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의 별 같은 순간
소풍의 후폭풍은 거셌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들을 써서인지,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파왔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으로 누우면서, 나는 실실 웃었다.
웃은 이유는 명확했다.
내 마음을 들켜버린 후련함,
그리고 그 애의 마음도 어렴풋이 전해지는 듯한 기분 때문이었다.
창 밖의 별을 보다가, 문득 나에게도 있었던 별 같은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는 J가 나를 타깃으로 삼기 시작한 초기, H와도 막 알기 시작한 때였다.
체육 시간마다 “돼지가 달린다”며 귀에다 소곤대던 그 시간.
그 애는 2단 줄넘기를 정말 잘했고,
나는 정말 못했다.
보다 못한 체육 선생님이 직접 그 애를 지정해 나를 가르치라고 하실 정도였다.
“이것 좀 보고 해 봐. 너 진짜 못한다.”
킥킥 웃으며 속삭인 그 애는 직접 시범을 보였다.
20회였나 25회였나, 열심히 뛰어 땀을 흘렸다.
“미안해, 이렇게 시범을 보여주는데 나는 한 번을 못 뛰네.”
“괜찮아. 이런 것쯤이야. 축구보다는 덜 힘든데 뭐.
그나저나, 너 괜찮아?”
“뭐가?”
“귀에다 대고 소리 지르는 거 다 들었어. 괜찮냐고.”
“아, 그거 별거 아니야. 그냥 바람 소리라고 생각하면 되지.”
“그거 오래갈 텐데.”
“뭐, 더 힘들면 나도 화내면 안 되지 않을까?”
“그런 건 아닐 것 같아. 꽤 오래갈 거 같거든.”
“설마. 말하면 그만두겠지.
그렇게까지 괴롭히고 싶을 만큼, 잘못 안 했어.”
“힘들면 말해. 도와줄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우리는 쿡쿡 웃으며 다시 줄넘기를 했다.
몇 번을 도전했지만 한 시간 내내 나는 성공 한번 못 해서 그 애에게 내심 미안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그 애가 나 때문에 괜히 잡혀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애들은 가서 축구를 하는데, 그 애만 괜히 그러고 있는 것 같았다.
불쑥,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거 어떡해, 나 때문에 좋아하는 축구도 못 하고.”
“아냐, 괜찮아. 너 가르쳐 주는 것도 재밌어. 점심시간에도 할 건데, 오늘은 좀 쉬지 뭐.”
그 시간, 줄넘기를 한 번도 성공 못했지만, 그 뒤로 나는 열심히 했다.
단 한번도 성공할 수 없었던 그날이 부끄럽지 않도록,
축구도 포기하고 가르쳐 준 그 애의 가르침을 저버릴 수 없어서.
열심히 한 것 때문인지, 딱 한 번만 성공하자 소망했던 체육 시험 때는 두 번을 성공했다.
나도 모르게 "나도 넘었다!"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시험 끝내고 축구하던 그 애는 교실로 올라갈 때 속삭였다.
"거봐, 하면 된다니까. 잘했어. 가르친 보람이 있네. “
그 때의 뿌듯함이, 지금 별을 세는 그 순간에도 느껴졌다.
그때 느꼈던 그 뿌듯함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었다.
두 번째 별을 같은 순간도 떠올랐다.
H와의 스캔들로 소리 질러버렸던 그 다음날.
나는 한 번 더 용기를 냈다.
용기는 한 번 내는 게 가장 어렵다.
한 번 낸 뒤엔, 두 번째는 생각보다 쉬웠다
아침 일찍, 환기를 하러 교실에 도착했다.
교무실에 이미 출석부가 없어진 걸로 봐선, 누군가 먼저 온 것 같았다.
'그 애인가..?'
조심스레 앞문을 열어 보니, 그 애가 맞았다.
“일찍 왔네.”
책을 보며 무심히 대답하는 그 애를 보면서, 나는 용기를 더 냈다.
“응, 요즘 아침 환기, 안 시켰던 거 같아서.”
“그동안은 내가 했어. 오늘은 네가 할 거야?”
“응.”
자연스럽게 1분단의 창문을 열었다. 그 때였다.
“너, 정말 H랑 친구야?”
“어? 뭐라고?”
“앞반에 H, 너랑 정말 친구냐고.”
“어, 응. 걔랑 나랑 친구야.”
“그래. 알았어. 네가 친구라면 친구겠지.”
“..?”
무슨 말이지, 생각하다 복도 창문을 열려고 움직였다.
“그러면, 나도 친구야?”
“어?”
무슨 말이야, 저게. 그럼 친구가 아닌가? 우리는 무슨 사이지?
당황해서 멈춰 있으니까, 그 애가 말했다.
“대답, 안 해도 돼. 알았어.”
“어.. 우리 친구 사이 아니었어? 같은 반 친구 사이.”
“..... 아니야.”
“뭐가, 아닌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뭔가 묘하게 불편한 느낌이라서,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고 생각했었던 날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날의 물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 물음이 있던 다음 주에, 그 애는 CA시간에 나를 울렸다.
그제야, 그 물음이 ‘질투’였다는 걸 깨닫다니.
알게 된 사실을 되짚으며 나는 계속 웃었다.
웃는 와중에도 근육통으로 온몸이 아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 사이의 감정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창밖의 별을 하나하나 세며,
그 애와의 별 같은 순간들을 함께 떠올린 밤.
그 밤은, 너무도 짧았다.
열 두번째의 이야기는,
축제가 한창이던 학교의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 같이 걸어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