은 시간들이 있기에 비행기가 정시에 있는 것처럼 모든 '시작'에는 숨은 노력의 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제주행입니다."

 새벽 출근을 불평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미쌍이 승무원은 승객들의 시작을 환영의 인사와 함께 맞이합니다. 피곤함과 힘듦 사이에서 우리는 어쩌면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여태껏 벼텨왔는지 모릅니다.


 수고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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