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도 미친 듯이 두드리다 결국 돌아가는 사람인지라..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잠도 못 자면서 약 한 달 반동안 촬영 준비를 했었는데 막상 촬영은 이틀 만에 끝이 나고, 촬영한 학교 측이 허락한 시간 내에 급하게 해산하고 나니 남는 건 공허함뿐이었다. 정신없던 촬영 현장이었지만, 나를 제외한 스탭분들과 배우분들이 이 작고 하찮은 촬영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던 만큼, 촬영 장비 반납을 위해 이동하는 길엔 후련함보단 그들을 향한 일종의 부러움만이 크게 자리했다.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운 시나리오에 작은 규모로 진행되는 실습작인데도 불구하고 전문 인력들이 붙기 시작했을 때의 부담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 부담감은 사실 영화 찍어볼 수 있겠냐고 물었던 교수님과 '영화 찍는 거 한 번쯤 해볼 만한데' 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다른 학우분들의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부터 나를 옥죄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목표치에 다다르기 위해서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니 받아들이고 내 선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성향이긴 하지만, 무언가를 나서서 과감하게 실행하는 추진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비교적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이 명확했고, 그것을 위해 이것저것 다방면으로 공부하고 일하는 모습을 보고 열정이 넘친다고들 했지만, 사실 나는 열정보다는 어떠한 의무감과 책임감에 의해 움직였던 것에 가깝다. 미래를 위해 '해야 하니까' 했다는 것이다. 즉, 나는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라 여태까지 모든 여정들을 즐기면서 소화해 낸 것보단 그냥 매일 어느 정도 스스로 설정해 둔 기준치에 맞게 사는 성실한 사람일 뿐이다. 그 성실함마저도 2년 전 여러 일들로 인해 번아웃이 온 뒤부턴 상당히 느슨해지기도 했다. 열심히는 해보되 나를 압박하는 수준으로 달려봤자 나의 건강만 해친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버렸으니까.
내가 그냥 단순히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 과감한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갑작스러운 영화 촬영에 이렇게까지 멘탈이 깨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전자로 살아오면서 이번 영화 촬영뿐만 아니라 모든 업무를 수행할 때 B,C,D...그 이상을 세운 뒤 온갖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하고, 모든 돌다리를 다 두드려보고 결국엔 돌아가며 지내왔다. 과감함 대신 소심함으로 점철된 성실한 사람은 이렇게 해야 어떠한 프로젝트로부터, 그리고 스스로의 압박감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 살면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영화 촬영을 위해선 두드려야 할 돌다리가 너무 많았다. 경험도 없고, 주변에 같이 힘을 합칠 조력자들도 없는 반쪽짜리 영화 촬영을 혼자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가뜩이나 많게 느껴지는 돌다리가 열 배로 많아 보였고, 나는 두드려볼 시도도 하기 전에 돌멩이들에 파묻히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화 촬영이 그러하겠지만 촬영을 준비하며 엎어지는 계획들도 너무 많았고, 촬영 일정 변경이나 장소 섭외 과정 등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들도 너무 많이 닥쳤기 때문에 내가 돌다리를 두드리는 것은 너무나 무의미했다. 그 와중에 낯을 시미 가리고 사람들과 빠른 시간 안에 가까워지지 못하는 미친 I 성격에, 남들한테 아쉬운 소리 할 바엔 내가 떠안는 사람인 나는 이렇게 단기간에 영화 촬영에 함께할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촬영에 관해 설명을 하고 현장에서 지휘하는 것은 벌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차라리 울면서 겨자를 먹는 게 나을 거라고 말하면서 촬영을 다 끝내고, 어쨌든 한 학기 성적을 위해선 가편을 제출해야 하니 컷도 나름대로 이어 붙이긴 했지만 여기서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이미 촬영하기 전부터 촬영이 끝날 때까지 스스로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다 못해 압박감 속에서 나의 성격적 단점을 마주하는 는 괴로운 몇 달을 지내왔던 지라, 이 비슷한 과정을 후반작업에서까지 반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비겁해서 그냥 내 영화를 미완성된 상태로 외장하드에 박아둔 뒤 도망쳐 나왔다. 수업 시간에 각자의 가편을 공유하고 귀에 들어오지 않는 피드백들이 오고 갈 때 나는 정말 외로웠다. 그리고 또 그렇게 열정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작품에 의견을 덧붙이는 모습이 부러웠다. 내가 나름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왔던 건 다 한없이 가벼운 마음이었던 것 같아 기가 죽기도 했다. 어디 가서 영화 좋아한다고 다시는 말 못 할 정도로, 작은 영화를 찍는 것에도 저렇게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동안 영화를 좋아한답시고 의무감으로 해왔던 것들에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 정말 네가 좋아서 그렇게 해왔던 거 맞냐고.
한 번 포기했다가 겨우 일어나 다시 이 길로 들어온 이상 등 돌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이렇게 한 학기 동안 어쩌다 영화감독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겪으며 나는 또다시 쉽게 흔들리고 말았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을지라도 순수하게 꿈을 믿으면서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2년 전에 많은 것을 내려놓은 나는 절대로 다시는 저렇게 작은 프로젝트에도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처럼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 건지, 내가 영화 업계를 진심으로 애정하고 있는 건지 회의감만 가득한 채로 편집본을 외장하드 속에 꼭꼭 숨기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에서 일기처럼 쓰기 시작한 이 브런치북이 6주 동안 연재되었지만 여전히 물음표다. 어떠한 분야든 '단순히 좋아서' 평생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은 있지만, 특히 이런 예체능 업계는 정말 좋아서 시작했거나 취미에서 직업이 된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 또한 그러했고. 좋아하던 것이 일이 된 순간부터 애정이 애증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들 한다. 그래도 애증에서 증보단 '애'가 더 커서 다들 결국 자신의 일을 아끼는 듯한데, 나는 모르겠다. 솔직히 '증'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럼에도 아직까진 영화라는 이 친구와 미운 정을 토대로 의리를 조금 더 지켜보고 싶긴 하다. 언제 끊어질지는 장담 못하겠지만.
난 언제 저렇게 되려나 모든 게 다 쉬워 보이잖아. 부러움이 자꾸 쫓아와, 있는 힘껏 따돌려. 꺼버릴까 하다가도 버텨 엔딩 크레딧 나올 때까지. - 데이식스(DAY6), 망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