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 분투기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정리하기 시작하듯 나 또한 내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다면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남편과 나는 사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사업장 두 곳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두 곳 중에 한 곳이 정리되면 다른 곳은 추이를 볼 생각이었다. 녹내장 진단을 받은 지 두 달 되는 시점이었다.
서울병원에서 검사를 받던 날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하필이면 그날 계약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절망 속에 빠져 있는데 그렇다고 매수자에게 사실대로 말을 할 수 없어 그렇게 하겠노라 했다. KTX에서 내리자 계약 장소로 향했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기다려 주지 않고 그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눈물에 찌던 눈은 이미 퉁퉁 부어있었다. 중개인 사장님과 매수자에게 몸이 좀 아파 병원 다녀왔더니 눈도 부었다며 대충 둘러대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내 삶들이 고스란히 뽑혀버리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돌아서자 허망했다. 내 사업장은 나의 꿈이었고 나의 전부였다. 이렇게 쉽게 내려놓을 줄 알았더라면 좀 덜 아등바등 살걸, 좀 덜 빡빡하게 살걸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이럴 때 인간은 신을 찾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신의 영역이 필요한 것일까? 미약한 인간 때문에 신은 더 위대해지는 것일까?
서울 병원도 다녀왔고 사업장도 한 군데 정리한 터라 내 삶은 이제 반쯤 정리된 것 같았다. 이제는 내가 안 보일 때를 대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대책을 세워야 했다.
점자를 배워볼까? 아니면 여행이라도 실컷 다닐까? 문턱이 없는 안전한 집을 개조해야 하나...
푸른 하늘조차, 붉은 노을조차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보이는 하루하루가 소중해졌다. 잎새에 이는 바람 한 점에도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서늘한 공기, 따뜻한 햇빛, 구름 한 점도 아름다워 보였다. 눈을 감고 내 얼굴을 만져 보았다. 눈을 감고 만지는 느낌은 눈을 뜨고 만지는 느낌보다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남편의 얼굴도 눈을 감은채 만져 보았다. 보이지 않는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어 그 감각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 감각을 기억하기 위해 저장소가 필요했다. 잊어버리지 않을 저장소. 눈을 감고 거실도 걸어 보았다. 가스레인지는 어디에 있지? 스위치는 여기 있군. 가족들이 없으면 물이라도 끓여 차는 마실 수 있을까?...
이제 그만 눈물도 지칠 때가 된 것 같았는데 그래도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내 몸의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면 또다시 수분이 채워져 눈물이 되는 것 같았다. 이상했다. 인간이 눈물외에 더 슬픈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아침이 되면 웃는 모습으로 출근을 했다. 행사를 계획하고 아이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또 몇 달을 보냈다. 그동안 나는 진료를 2~3일 한번, 1주일 한번, 2주일에 한번, 1달에 한번 시기에 맞춰 병원을 다녔다. 서울 병원에서는 다시 검사를 받으러 오라 했지만 가지 않았다. 진단결과는 분명한 것 같았고 더 이상 병원에서도 해 줄 것이 없다는 말에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안약만 꼬박꼬박 넣고 지냈다. 신학기 입학 시즌이 끝나자 나는 다시 안과 전문 병원을 수소문했다. 이제는 몇 달 지났으니 데이터가 남아 내가 언제까지 볼 수 있는지는 알려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