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블티 투어 1편
날을 잘못 잡았나?
쿠알라룸푸르 관광 상품은 참 다양한데, 대부분 반딧불, 블루티어스 투어가 들어가 있다. 일명 반블티 투어. 나 또한 반블티가 들어가 있는 일정을 선택했다. 반딧불 보는 건 내 오랜 소원이기도 했으니까. 동화책에 나오는 그 풍경이 진짜인가 항상 궁금했더랬다. 투어 업체도 여러 곳이 있는데 우리는 ‘투어 말레이시아’에 예약을 했다. 출국 전에 미리 예약을 하고 갔다.
[투어 말레이시아] - 시그니처 반블티 투어
아침 픽업 시간에 맞춰 투어밴이 오고 가이드 님과 인사를 했다. 우리 가이드 님은 굉장히 유쾌하신 분이었다. 워낙 입담이 좋으셔서 말레이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같이 투어를 하게 된 팀은 우리처럼 딸과 단 둘이 여행온 모녀, 두 자녀와 함께 온 가족, 이렇게 모두 아이가 있는 가족 세 팀이었다. 덕분에 서로 얘기도 잘 통하고 좋은 분들 만나서 좋다-했는데 나중에 너무 아쉬운 일이 생겼다.
처음 핑크모스크를 가기 전에 시내에 있는 므르데카 광장을 잠시 들렀다. 이곳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이 날은 무슨 기념일이 있어 통제가 된다 하여 차 안에서 둘러보기만 했다. 숙소-쇼핑몰만 다니던 나에게 본격적으로 동네 구석구석을 볼 기회였기에 운행 내내 눈 돌리기 바빴다. 역시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이다. 다소 이국적이긴 해도 우리와 다를 게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괜히 정감이 갔다.
핑크모스크로 가는 길. 핑크모스크는 푸트라자야에 있는데, 푸트라자야는 우리가 있던 중심 도시에서 살짝 떨어진 행정도시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타고 30여분을 가야 했다. 가이드님이 우리나라 고속도로와 다른 점 몇 가지를 얘기해 주셨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건 여긴 고속도로에서 후진이 가능하고, 오토바이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가이드님의 재밌는 설명을 듣는데 마침 옆에 오토바이가 나타나서 다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푸트라자야에 들어서니 klcc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푸트라자야 자체가 행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획도시라 그런지 구획별로 잘 짜여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거리가 우리 숙소 근처보다 깔끔했다. 대신 그만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사람 사는 북적한 느낌은 덜 했다.
그런데 핑크모스크에 도착해 보니, 이곳도 무슨 행사 때문에 입장이 불가했다. 아무래도 오늘 날을 잘못 잡았나 보다. 아쉬웠지만 더운 날 차도르를 안 입어도 되니 좋게 생각하자, 하고 정문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정문 옆으로 가면 모스크 아래층으로 갈 수 있는데, 내려가자마자 호수가 보이는 마당이 나오고 양쪽으로 관광지 느낌이 물씬 나는 여러 식당들이 있다. 이곳에서 핑크모스크를 바라보면 멋있는 건물을 전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즉, 사진 찍기 좋은 곳. 돔 지붕은 단순히 색만 핑크색인 게 아니라 색색의 타일로 무늬가 만들어져 있어 차분하면서도 예쁘다. 이 건물 옆에 있는 뾰족한 타워는 사람들의 기도가 이곳에 모여 하늘에 닿는다 하여, 모스크마다 서로 경쟁하듯 더 높게 지으려고 한단다.
가이드님이 여기 화장실이 주변에서 제일 깨끗하다 하여 미리 다녀오고, 앞의 인공호수를 바라보며 뚜 사진을 찍어줬다. 호수 건너편으로 여러 단독주택들이 보였는데 저기가 최상류 층의 집들이라고 한다. 대략적인 집 가격도 들었는데 우리는 꿈도 못 꿀 금액이었다. 기분 탓인가, 얘기를 듣고 나니 괜히 더 으리으리해 보이더라.
다시 올라와서 핑크모스크 앞 둥그렇고 큰 광장으로 갔다. 이곳이 포토존이다 말하듯 ’ 푸트라자야‘라고 크게 쓰여있는 글자 뒤 저 멀리에 총리 관저가 보인다. 실제로 총리가 행정 업무는 보는 곳이라고 한다. 가이드님이 총리 이야기와 더불어 말레이시아 왕 얘기를 하시자 뚜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희 엊그제 말라카에서 말레이시아 왕 봤어요!”
그런데 옆에 있던 모녀팀도 그날 말라카에 있었단다. 이런 우연이! 이를 계기로 나중에 대화를 했는데 그분은 육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면 살기 위해(?) 종종 아이와 둘이 나온다 했다. 딸이 물갈이를 심하게 해서 제일 큰 캐리어에 생수를 가득 채워오신단다. 오, 나랑은 비교도 안 되는 초고수를 만났다. 덕분에 모녀 여행에 대해 여러 팁을 들을 수 있었다.
드디어 나에게 반딧불 다음으로 메인 격이었던 바투동굴이다. 푸트라자야에서 다시 쿠알라룸푸르로 올라와 바투동굴에 도착했다. 모스크가 이슬람 사원이면, 바투동굴은 힌두교 사원이다. 말레이시아가 다양한 종교가 모여있다 보니 과거에는 많은 다툼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서로 존중하며 도시 곳곳에 여러 종교 사원들이 있으니 관광객 입장에선 참 매력적이다. 바투동굴은 1월 중순 즈음에 힌두교 축제인 타이푸삼 행사가 열리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안전상의 이유로 투어 예약을 할 수 없으니 이때 여행 갈 예정이면 꼭 축제 기간을 참고하기 바란다.
바투동굴은 명성답게 입구부터 북적거린다. 옆에 동굴로 가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저 계단이 생각보다 가파르고 그 수가 많아서 힘드니 최대한 조심히 올라가야 한다. 중간에서 장난이라도 치다간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란다. 뚜가 많이 힘들어할까 봐 여러 번 얘기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런데 역시 오늘 날이 문제인가 보다. 바투동굴에 도착하자마자 하늘이 꾸물꾸물한 것이다. 가이드님이 심상찮은 날씨를 보더니, 비가 쏟아지면 위험하니 절대로 무리하게 계단을 오르지 말고 바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동굴에 다녀오는 동안만은 비가 내리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하며 계단에 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얄궂게도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잠시 뚜와 고민하다가 아직 세차게 오는 게 아니니 조금 더 도전해 볼까 하고 1/3 지점까지 올라갔는데, 우리 마음을 읽었는지 비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정말... 안 도와준다. 정말 위험해지기 전에 철수를 결정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올라가며 잠시 봤던 원숭이들로 위안을 삼았다.
조심히 밑으로 내려와, 이대로 차를 타기엔 시간이 많이 남아서 아깝길래 옆에 건물을 구경하기로 했다. 멀리서 보니 식당도 있는 것이 아무래도 방문객을 위한 곳 같았기 때문이다. 비를 피하는 많은 사람들을 헤집고 상점들을 구경하다 어떤 작은 음식점을 들어가 간식을 사 먹었다. 슈 위에 크림이 얹어진 디저트와 커피를 마셨는데, 맛은 특별하지 않았으나 비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무엇 때문인지 은근하게 시선을 받는 상황은 좀 특별했다.
마지막으로 차에 타기 전 기념품 샵을 들어갔는데, 화려한 힌두교 물품들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뚜는 작은 코끼리 동상이 예뻤는지 한동안 만지작 거리다 내려놨다. 가게 안쪽에 관광객들이 기념 선물로 가져가기 제격인 대량 코너가 있기에 뚜 반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나무 연필 세트를 한 아름 샀다. 짧은 연필 몸통에 색실이 묶여있고 ‘말레이시아’라고 새겨져 있는 색연필이었다. 여기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연필 같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샀는데, 나중에 태국 파타야에서 몸통에 '파타야‘라고 적혀있는 것만 다를 뿐 똑같은 연필 세트를 파는 걸 보고 둘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동굴 안에는 못 들어가서 많이 아쉬웠지만 비가 온 덕분에 사람이 거의 없는 광장 사진도 찍고, 가게에서 간식도 먹어보는 등 다른 추억을 대신 채우고 차에 탔다. 이제 다음은 원숭이들을 만나러 몽키힐로 갈 차례. 아까 바투동굴 계단에서 봤던 그 원숭이들을 잔뜩 만날 수 있나 보다. 기대하며 차에서 좀 쉬던 도중, 문제가 생겼다. 차가 톨게이트를 지나기 직전, 멈춰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