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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가르는 퇴근

비행의 시작과 끝 2

by 미쌍이 Dec 18. 2024

 지난 화에 이어 오늘은 퇴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정시 퇴근, 일명 칼퇴근에 관한 이야기지요.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삶. 잡무가 남지 않고 야근이 없는 회사생활. 직장인이라면 모두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잠을 깨고 새벽을 가르며 출근 시간을 지키듯이, 정시 퇴근을 보장받고 싶어 합니다. 비행기에서 모든 승객이 내리고 나면 담당 존별로 체크할 것들을 하고 승무원들도 비행기에서 내립니다. 공항 한쪽 연결 통로에 모여 보고 사항이 있으면 사무장에게 보고하고, 간단하게 그날 비행에 대한 마무리로 디브리핑(Debriefing)을 합니다. 큰 문제가 생겨 회사로 다시 불려 가지 않는 이상 칼퇴근이 딱 정해져 있는 셈이지요.

 그래서 승무원들은 승객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항공편 지연 즉, 딜레이(Delay)를 싫어합니다. 퇴근 시간이 늦어지니까요. 특히 비행 수당(임금)으로 쳐주지 않는 딜레이는 그 어떤 승무원도 달갑지 않을 겁니다. 예를 들면 항공기의 연결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딜레이가 그에 해당하겠습니다.

 여기서 항공기 연결은 비행기의 스케줄과 관련되는 것으로, 비행기 한 대에는 비행 편 여러 개가 릴레이 달리기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본 나리타를 다녀온 비행기가 승객을 내려주고, 점검을 하고, 승무원이 교체된 후에 미국 LA를 향해서 출발하는 것처럼요. 바통을 잡은 주자가 제 때 들어와야 다음 주자가 바통을 이어받아 달릴 수 있는 겁니다.

 LA로 출발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나리타에서 무슨 일이 생겨 1시간 늦게 출발했다면 다음 비행 편이 항공기 연결로 1시간 딜레이가 되는 것이지요. 1시간 이내의 딜레이는 그래도 양호한 편입니다. 퇴근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죠. 하지만 지연 시간이 몇 시간 이상으로 길어진다면 문제는 조금 달라집니다. 보통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기에 회사에서 대체 항공편을 투입하여 딜레이로 잡지 않겠지요. 하지만 대체할 만한 항공기는 늘 여의치 않습니다.

금일 OO201 편은 항공기 연결로
1시간 50분 지연됐습니다.
출근시간을 다시 확인하십시오.

 띠링띠링,

 문자 소리에 미쌍이 승무원은 핸드폰을 열었습니다.  딜레이가 잡혀 출근 시간이 뒤로 조정되었다네요. 진즉에 보낼 것이지 이미 출근하고 난 뒤에 받은 문자가 야속합니다. 비행준비 하려고 일찍 온 시간 30분에 1시간 50분까지 더해져 도합 2시간 20분. 회사에서 시간 때우기에 돌입합니다. 천천히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은행에 볼일도 보러 가고, 아는 얼굴이 보이면 노닥거려야겠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났었지만 늘 다반사로 있는 일이기에 이제 그러려니 합니다.

 예측 가능한 딜레이 처리가 저러한데, 예측 불가능한 천재지변으로 인한 딜레이는 어떨까요?


이미지 출처: 네이버 노컷뉴스이미지 출처: 네이버 노컷뉴스


 지난달 갑자기 내린 폭설로 하루가 시끄러웠습니다.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하고, 계속 쏟아지는 눈으로 인해 제설 작업이 어려워 교통 대란이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공항도 마비되기 마련이지요. 활주로 제설 작업은 물론이거니와 날개에 쌓인 눈을 치워야 비행기도 뜰 수 있으니까요. 역시나 그날 하루만 200여 편이 결항되었고, 장시간 기내대기로 승객들의 빈축을 사게 된 비행편도 있었다고 하네요. 거의 폭동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기사를 보자니, 꽉 막힌 비행기 공간이 떠오르며 답답함이 밀려왔습니다.

 이유인 즉, 위에서 언급한 지연 문자 건처럼 항공사의 일처리 속도가 너무 늦다는 겁니다. 돈과 직결되는 문제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승객들의 불편을 볼모로 잡아둬서는 안 되겠지요. 이건 승무원이던 시절에도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몇 시간 더 기다린다고 해서 기상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기상 조건이 좋아졌을 때 반짝 이륙하거나 착륙을 한다 해도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그런 날씨에 이륙했다면 불안정한 기류 때문에 비행기가 엄청나게 흔들려 위험했을 것이고, 착륙했다면 마비된 공항에서 승객들이 내릴 주기장이 생길 때까지 또 무한대기 했을 겁니다. 착륙한 뒤 대기라면 차라리 낫습니다. 퇴근시간이 무한정 지체되더라도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지요. 야근이다, 돈이나 더 벌자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도 닫지 않은 채, 이륙을 위한 대기라면 무임금으로 노동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은 비행 수당으로 쳐주지 않아요. 임금의 대부분이 비행 수당으로 정산되는 데, 그런 무임금의 무한 대기 시간은 참으로 못마땅합니다.


"도대체 언제 출발할 거야?
기장 나오라고 그래!"


 워워- 손님,

 기장은 조종실을 지켜야지요. 기장이 운전을 안 한다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랍니다. 계속 관제탑과 회사랑 연락을 해야지요. 그래야만 우리들의 오늘 비행운이 정해집니다. 승무원들은 결정권도 없고, 아무런 정보도 없어요. 그저 회사의 결정이 어떻게 날지 오매불망 기다릴 뿐이에요.  손님과 똑같은 상태로 비행기에 있을 뿐입니다. 저도 '기장 나오라 그래!' 소리치고 싶어요. 하지만 그 기장이 연락을 해주어야만 결정된 사항을 방송으로 혹은 구두로 전달해 드릴 수 있답니다.

 승객들이야 보상금을 받든, 호텔 편을 제공 받든 뒤따르는 대가가 있겠지요. 하지만 승무원들 입장에서는 컴플레인하는 승객들에게 멘털만 털리는 셈입니다. 초과 업무 했다고 보너스 같은 거 없어요. 보상 휴가 준다고는 하지만 제 연차에서 갖다 쓰는 거라 의미 없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천재지변과 관련한 사항은 항공사가 빠른 결단력으로 결항을 시키는 맞다고 봅니다. 시간 끌어봤자 득 될 게 없는 것 같아요. 황금 같은 시간을 잘 아껴야지요. 그래야 승객들도 얼른 단념하고 일정을 조율할 것이고, 승무원에게도 빠른 퇴근이 이어질 테니까요. 칼퇴를 사랑하는 승무원은 딜레이를 혐오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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