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화 소리 없는 나무처럼

녹내장 분투기

by 푸른 노을

03화 소리 없는 나무처럼


서울의 모 병원을 예약하고 한 달을 기다렸다. 마침내 검사날 아침이다. 혼자 보내기가 뭣한 지 남편이 계속해서 따라나서려고 했다. 나는 사업장이 바쁘니 둘 다 빠지면 안 될 것 같다며 극구 혼자 가겠다고 했다. 사실은 툭하면 흐르는 눈물을 남편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남편은 내가 우는 모습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결혼 후 딱 한번 남편 앞에서 눈물을 보인적이 있었는데 화를 냈었다. 그 후 20여 년을 부부로 살면서도 남편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인적이 없다. 울고 싶으면 차를 몰고 나와 인적이 뜸한 공터에 주차해 놓고 울었다. 욕실에서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울거나 그것도 안되면 거리로 나와 걸으며 울곤 했다. 비가 오는 날은 울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진료 때마다 저절로 나와버리는 눈물이 스스로도 감당이 되지 않았고 남편에게 들키고 싶지도 않았다. 병원 진료 결과에 따라 스스로 좌절해 감당이 되지 않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동대구역에서 KTX를 탔다. 가을의 끝자락인지 가로수들은 갈색의 낙엽들을 제멋대로 흩뿌리고 있었다. 하늘은 쾌청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은 기차 속도만큼이나 사라졌다. 도시의 이름을 기억할 틈도 없이 서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창밖에 펼쳐지는 도시의 이름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건물들도 형체만 어련한 채 묻혔다. 부질없는 내 인생 같았다.

기차 안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소설책이었다. 소설 속에 몰입해 버린다면 복잡한 머릿속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아 집에서부터 가방에 넣어 왔다. 책은 그대로인 채 같은 페이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고 있었다. 책을 덮어 버렸다. 책 읽는 것조차도 눈에 나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질병처럼 다가왔다.


병원에 들어선다. 종합병원이라 그런지 역시 사람들이 많았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다시 의사의 진료실 문을 열었다.

"녹내장이 맞습니다. 오른쪽 눈이 진행이 많이 되었군요. 왼쪽은 다행히 오른쪽만큼 나쁘지는 않네요. 아직 젊은데... 안약은 지금 쓰던 걸 그대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저~ 제가 언제까지 볼 수 있나요?"

"자세한 것은 다시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진행 속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녹내장은 병을 고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지요."

"네? 고칠 수 없다고요? 수술도 안 되나요?"

"수술이 있긴 합니다만 수술을 하더라도 재발합니다. 녹내장 수술은 안압을 낮추는 수술이지 병을 고치는 수술이 아닙니다. 수술 후 3년이 지나면 다시 효과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안압 관리 차원에서 수술을 하는 것이지 약물로도 안압 하강 효과가 있으면 굳이 수술을 권하지 않습니다. 일단 자세한 검사 후 진행 속도를 다시 봅시다.... 보통은 잘만 관리하면 60~70대까지는 볼 수 있습니다..."


"60~70대라고? 100세 인생 어쩌고 하는 판에 고작 60~70까지라고?'

더 이상은 목이 메어 물어볼 수가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자 간호사가 딱했던지 나를 데리고 옆방으로 갔다. 아무도 없으니 조금 진정되면 나오라고 했다. 나는 그 방에서 한참 동안 울었다. 아무리 눈물을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그렇게 소리 없는 나무처럼 울고 또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방을 비워줘야 할 것 같아 주섬주섬 밖으로 나왔다. 간호사가 등을 토닥여 주며 계산을 하고 다시 진료예약 날짜를 잡으라고 했다. 지방에서 왔으니 오늘 검사를 하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그렇게는 안된다고 했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러나 나는 받지 않았다. 또다시 휴대폰 벨이 울렸다. 나는 계속해서 받지 않았다. 내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걸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도로를 걷다 보니 조금 마음이 진정되었다. 가을바람이 눈물을 말려 주었다. 눈이 따가웠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국수가게가 나왔다. 어디라도 앉고 싶은 마음에 문을 열었다. 가락국수를 한 그릇 시켜 놓고 집으로 내려갈 기차표를 예매했다. 남편이 계속해서 전화했으나 받을 수가 없었다. 허탈한 진료결과를 말할 용기도 나지 않았고 진료결과를 입에 올리고도 싶지 않았다. 다만 너무 걱정할 것 같아 문자를 했다.

'진료 중이야. 좀 있다 전화할게.'

뜨거운 가락국수 국물로 몸을 녹이고 나니 기운이 났다. 기운이 난다기보다 증상도 없고 아프지도 않으니 그저 내 머릿속에서 병을 지워버리기만 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될 것 같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다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괜찮아? 병원에선 뭐라 그래?"

"똑같은 소리지~ 지켜보자 하네..."

"괜찮을 거야. 관리만 잘하면 되지. 내가 있잖아... 사업장을 보고 간 사람이 계약하자고 하는데 오늘 저녁 가능하겠어?..."

그랬다. 내 병 때문에 남편은 사업장을 급히 부동산에 내어 놓았던 것이다.

-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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