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의 인류애
담배를 건네던 흑인 친구의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Hey Bro, it’s gonna be alright.”
글쎄.. 과연..
흑인 친구의 예지 때문인지, 결국 아파트 테크니션들은 밸브를 찾았고 물을 멈췄어.
Plumber (배관공)들은 물이 멈추자 파이프를 교체했고, 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어.
먼저 소방관들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고, 그다음은 피해자들과 거의 16:1로 대화했어. 내가 아무래도 사고 가해자이다 보니 질문이 쏟아졌어. 실제로는 파이프 부러뜨린 마트 직원들이 이 문제의 발단이지만 피해자들은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이니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얘기하더라고. 경찰도 그렇게 얘기해줬고.. 양심적으로 나도 같은 생각이었어.
일단 난 마트 직원들에게 마트로부터 이 일에 대한 보험이 따로 있느냐라고 물어봤어. 직원들은 잘 모르겠대.. 어쩔 수 없이 바로 해결은 안 될 것 같아서 그 두 사람의 driver license(운전면허증)를 모두 받아서 사진으로 찍어놨어. 그리고 마트랑 얘기해 보고 알려달라고 하고 일단 그 사람들을 보냈어.
그다음은 피해자들이었어. 그때가, 내가 미국 들어간 지 2개월도 안되었을 때니, 영어로는 반벙어리였어. 정말 영어를 배워보고 싶고 미국생활이 궁금해서 어학연수 나온 거였거든. 그런 나에게, 16명이 한꺼번에 얘기하는데 내 머리는 이미 과부하 상태였어. 특히 성난 사람들의 영어는 더 알아듣기 힘들었어.
그나마 사건 처음부터 나와 가장 말을 많이 한 아랫집 백인 친구랑 얘기가 잘 될걸 같아서 내가 부탁했어. 내가 영어를 잘못하니까 혹시 내가 잘 못 알아듣는 부분 있으면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어?라고 했더니 그 친구도 집 때문에 본인 마음이 말이 아닐 텐데, 도와준다고 하더라고. 그 고마움은 말로 다 못하겠더라.
일단 그 친구가 각 가구마다 한 명씩 얘기하게끔 순서를 정해서 얘기를 했어. 미국은 아파트 렌트를 하려면 아파트 보험이 거의 의무적이야. 나도 물론 아파트 서브리스로 들어오면서 아파트 통해서 보험을 등록하고 매달 내기로 계약서에 되어있었고 이미 첫 달은 페이가 된 상태였어. 그래서 결국 피해자들은 많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정말 미안해.. 내가 보험 회사랑 얘기해 보고 최대한 빨리 알려줄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미안해지는건...
아랫집 이웃들은 저녁이 되어가는데, 침대가 모두 침수되고 자신들의 집 천장에서 물은 뚝뚝 떨어져서, 당장 잘 때가 없는 거야.
아랫집 사람 수가 9명 정도였는데, 7명은 친구집에서 잔다고 했어. 난 너무 미안해서 혹시 거리가 되는 곳이면 내가 차로 데려다줄게 얘기했는데 다들 같은 빌리지(아파트촌)라면서 괜찮다고 걸어갔어. 나머지 2명은 딱히 갈 데가 없어서 내가 호텔비 내줄 테니까 호텔로 가자고 하고, 근처 호텔로 체크인해줬어.
그중에 한 명이 날 도와준 아랫집 피해자 백인 친구였는데 가기 전에 피해 입은 모든 것들을 리스트로 다 받아서 적으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그 옆에 가격을 매겨놔야 한대. 그래야 보험회사에 청구할 수 있다고 알려줬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웃들한테 많이 미안하지만 더 많이 고마워.
미국 간지 2달도 안되었던 나는 그런 일 일어나면 진짜 총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였으면 그렇게 매너 있게 행동하지 못할 것 같았어. 물론 그 아랫집 백인 친구가 나랑 따로 얘기하면서, 내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고, 영어도 잘 못하고, 영어 공부 좀 해보겠다고 내가 미국에 머무르는 걸 다른 피해자 이웃들에게 설명을 해줬거든.
그걸 듣더니 대부분이 잘 모르는 타국에 와서 너도 힘들겠다라며 내 걱정을 해주더라고. (눈물 날 뻔)
미국 온 지 얼마 안돼서 진한 인류애를 느꼈어. 내 마음속에는 이 사람들이 피해받은 건 어떻게든 갚아야겠다란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서 이 일과 관련해서 두 군데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줄 몰랐어. 정말 어이없고, 분노스럽고, 황당한 상황을 마주하게 돼. 아 진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