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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 Aug 27. 2024

"내가 보기엔 영화 만드는 이 상황이 영화 같아.."

모든 게 다 꿈이었으면...

시나리오 탈고가 퇴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아무 생각 없이 써 내려갔던 이 텍스트들을 영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로 생각 없이 썼냐면 시나리오의 주인공들은 여고생이었고, 학교가 배경이었다. 영화를 찍어본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학교가 얼마나 악명 높은 로케이션인지.. 물론 나는 당연히 몰랐다. 본격적으로 프리 프로덕션을 들어갈 때 즈음 같이 수업을 듣는 학우분들뿐만 아니라 몇 안 되는 영화를 전공한 지인들까지 학교가 배경이라는 소리만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 설마 내가 촬영할 학교 하나 없겠어' 싶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작품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그 어떤 곳에 출품할 생각도 없었던 데다가 그냥저냥 대충 모양새만 갖춘 영상 파일을 종강할 때 무사히 제출하는 것만이 목표였으니까. 딱히 원하는 분위기의 학교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학교 구색만 맞춰줄 환경이라면 상관없는데 그거 하나 못 구할까 싶었다. 막말로 당장 내가 나온 모교도 있는데?


하지만 역시나, 경험자들의 말이 백번 맞았다. 영화를 전공했던 친한 동생이 "언니 우리 제주도에 있는 학교까지 컨택했는데도 까였었어. 비행기 타고 날아가겠다 했는데도"라고 말했던 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벌이었던 걸까.. 당연히 모교에서 돌아온 답은 거절이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학교들로부터 촬영 협조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살면서 이렇게 거절당하는 경험도 해보는구나.. 상업적 목적도 아니고 아주 아주 작은 규모의 촬영일 게 뻔한데 세상은 새삼 각박했다. 종강날까지 가편을 만들기 위해 마지노선으로 잡아둔 촬영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뭐 하나 진행되는 건 없었다. 더구나 보통 이런 프리 프로덕션은 제작 PD와 함께 움직이는데 갑작스럽게 촬영을 앞둔 나에게는 PD 역할을 해줄 사람도, 고용할 돈도 시간도 없었다. 애초에 경영학과 나온 내 주변에 얼마나 영화 현장 일을 해본 사람이 있을 것이며, 영화 전공을 하거나 비슷한 분야 관련 경험이 있는 내 또래 사람들은 다 각자의 졸업과 취업 준비에 정신이 없는 시기들이었다. 무턱대고 부탁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생각 없이 써내려 간 시나리오대로 학교에서 교복을 입은 주인공들의 청춘물 영화를 찍기엔 돈도 사람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로케이션부터 스태프 꾸리는 것까지 뭐 하나 제대로 진행되는 것도 없으니 가뜩이나 없었던 촬영 의지가 점점 더 꺾이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왜 시작된 건지, 왜 이렇게까지 찍어내야 하는 건지 근본적인 의문은 멈추지 않았고, 그냥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F 받을 각오를 할 걸 그랬나 후회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다른 사람들은 화려한 인맥과 비용으로 촬영을 준비 중이었고 그에 반해 대충 내 개인 소장 미러리스 (와중에 최근에 장만했었다)로 시간 되는 친구랑 구색 맞추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던 나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은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다들 저렇게 진심인데, 간단하게 대충 찍고 말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뛰어들게 아니었구나.. 당장 일단 돈은 어디서 구해야 하며 직관 한 번 포기해야죠 왜 여기까지 온 건지 모든 상황과 사람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교수님께선 나의 '대충대충 끝내고 털어내자'의 마인드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셨는지, 나는 경험이 없는 만큼 더더욱 전문 인력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제 주변에 전문 인력이 대체 어디 있겠냐며.. 그럼 이 분들을 모집하려면 대체 얼마를 더 투자해야 하며.. 아득했다. 일을 키우고 싶지 않은데, 이상하게 일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이미 이만큼까지 왔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젠 진짜 내가 그럴듯한 <<영화 만들기>>를 진행해야 하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 이거 왜 했지..?) 있는 인맥 없는 인맥 다 수소문해서 촬영 팀원을 모집하려 했으나, 이 하찮은 감독과 환경에 이런저런 조건들을 협의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와중에 촬영할 학교는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만 커지고 시간만 흐르고 있는 셈이었다. 최악이었다. 특히나 내가 책임지고 감당할 수 없으면 발 들이기도 싫어하고 발 들였다면 어떻게든 만족스럽게 끝까지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엔 이 모든 상황들이 정말 버거웠다. 친구들을 붙잡고 호소했다. 차라리 이게 트루먼쇼처럼 다 꾸며진 일들이라 해달라고, 이게 제발 꿈이라고 해달라고..


https://youtu.be/wQqQkLnJT3Y?si=07VmL96KTPIhPgzL 

너무 내 얘기 같아서 첨부하는 장항준 감독의 첫 연출 일화


와중에 감사하게도 같이 수업을 듣던 선배님께서 나에게 너무 과분한 촬영 감독님과 음향 감독님을 소개해주셨다. 감사하 일이고, 핵심 인력이 해결되어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분들의 이력을 생각하면 속이 더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왜 이리 귀하신 분들이 함께해 주시는 걸까요.. 그리고 또 감사하게도 선배님께서 학교 촬영 장소까지 해결해 주셨다. 다만 이제 촬영 일자를 변경해야 하는 아주 치명적인 불상사가 벌어졌지만.. 자꾸 버거운 일들이 계속되다 보니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그냥 그러려니 했다. 사실 그러려니 못했고 머리가 터졌었다. 아무쪼록 감사한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자꾸만 신세를 지는 것만 같아 면목이 없기도 했다.


촬영날이 다가올수록 감독으로서 더더욱 면목이 없었는데, 내가 이 영화에, 이 작업 과정에 애정이 전혀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고 하찮은 프로덕션에 기라성 같은 스태프들이 붙어서 감독인 나보다도 더 열정을 보여주셨고, 이것보다 더 좋은 작품들에 참여해 봤을 배우들이 이 시나리오를 쓴 나보다 더 깊이 분석을 하며 질문을 하고 있는데도 나는 이 시나리오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싫어질 정도로 이 시나리오를 쓰고 현장을 지휘해야 할 내가 제일 준비가 부족했고, 열정도 없었고, 생각도 아이디어도 없었다. 하루가 지날수록 촬영날이 다가온다는 것에 겁이 났고 숨고 싶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져서 이 모든 게 무산되었으면 좋겠다.. 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계속했고, 자고 일어나면 촬영날과 가까워진다는 걸 믿기 싫었던 나는 매일 밤을 뜨개질하면서 지새웠다. (그렇게 옷 한 벌 장만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촬영날이 밝아올 때까지 정말 나는 내 영화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냥 쉽게 쉽게 살고 싶은데 내 하루하루는 왜 이리 놀라울 정도로 어려운 건데"
- DAY6(데이식스), HAPPY

촬영 준비하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노래였는데 역주행 중인 것을 축하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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