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쌍이 Dec 04. 2024

규정이 너무해

손님의 유골함

 이번 이야기는 지난 화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반려 동물 케이지를 설명할 때 잠깐 언급했듯이, 항공기에 가지고 타는 휴대 수화물은 반입 가능한 사이즈가 정해져 있습니다. 가로, 세로, 높이 삼면의 합이 115cm 이내 이면서, 무게도 정해진 기준을 초과해서는 안되지요. 유모차는 일자로 혹은 반으로 완전히 접혀야 하고, 첼로 같은 커다란 악기에 대한 규정부터 환자용 휴대 산소공급기까지 세부적으로 내용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 모든 기준은 항공법에 의거하되 승무원들이 모두 기억할 수 없기에 '업무 매뉴얼'이라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지요. 예전에는 두꺼운 책으로 되어 있어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요즘은 모든 매뉴얼이 태블릿에 저장되어 있기에 검색어 하나만  손가락으로 두드리면 됩니다.

 여하튼 이런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걸러지지 않는 짐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위탁 수하물로 부치는 짐이 정해진 무게를 넘기면 추가 요금이 붙습니다. 그래서 기내로 가지고 오는 캐리어와 배낭등은 무게가 상당히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짐의 무게를 분산시켜야 하니까요. 특히 한국에서 물건을 떼어다 본국에서 파는 일명 '보따리 상'이 많은 노선일수록 짐과의 싸움이 실로 만만치 않습니다.

 나일론 소재 가방(백팩)에 뭐가 그리 꽉 차게 들었는지, 커다란 돌덩이가 몇 개나 들어있는 것처럼 무겁습니다. 가방 주인도 혼자는 선반에 올리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는 짐덩이. 같이 올려주는 승무원도 자칫하다가는 허리 나갑니다. 실제로 무거운 짐 올리다 부상을 많이 입기도 하고요. 저 역시 직업병인 양, 하루도 허리가 좋은 날이 없습니다.



 항공기가 지상에 있는 동안 승객들은 모두 짐을 정해진 공간 (선반과 앞 좌석 밑)에 넣고 착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을 닫고 이동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문을 닫기 직전까지 평온하게 정돈된 상태를 맞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짐이 많은 노선은 선반에 채 들어가지 못해 복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짐들도 있거든요. 다수의 승객이 타는 이코노미석은 짐 넣는 공간 때문에 승객들끼리 신경전도 벌어집니다. 자신의 좌석번호가 붙은 선반에 다른 이가 짐을 넣었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지금 내 가방 남의 가방 따질 때가 아니라고욧'


목 끝까지 올라오는 소리를 눌러내고,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양쪽 복도를 돌며 승무원들과 정보를 나눕니다. 빈 선반이 있다면 그게 어디든 간에 복도에 널브러진 캐리어를 넣어야 하거든요. 다행히 빈 선반이 있다면  얼른 넣겠지만 없다면 캐리어를 다시 내려 화물칸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체되겠지요.

 마침 비즈니스 클래스 쪽 선반에 공간이 있답니다. 딜레이에 대한 압박감은 승무원을 캐리어와 함께 거의 뛰게 만듭니다. 작은 책가방 하나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착착 승무원 손길 몇 번에 비워집니다. 그 무겁던 캐리어가 거뜬히 올려져 빈 공간 안으로 쏙 들어갑니다. 이제야 출입구로 쓰던 마지막 문이 닫힙니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비행기는...

 짐과 싸울 듯 한 바탕 움직이던 승무원은 환영 인사가 담긴 방송이 나올 타이밍에 맞춰 담당 복도에 섭니다. 아까의 전투력은 사라지고 온화한 미소가 장착되었습니다. 오늘은 비즈니스 승무원이니 더 우아하게 인사를 하고, 승객 한 분 한분께 눈 맞춤도 합니다. 그런데 한 외국인 남자 승객 옆자리에 하얀 항아리가 올려져 있습니다. 누가 봐도 그냥 보통 항아리는 아닌 느낌적인 느낌. 싸합니다. 왜냐고요?

 망자의 혼이 든 유골함이 싸한 것이 아니라, 규정을 지키기 애매한 상황이라 등골이 서늘해졌거든요. 항상 언제 있을지 모를 비상상황에 대비해 정해진 규정이기에 때로는 조금 느슨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융통성 있게 하자 뭐 그런 거죠.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의 사무장은 규정을 빡시게 지키기로 유명한 분입니다. 큰일입니다. 사이즈가 큰 첼로는 고정이라도 되지, 작은 유골함을 어떻게 빈 좌석에 고정시키느냐가 문제였습니다.



 비즈니스 승무원 넷이 머리를 맞댑니다. 우선 쿠션을 두 개 받치고 좌석 벨크를 채웠습니다. 고정이 되기는커녕 미끄러지네요. 앞 좌석 공간 따위는 없고 신발과 넣는 공간밖에 없네요. 그곳엔 짐을 수도 없거니와 유골함 고이 모시겠다고 좌석 값을 지불한 승객에 대한 예의는 아닌 같습니다. 고인에게도 마찬가지이고요. 승객에게 살짝 말을 걸어보니 아버지 유골함이랍니다. 고향으로 모셔가기 위해 일부러 비즈니스석으로 끊었다네요.

 애석한 사연을 안고 사무장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냥 두라고 하는 사무장도 이겠지만 이분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네요. 그나마 유족의 슬픔을 조금 헤아리셨는지 이착륙하는 동안만 선반으로 모시랍니다.


 No way-!

 승객의 절규가 눈물과 함께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규정을 지키라는 사무장 말에 어쩔 수가 없네요. 규정을 운운하면 승객도, 승무원도 별 수 없습니다. 법으로서 지키라고 정해 놓은 것. 인도적으로 혹은 편의를 위해서 슬쩍 눈감아 주던 사람들이 잘못인 것이지, 규정을 지키는 사람이 잘못한 것은 아니니까요.

 선반 위로 올려진 유골함 주변에 쿠션을 쌓아 사방을 막았습니다. 애써 올린 유골함이 깨지거나 손상되면 안 되었기에 그것이 승무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였습니다.

 이륙 후 10000ft 사인(안전 고도에 올라가면 울리는 신호음)이 꺼지자마자 유골함으로 달려갔습니다. 조심히 유골함을 내려 여전히 울고 있는 아들에게 안겨드렸지요. 눈앞에서 마주한 슬픔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 슬픔을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규정에 아쉬운 비행이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