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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Mar 11. 2024

강된장 쌈밥 퓨전 한식에 빠지고, 수원에 빠지고

오늘의 한마디: 맛있는 추억과 음식은 다음을 기약하게 한다.


  배구를 보러 수원에 갔다. 조카가 현대건설 열혈팬이다. 그러나 소문난 쫄보여서 현대건설 경기를 생방송으로 감히 보지 못한다. 경기 결과를 확인하고, 이겼을 때만 다시 보기로 경기를 시청했다. 조카는 조마조마한 마음에 생방송으로 경기도 시청하지 못하지만, 현대건설 경기를 직관하는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이번에 여자배구 보러 가자. 너 직관하고 싶어 하잖아.”

  “그건 맞지만, 괜히 그러다 지면 어떡해요? 제가 보면 진단 말이에요.”

  “그 징크스를 이번에 깨는 거야. 평일에 수원 가면 차도 덜 막히지 않을까?”

  “직관하는 것이 제 버킷리스트인데... 설마 제가 본다고 지진 않겠지요?”

  “그럼. 가서 목청껏 응원하자. 그리고 맛난 음식도 먹고.”

  “좋아요. 수원에 사는 친구에게 핫플 물어볼게요. 우와~ 신난다.”     


  그렇게 우리는 경기를 예매하고, 당일 수원으로 향했다. 조카가 친구를 통해 알아 온 수원 행궁동의 맛집 다섯 곳 중 브레이크 타임 없는 퓨전 한식 음식점을 선택했다. 2인석, 4인석 테이블이 4-5개 정도 있는 아담한 식당이었다. 우리는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강된장 쌈밥과 나가사키 짬뽕탕을 주문했다. 먼저 불이 들어오고, 나가사키 짬뽕탕이 나왔다. 그런데 사진에서 볼 때보다 사정없이 사이즈가 작았다. 

  “응? 양이 너무 적은데? 메뉴 하나 더 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

  “다소 그래 보이지만, 일단 먹어보고 시켜요. 이모.”

  “먹다 흐름 끊기는 것 싫은데... 일단 먹어보고 부족하다 싶으면 바로 시키자.” 


  이어서 강된장 쌈밥이 나왔다. 우와, 시그니처 메뉴답게 너무 예뻤다. 보글보글 끓는 나가사키 짬뽕탕과 강된장 쌈밥.

  짬뽕탕은 좀 더 끓어야 했기에 우선 강된장 쌈밥을 먹었다. 짜지 않고 살짝 로제 소스 맛이 나는 부드러운 강된장, 그 안에 우렁이 듬뿍 들어 있었다. 예쁘게 케일에 싸인 쌈 하나에 소스를 듬뿍 올려 한입 가득 넣었다. 케일 쌈 안에 다진 고기와 밥이 있었다. 전혀 짜지 않고, 쌈밥과 강된장의 조화가 기가 막혔다. 강된장이 전혀 짜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담백한 맛이 신기했다. 쫄깃쫄릿한 우렁이 듬뿍 들어가서 풍미를 더한 강된장 쌈밥에 매혹되었다. 강된장을 맨밥에 비벼 먹어도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다. 강된장 쌈밥을 먹는 사이 나가사키 짬뽕탕이 완성되었다. 오징어, 새우, 각종 채소와 버섯을 골고루 그릇에 덜어 한 입 먹었다.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이 정말 끝내 주었다. 


  “우와, 국물이 진짜 맛있다. 매콤하니 아주 매력적이야.”

  “정말 맛있어요. 보는 것보다 양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네. 생각보다 많네.”

  “추가 메뉴 더 안 시켜도 되겠어요.”

  “강된장이 너무 맛있으니까 공깃밥 하나는 더 시키자.”


  공깃밥을 추가하려 했더니 공깃밥은 무한으로 준단다. 공깃밥을 추가해서 시원한 짬뽕탕에 밥을 말아 한 공기 뚝딱 해치웠다. 전복 볶음밥과 나가사키 짬뽕탕 사이에서 고민했는데, 시원 매콤한 국물을 시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양이 적다는 처음의 불만을 취소하고,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우리는 강된장 쌈밥과 나가사키 짬뽕탕, 밥 두 공기를 싹싹 다 먹고, 볼록 나온 매를 두드리면서 화성행궁으로 향했다. 


  화성행궁은 조선 정조 13년(1780년)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다. 정조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켜 위상을 높인 한편, 1795년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회갑연을 치르기 위하여 건물의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지었다. 1796년에 전체 600여 칸 규모로 완공되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1911년부터 일제에 의해 병원(자혜의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건물이 파괴되어,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96년부터 발굴조사 자료와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 사업을 시작해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 공사를 마쳤다. 2018년부터 화성행궁 우화관과 별주의 발굴조사와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화성행궁 안내 표지판을 읽으면서 하루 날 잡아 화성행궁만을 관람하기 위해 수원을 다시 방문하기로 다짐했다. 이렇게 배구 경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잠시 들리기에는 택도 없이 볼 것이 많았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본격적으로 관람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어스름하게 어둠이 내려앉은 화성 행궁을 밖에서만 둘러보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화성행궁을 지나쳐 바닐라라테가 맛있다는 카페로 향했다. 웅장한 파사드를 여니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연신 흔들면서 우리를 반겼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 안에 위치한 카페 안은 동굴 속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정판 바닐라 라테는 아이스만 가능했는데, 익숙한 비주얼이 아니었다. 

  시그니처 스터코 스트롱 블렌드와 직접 제조한 수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올려진 바닐라 라테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약간 비싼 바닐라 라테 가격이 상술인 것 같아 입을 삐죽거렸다. 그런데 그 맛이 우와,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수제 아이스크림이라 그런지 커피 맛을 헤치지 않은 부드러우면서 은은하게 달콤한 맛이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커피 맛을 보자 전혀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매일 마시고 싶은 정성 가득한 커피맛이었다. 지금까지 수원에서 맞이한 모든 것이 백 퍼센트 만족이었다.


  마지막만 잘 마무리하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우리는 수원체육관으로 향했다. 응원 도구를 사고, 선수 유니폼이 새겨진 키링을 사서 좌석에 앉았다. 생각보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가깝게 느껴져서 TV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1세트는 현대건설이 이겼지만, 2세트는 상대팀이 이겼다. 3세트도 막상막하다. 


  “3세트는 이겨야 하는데... 오늘 징크스를 깨야 하는데... 오늘 지만 다시는 경기장 안 올 거예요.”

  “우리 열심히 응원하자. 우리의 응원으로 이기게. 와서 직접 관람하니까 너무 좋다.”

  “그건 그래요. 정말 재미있고 신나요.”

  “근데 이 앞에 앉는 사람들은 뭐야?”

  “아, 이곳은 멤버십 사람들만 앉을 수 있어요.”

  “우리 내년에는 멤버십 끊자. 여기도 잘 보이는데 이 앞에 앉으면 선수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다 잘 보일 것 같아.”

  “그럼 정말 좋지요.”


  우리의 간절한 응원을 받아 현대 건설이 3-1로 이겼다. 오늘 하루는 정말 꿈과 같은 하루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식사도, 화성행궁도, 카페도, 배구 경기도 모두 다 너무 좋았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우리는 오늘의 행복을 복귀하면서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고, 그보다 더 많이 웃었다. 오늘 수원에서의 행복한 추억이 내일의 일상을 행복하게 꾸며 줄 것 같다. 


  “〇〇 제대하면 가을에 우리 수원 또 가자. 이번에는 화성행궁하고 둘레길도 가자.”

  “좋아요.”


  그렇게 수원에서의 강된장 쌈밥과 바닐라 라테는 오늘의 추억이 되었고, 내일의 다짐이 되었다. 

음식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양육한다. 
-Charles Gu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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