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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집순이 Jan 02. 2024

방치와 과잉보호 사이 그 어딘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방황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가는 동안 듣는 이야기로 구성된 우화가 있다.


당나귀 한 마리를 팔러 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당나귀를 끌고 가니 주변에서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 당나귀를 타지 않고 끌고만 가는 것에 대해 바보 같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태우니 아이가 버릇없다고 한다. 반대로 아버지가 타면 아이를 챙기지 않는다는 핀잔을 듣는다. 어쩔 수 없이 두 명 다 당나귀를 타니 당나귀가 괴롭겠다며 혀를 차는 사람의 말에 결국은 당나귀를 들고 가게 된다.


어릴 적에는 그냥 보고 넘겼던 이야기인데,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니 너무나도 와닿는 이야기이다.




때때로 아이를 방치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tv 시청시간을 제한하지 않을 때, 숙제나 양치를 알아서 하게 할 때, 옷도 입고 싶은 대로 입도록 내버려 둘 때가 그렇다.


어떨 때는 아이를 과잉보호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인데도 아직 등하굣길을 함께 할 때, 아파트를 벗어난 곳을 갈 때는 무조건 내가 동행한다는 규칙을 세울 때가 그렇다.


설문지처럼 표현해 보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아이를 방치한다 - 2(가끔 그렇다)
나는 아이를 과잉보호한다 - 2(가끔 그렇다)


어느 한쪽이 0이 아니라, 양쪽 다 골고루 가끔 그렇다고 표현하면 딱 맞는 듯하다.




어느 한쪽이 무조건 정답, 오답이라고 할 수 없는 게 육아다. 각각의 행동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가중치가 다 다르다.


의 당나귀 우화는 결국 안 좋게 끝났지만, 그 이야기를 육아에 대입할 때는 결말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싶다.


육아에 대한 가치관을 너무 뻣뻣하게 고수하는 것보다는 어떨 때는 주변 사람의 말을 듣고 아이를 과잉보호하던 것을 멈추기도 해 보고, 어떨 때는 방치하던 것을 챙겨줘보기도 하면서 맞춰나갈 필요가 있다.




겨울이라 아이의 손이 건조해서 핸드크림을 사주었다.


알아서 잘 바르겠거니 생각하고 방치했더니 어느 순간 아이의 손등이 전보다 심하게 텄다. 방치한 것이다.


이럴 때는 내가 자주 챙겨 일러주는 게 맞다. 과잉보호까진 아니더라도 이번에는 그쪽으로 무게추를 옮겨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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