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 분투기
나 또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몸부림치는 날들이 많아졌다. 녹내장에 대한 앎과 확신이 없으니 정리도 시작도 하지 못하는 엉거주춤의 날들이 매일의 불안을 키워갔던 것이다. 실명에 대한 불안은 나를 또 다른 병원으로 이끌었다.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려는 4월이었다. 다음 해에도 벚꽃을 볼 수 있을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었는데 그동안 다녔던 병원의 자료들을 모아 녹내장 전문 병원을 찾았다. 대구에서 녹내장 전문병원으로 유명하다는 곳이었다. 병원은 역시 사람들이 많았다. 예약을 하고 갔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검사를 하고 또다시 선생님을 만나 설명을 듣기까지는 몇 시간이 족히 흘렀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안압 검사를 하고 시신경 촬영을 하고 시야검사를 했다. 녹내장환자들이 해야 하는 기본적인 검사였다.
시야검사는 한쪽눈을 가린 채 불빛 검사를 하는 것인데 불빛이 보이면 버튼을 누르면 된다. 원통 안을 들여다보며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빛을 쫓아 버튼을 누르면 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장시간 검사를 하다 보면 머리도 아프고 속도 메슥거린다. 빛이 보이는가 싶어 누르려고 하면 어느새 빛은 사라지고 다른 빛이 나타난다. 빛은 아닌데 빛 같은 헛것이 보이기도 하고 진짜 빛인지 상상의 빛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빛이 한동안 보이지 않아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있으면 어디선가 다시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순간을 놓서 버튼을 못 누른 적도 있었다. 자주 검사를 받다 보니 이제는 요령이 생겨 보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게 되었다. 시야검사는 3개월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 하다가 지금은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하고 있다. 눈이 어느 영역까지 볼 수 있는지 어느 부분을 못 보는지 알 수 있는 검사이기 때문에 녹내장 환자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검사이며 지표가 된다.
안압검사는 병원을 갈 때마다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검사인데 녹내장 환자에게 안압이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압이 16~20 사이를 정상 안압이라고 하는데 정상 안압임에도 녹내장 환자는 발생한다. 정상안압 녹내장 환자는 안압을 그보다 더 낮게 유지하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다. 나의 안압은 처음에 16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압을 넣어서 16이었는지 처음부터 16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처음에 나는 안압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었다. 지금은 14 정도로 유지하고 있는데 의사는 목표안압을 11로 정하고 최대한 떨어뜨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안압과 시신경의 모양 그리고 시야검사는 녹내장환자에게 주기적으로 관찰하며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검사다. 나의 경우는 시신경이 약해 더욱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시신경이 튼튼한 사람은 녹내장이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검사결과가 나오자 의사 선생님방에 불려 갔다. 생가보다 젊은 분이어서 놀랐으나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 사실은 제가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정리해야 할까요? 대학원 공부도 그만두어야 할지? 제가 언제까지 볼 수 있지요?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까 너무 불안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음. 시 신경이 약하긴 하지만 그동안의 결과를 보아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약만 잘 넣고 관리만 잘하면 죽을 때까지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젊은데도 진행이 많이 된 상태라 관리를 좀 더 잘해야 합니다. 일을 해도 되고 공부를 해도 됩니다. 책 보는 것과도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무리하지 않으면... 녹내장은 일상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시고 즐겁게 생활하십시오. 걷기 운동이나 혈액순환 같은 운동은 도움이 됩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나 6개월간의 경과로 보아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으니 관리만 잘하면 괜찮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특별히 음식도 가릴 것은 없습니다. 일단 약을 드릴 테니 아침저녁으로 안약을 넣고 다시 한번 봅시다."
나를 진료한 모든 의사들은 여태 부정적인 의견들로 입을 모았었다. 그런데 6개월의 경과로 보아 느리게 진행되니 괜찮다고 하지 않는가. 관리만 잘하면 실명되지 않을 것이라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는 고마웠다. 새로운 인생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모처럼 희망에 찬 얼굴로 병원을 나섰다. 6개월의 경과로 보아 나는 느리게 진행되며 약물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시 안약 부작용으로 병원을 찾았다.
-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