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과 함께 비행기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반려 동물입니다. 승무원들끼리 말할 때 저 어순은 절대 바뀌지 않아요. 개, 새... 고양이.
그 외에 다른 반려 동물은 제 아무리 애지중지 키우는 아이라 해도 데리고 탈 수 없습니다. 맹인 안내견을 제외하고 규정에 벗어나는 반려 동물들은 모두 화물칸으로 가야 합니다. 항공사에서 정한 기준에 준하는 동물들만 기내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지요.
한 비행기에 탈 수 있는 반려 동물의 마릿수는 정해져 있고, 운임비도 내야 합니다. 게다가비행 내내 규격 사이즈의 케이지에 안에서 절대 밖으로뺄 수 없으며,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줄 수 없습니다. 개의 입장에선 말 그대로 '개고생'이지요. 19년 가까이 비행을 하면서 반려 새를 데리고 타는 승객은 본 적이없고, 고양이는 그나마 잠이 많은 편이라 그런지 있는 듯 없는 듯 묻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항상 개가 문제였지요.
"승무원이 키우는 개만 빼고 다른 집 개들은 제주도 다 가봤다."
승무원들 사이에 이런 우스개 소리가 돌 정도로 제주 노선은 다른 노선에 비해 반려견들이 많이 탑니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요. 한 시간 남짓 비교적 짧은 비행시간에 국내에서 국내로 넘어가는 것이니 절차도 까다롭지 않겠다, 눈 딱 감고 한번 '개고생'을 감행하는 것이지요. 물론 조용히 잘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몇몇 지랄견(?)들은 문제를 일으키지요. 그 짧은 비행을 끔찍한 기억으로 채워 넣습니다.
애처로운 눈빛
'박박박, 벅벅벅'
뭉툭한 발톱으로 긁어대는 소리와 함께 승객이 걸어옵니다. 한 손에는 반려견 케이지가, 다른 한 손에는 종이 상자가 들려있습니다. 소리는 그 종이 상자에서 나오는 것이었지요. 갈색 닥스훈트. 작은 구멍에 콧구멍을 끼우고 낯선 공간을 탐지하느라 바쁩니다. 승객이 가져온 케이지 사이즈가 클 경우 반려견은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종이 박스에 넣어야 합니다. 좌석 앞 발을 넣는 공간으로 그 케이지가 들어가야만 비상시 있을 탈출에 방해가 되지 않거든요. 대략적인 크기가 감이 오시나요? 네, 아주 좁은 공간입니다. 그러니 그 안이 얼마나 답답할까요.
복도를 지날 때마다 박스를 긁어대고, 물어뜯는 건지 우당탕 부산스럽습니다.
부스럭, 벅벅벅, 소리가 끊이지 않더니만 상자가 너덜너덜합니다. 이미 열린 뚜껑은 찢긴 지 오래고 해맑게 얼굴을 내놓고 있네요. 반질반질한 코가 냄새 맡느라 아주 바쁩니다.
승객이 자의로 반려견을 꺼낸 경우라면 응당 케이지에 넣어달라고 강하게 어필할 테지만 이런 경우는 의도한 상황이 아니기에 참으로 난감합니다. 여분의 케이지 따위는 기내에 실리지도 않습니다. 주변 승객들의 시선이 무섭게 꽂히고, 누군가는 개털 알레르기가 있다며 볼멘소리를 합니다.
"왈왈왈!"
속 타는 제 마음도 모르고 갈색 꼬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또 얼마나 귀엽게요. 하지만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는 상황. 계란으로 바위 내려치는 것 밖에 안되지만, 부랴부랴 신문지를 들고 와 임시 뚜껑으로 덮어버렸습니다.
"손님, 이제 곧 착륙하니까 내릴 때까지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갈색 멍뭉이 보다 더 애절하고, 물기 어려 빛나는 눈으로 승객에게 당부를 합니다. 마주 보며 눈맞춤하는 승무원과 승객. 두 사람 사이로 '조금만 더 버텨보자'하는 동지애가 끄덕입니다.
"손님 여러분, 아름다운 섬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보다 반가운 방송이 있을까요? 도착이 이렇게나 설레는 일입니다.
문이 열리고 복도를 걸어 나오는 승객들에게 '즐거운 여행 하시라' 인사를 하는데, 문제견이 저 뒤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신문지 뚜껑은 날아간 지 오래고, 반쯤 남겨진 종이 상자 안에 전신이 거의 다 드러났네요. 쥐어 뜯긴 종이 상자가 네모난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반려견에게 목줄 채워 걸어 나오지 않음에 감사하고, 규정을 지키고자 끝까지 노력해 준 견주에게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손님-,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초코야, 너도 고생했다!"
사랑하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여행, 참으로 행복한 추억이 되겠지요. 하지만 내 반려견의 성격은 내가 잘 알잖아요. 좁은 케이지 안에서 한두 시간씩 잘 있을 수 있는 아이라면 문제없겠지만 소위 말하는 지랄견(?)이라면 동물병원에 문의하여 방법을 찾아보세요. 애견 호텔도, 지인도 믿을 수 없다면 수면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수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세요.
모든 것은 당신의 선택이지만 '개고생'은 각오해야 합니다.
수면제를 먹였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안에서 내내 울부짖은 강아지도 있었습니다. 노선도 정확히 기억나네요. 자카르타에서 인천으로 오는 밤 비행. 정말 7시간 내내 울부짖었어요. 왈왈, 짖었다가 아우우, 하울링도 했다가. 근처 승객들은 잠 한숨 못 자고, 바로 옆 승객은 털 알레르기 올라와서 팔 한쪽이 벌겋게 붓고... 하필이면 빈자리 하나 없는 만석이라 주변 승객들에게 백배 사죄하고, 연신 파리처럼 손 모았던 기억이네요.
인천 도착해서 내리는데 견주 분도 미안함을 건네시며 케이지를 들어 올리는데, '왘, 와, ㅎ' 강아지 목이 다 쉬어서 제대로 짖지도 못하더라고요. 그 7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 셋은 알지요. 개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