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명력은 진짜 질긴 것 같지 않아? 식물은 픽픽 잘 죽어 버리는데, 아이들은 가만히 놔둬도 크는 것 같아서 신기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말하자, 뜬금없이 이렇게 되물었다.
"너 지금 키우는 식물 얼마 주고 샀어?"
3만 원이라고 했더니, "식물은 3만 원만 쓰면 끝이잖아. 사람 키우는 데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식물도 자기 혼자만 풍부한 광량과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습도로 조절되는 최첨단 온실을 제공해 주면 사람보다 더 오래 살 걸?"이라고 했다.
돈만 그럴까, 쏟는 애정도 다르다.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 같아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하루 중 아이에게 할애하는 에너지가 꽤 크다. 아무리 신경을 안 쓴다 한들 자녀가 기관이나 학교에 잘 가는지 귀가는 잘하는지 신경을 쓰고, 하루 두세 끼니를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게끔 한다. 또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돈을 버는 것도 애정을 쏟는 행위이다. 나 먹을 정도만 벌어도 된다면 며칠 굶더라도 일을 안 할 수도 있는데, 아이에게 돈이 들어가는 것까지 감당하려니 힘든 점이 있어도 참아 가며 벌어 온다. 가만히 놔두면 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다. 사실은 사람을 키워내는 게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스스로가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육아는 그래서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 무엇을 할 때보다도 아이를 키워내는 데 제일 많이 에너지를 쓰는데, 그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스스로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꾸준히 에너지를 쏟아도 추가되는 물질적 보상이 없을뿐더러 (심지어 내 몫의 물질도 아이 쪽으로 왕창 쏠린다)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크게 인정받거나 칭찬을 받기도 어렵다. 자기 자신조차도 노력하는 줄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칭찬하기를 잊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막연하게 그저 힘들고 지치지만 어디 도망갈 수도 없다.
하지만 아이들도 스스로 크는 노력을 함께 하고 있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들은 부모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아도 어떻게든 큰다. 부모가 돌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돌본다. 부모에게서 사랑을 못 받을 것 같음을 감지하면 친구나 선생님 같은 다른 의지처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가 끈질기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큰다. 육아에서 어떤 보상이 있다면 같이 살아내는 그 자체가 아닐까? 죽고 싶은 어른도 키워내야 할 아이가 있으면 쉬이 못 죽는다. 아이에게 부모는 우주와도 같다.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아는 보람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엔 그보다 더 복잡한 어떤 현상에 가까운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