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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쿠알라룸푸르 여행 - (4)

반블티 투어 2편

by 요미
이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


투어밴이 고속도로를 지나 요금소를 막 지날 때였다. 덜커덩 덜컥, 하더니 차가 그대로 퍼져버렸다. 가이드 님이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더니, 차를 고칠 동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단다. 마침 요금소 옆에 화장실과 미니 쉼터가 있어 다 같이 그곳에서 대기했다. 고속도로 한복판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어차피 고장 날 거) 차가 여기서 멈춘 덕분에 투어를 다니는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았을 이 쉼터에도 다 와보고 여행의 재미가 이런 거지 싶었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가족들과 수다를 떨었는데, 네 가족 팀은 아빠가 오랜 회사 생활 중, 이번에 긴 휴가를 받아 오게 되었다고 한다. 모녀 팀은 앞서 말했듯 육아에 지쳐 나왔는데,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을 이미 많이 다녀보신 것 같았다. 우리가 이다음엔 태국으로 넘어간다고 하니, 방콕에서 침대기차를 타고 치앙마이로 가는 코스를 추천하셨다.(나중에 찾아보니 이미 기차가 매진이라 아쉽지만 원래 일정대로 가기로 했다) 모두 여행을 오게 된 계기가 다르고, 여행 기간이 다른데 이렇게 여기서 만나게 되었다는 게 즐겁고 흥미로웠다. 게다가 아이들끼리는 비슷한 또래라 금세 친해져서 차가 고쳐질 동안 다 같이 어울려 개미도 구경하고 도마뱀이 있나 찾으러 다녔다. 궂은날에다 쉬는 날까지 겹쳐 아쉬움이 많았던 투어였지만 멤버를 잘 만난 덕분에 이 날 또한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래 기다렸지만 차는 결국 고치지 못했고, 다른 투어 차량들의 몇몇 남는 자리에 타기로 해서 우리 팀들은 갈라져야 했다. 우리와 모녀팀은 같은 차에 타고 네 가족 팀은 다른 차에 탔는데, 더 많은 대화를 못 나눠서 아쉬웠다. 우리는 맨 뒷좌석 네 자리에 쪼르륵 앉아 남은 투어를 떠났다.




스리샥티 힌두교 사원

Jln Kuala Selangor, Bukit Rotan, 45700 Bukit Rotan, Selangor, 말레이시아


셀랑고르에 위치한 힌두교 사원이다. 바투동굴처럼 다른 사원들이 알록달록한 데 비해 여기는 돌로만 되어 있는데 조각들이 아주 예술이라 화려함으론 전혀 뒤지지 않는다. 맨발로 들어가야 하기에 입구 옆에 신발장에 신발과 양말 모두 벗어 놓고 들어갔다. 안은 카메라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실제로 신도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어서 조용히 한 바퀴 돌고 나왔다. 내가 힌두교도가 아님에도 사원 안의 경건한 분위기에, 한 바퀴를 걷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지며 기도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말레이시아에서 투어를 할 때에는 사원을 많이 들르는 데다가 모기가 많기 때문에 되도록 반바지보다는 긴바지를 추천한다.



몽키힐 Malawati Hill

MY :, 45000 Kuala Selangor, Selangor, 말레이시아


이 날만 문이 닫혀있는 건지, 원래 원숭이가 문 앞에만 모여있는 건지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고 앞마당에서 원숭이들을 만났다. 차에 내려 멀리서 볼 때에는 그저 넓은 공원 입구처럼 생겨서 뭐가 있을까 했는데 가이드님이 주신 간식을 들고 가까이 가니 어느새 소문을 듣고 온 원숭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여기엔 두 종류의 원숭이가 살고 있는데 주황색 원숭이는 사나우므로 최대한 피하고, 검은 원숭이들에게만 간식을 줘야 한다. 또한 아기 원숭이를 안고 있는 엄마 원숭이는 예민하므로 가까이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주의사항을 듣고 살짝 긴장했지만 다행이게도 주황색 원숭이들은 차로 돌아가는 길에 한 마리만 봤을 정도로 별로 없었고, 엄마 원숭이는 스스로 경계하느라 멀리서 우릴 지켜볼 뿐이었다.


몽키힐은 특히 아이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간식을 손에 올려두면 슬쩍 와서 눈앞에서 집어 먹는데, 동물 먹이 주기 체험을 좋아하는 뚜는 엄마 미소를 가득 띤 채 원숭이들을 열심히 먹였다. 원숭이들처럼 뚜도 잘 먹으면 참으로 좋으련만!


20여분 원숭이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드디어 메인인 반블티 투어로 출발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도착 직전 잠시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투어 코스에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라 그런지 관광객 맞이에 매우 익숙해 보였다. 원형테이블에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고 각자 덜어먹는 시스템이었고 큰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단 먹을만했다.



반딧불, 블루티어스

1, Jalan Bagan Sungai Yu, Pasir Penambang, 45000 Kuala Selangor, Selangor, 말레이시아


반블티는 한 장소에서 배를 타고 모두 볼 수 있는데, 선착장 기준으로 상류로 올라가면 반딧불, 다시 반대로 내려와 바다까지 쭉 나가면 블루티어스를 관찰할 수 있다. 선착장에서 먼저 우비를 입고 위에 구명조끼를 입은 후 배에 올랐다. 낮에는 그렇게 비도 내리고 꾸물거리던 하늘이 반블티 투어 때는 잠잠해서 참 다행이었다.

우리 배는 먼저 반딧불을 보기 위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갔다. 점점 동네 불빛이 없어지고 산속 시골같이 고요하고 깜깜한 곳으로 들어오자 배도 천천히 물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곳이 반딧불이 있는 지역이란다. 가이드님 말씀으론 지금 시기가 반딧불이 많은 건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불릴 정도로 반짝이진 않는다 했다. 그러나 반딧불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나무마다 반딧불들이 꼬마전구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궁금했던 반딧불을 드디어 보는 순간이다. 사실 반딧불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기간이 있지만 매번 그 기회를 놓쳤기에 이번 반딧불이 나에겐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두워서 사진에 담기지 않아 내 눈에 열심히 담았다.

가이드님이 몇 마리를 채로 잡아서 직접 보여주셨는데 벌레를 싫어하는 나조차 반딧불만큼은 귀엽고 예뻐 보였다. 뚜도 같이 바라보다가 놓아줬는데, 반딧불 두 마리가 떠나지 않고 뚜 손등에 한참을 붙어있어 아주 행복해했다.


이제 배를 반대로 돌려 빠르게 달려 바다로 나갔다. 블루티어스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점에 살고 있는 플랑크톤을 보는 건데 마찰을 일으키면 푸르게 빛나서 블루티어스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바다 멀리까지 나가기에 겁 많은 나는 살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통 검은 바다에 배 몇 척. 날씨가 안 좋아 출렁였다면 더욱 불안함을 느낄 것 같았다.


한참을 달리다 배가 멈추었고, 뜰채를 나눠줬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배를 밝히던 불이 모두 꺼졌다. 칠흑같이 고요하고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서 우리는 각자 뜰채를 바닷속에 넣었다. 바닷물과 뜰채가 만나는 순간, 신비로운 파란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판타지 소설 속 마법의 빛이 이런 색일까. 정말 말 그대로 ‘빛이 나는’ 푸른색이라서 뜰채로 바다를 저을 때마다 온 정신을 빼앗겼다. 이 또한 어둠 속이라 카메라에 제대로 안 담겨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이가 블루티어스를 보기엔 키가 작기 때문에 잘 닿지 않는다. 아이가 관찰할 수 있도록 부모님이 옆에서 잘 잡아줘야 한다. 또한 뜰채 길이가 다를 수 있으므로 내 것과 비교해 보고 더 긴 뜰채를 아이에게 주기!


그렇게 정신없이 뜰채를 휘저으며 푸른빛을 보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반딧불만 생각하며 왔다가 생각지도 못한 블루티어스의 신비로움이 머리에 오래도록 남게 되었다. 동시에 내가 기억하는 만큼 뚜의 기억 속에도 이 여행이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페트로나스 타워 야경을 보는 건데, 우리는 숙소에서 충분히 봤기에 타워 자체로 큰 감동은 없었다. 단지 놀랐던 것은 우리가 타워 앞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가 지난 시각이었는데, 타워 앞이 마치 토요일 초저녁 성수동이나 강남역에서 볼만한 인파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관광객과 말레이시아 젊은이들이 한 데 모여 이 밤에도 축제 분위기라 이곳이 얼마나 번화한 곳인지 새삼 깨달았다. 또 이곳 사람들은 새벽까지도 불꽃놀이를 하며 논다고 했던 가이드님 말이 생각났다.


거리가 가까워 숙소까지 걸어간 우리. 오늘 투어에 대해 소감을 나눴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안전하게 잘 끝난 투어였다. 세상에 계획대로 되는 게 얼마나 있겠나. 뚜에게 여행을 통해 그러한 것들을 배우고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뚜는 아직 이게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는 눈치였지만... 언젠가는 이 날 내가 얘기한 것들을 기억하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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