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녹내장 진단

녹내장 분투기

by 푸른 노을

02화 녹내장 진단


녹내장이란 안압이 상승해 시신경이 손상되는 병이다. 녹내장에는 개방각 녹내장과 폐쇄각 녹내장이 있다. 시신경이 천천히 손상되는 경우를 개방각 녹내장이라 하고 급성으로 빨리 진행되어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를 폐쇄각 녹내장이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압이 정상인데도 진행되는 개방각 녹내장이 많다고 한다.


녹내장을 진단받고 안약을 받아 집으로 왔는데 머릿속은 멍했다. 무의식이 의식을 마비시킨 듯 머리도 마음도 정지되어 갇혀있는 물처럼 멈춰 선 것 같았다. 한쪽 눈은 이미 진행이 많이 되어 진행단계가 1~5중에서 3,4에 가깝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의사의 진단결과에도 내 눈은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녹내장은 실명이 될 때까지 자인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신이 이유 없이 멀쩡한 사람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면 이렇게 내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실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돌아가신 큰어머니를 떠 올렸다. 큰 어머니는 노년에 눈이 보이지 않으셨다. 어둑한 방에서 불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 종일 앉아 계셨다. 어렸을 때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큰어머니는 처음부터 앞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큰 어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앞을 못 보신다는 것을 눈치챘다. 명절에 큰 어머니를 뵌 적이 있는데 큰 어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목소리를 높여 인사를 드리자 비로소 나의 이름을 부르셨다. 어머니는 큰어머니의 실명원인을 얘기해 준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어머니께 물어볼 생각을 못했었는데 너무 어려서 그랬던 듯싶다. 노인이 되면 노안이 오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큰 어머니는 도시로 이사를 갔고 나는 자연스레 잊고 지냈다. 명절이면 고운 한복 차림으로 나를 반기셨던 큰어머니. 목소리로 사람을 구별하셨던 큰 어머니가 불현듯 생각이 난다.


인공위성에서 쏘아내리는 사진처럼 큰어머니 생각이 흩어지자 이번에는 딸의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이 상상된다. 세월이 지나면 딸은 결혼을 할 것이다. 내 눈이 딸의 드레스 입은 모습도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삼키며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애를 쓰는데 또 다른 생각들이 꼬리를 몬다.

밤을 새워서라도 읽고 싶은 책이 있었다. 소설책이든 산문집이든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싶은 것이 나의 노년의 바람이었다. 그런데 책도 못 읽는단 말인가. 내 눈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좋아하는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책을 읽겠다는 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것마저도 불 투명 하단 말인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약 두 개를 처방받아 일주일을 버텼다. 일주일 후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도 마음은 여전히 산만했다. 두려움에 떨며 병원문을 열었는데 나에게 녹내장 선고를 내린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다른 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불치병을 선고해 놓고 일주일 만에 자리를 옮겨버리다니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병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를 원망하고 싶었다. 지금이라고 병을 알아내 치료를 받게 해 준 것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나는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했다.


다른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다. 그 역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진행이 많이 되었군요" 라며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또다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의사의 안타까운 소리에 나의 절망은 깊어만 갔고 나는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서울의 종합병원 안과 전문의에게 다시 검사를 의뢰했다. 두 달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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