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마디: 행복을 일깨워주는 제철 음식
아들이 5개월 만에 휴가를 나왔다. 계획했던 1월 휴가가 밀리고 밀려 혹한기 훈련을 끝내고, 2월 끄트머리에서야 휴가를 나왔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쌓이고 쌓여 꿈에서 눈물로 만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집에 오는 것이다.
“아들, 휴가 나오면 먹고 싶은 것 있어?”
“부대 밖에서 먹는 음식은 뭐든 다 좋아요.”
“이번에 엄마가 갈비찜 해줄게. 네가 지난번 휴가 때 맛있게 먹었던 이모표 돼지갈비찜 이제는 엄마도 할 수 있어.”
“우와, 엄마 음식 솜씨 많이 늘었네요? 면회 때 먹은 등갈비 김치찜도 엄청 맛있었거든요.”
“다들 잘 먹으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하고 싶기도 하더라.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 말고, 지금 막 먹고 싶은 음식 얘기해 봐.”
“음... 싱싱한 해산물 음식 먹고 싶긴 해요.”
“아, 그래? 주꾸미 볶음 맛있게 하는 곳 있어.”
“주꾸미 좋아요.”
“그런데 주꾸미만 먹기 그래서 털레기 수제비도 먹으면 좋은데 너는 먹지 못하잖아.”
“저는 주꾸미만 먹으면 돼요. 다른 가족들은 수제비도 먹고요.”
아들은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다. 그중 새우는 특히 심하다. 새우를 먹으면 피부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올라온다. 그래서 대하구이는 고사하고, 새우로 육수를 낸 국물도 먹지 못한다. 이런 음식 알레르기도 유전일까? 남편이 닭 알레르기가 있다. 백숙은 고사하고, 그 맛있는 치킨도 먹을 수 없다. 남편은 닭 육수만 먹어도 피부 알레르기는 물론이고, 기도가 부어올라 호흡 곤란까지 온다. 우리 부부에게 치맥 데이트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아들이 새우는 못 먹어도 치킨은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이런 알레르기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는 아들과 함께 털레기 수제비와 주꾸미 맛집 방문을 계획했다.
아들을 포함한 가족들과 주꾸미 맛집을 방문했다. 주꾸미가 제철이어서 그런가 이층으로 되어 있는 식당은 1층도, 2층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북적거리는 실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에 어렵게 앉았지만, 그 북적거림이 싫지 않았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온 손님들 속에 함께하는 즐거움 때문이었을까? 북적거림의 한가운데 머무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평소 아들은 사람 많은 곳을 가면 기가 빨리는 것 같다고 싫어했다. 그러나 민간인을 보기 어려운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해서인지 휴가 나와서는 사람 많은 곳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적한 풍경보다 도시의 풍경을 찾았고, 혼자만의 사색보다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겼다.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 대화를 하다 보니 드디어 맛난 음식들이 나왔다.
주꾸미
3월에 먹는 주꾸미는 주꾸미의 머리, 정확하게는 복부에 투명하고 맑은 색의 알이 들어있는데, 이를 삶으면 내용물이 마치 밥알과 같이 익어 별미로 친다. 따라서 주로 봄, 특히 산란기(4~5월) 직전인 3월을 제철로 치는 음식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봄 주꾸미가 제철로 여겨진 것은 순전히 알 때문이며, 진짜 주꾸미 제철은 산란기 전후인 봄이 아니라 가을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주꾸미의 이런 특성 탓에 밥알 문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털레기의 뜻은 온갖 재료를 한데 모아 털어 넣어 만든 음식으로 털털 털어 만들었다고 하여 털레기라고 함.
오동통한 주꾸미 자태에 침이 꿀꺽했다. 우선 주꾸미 한 개를 집어 입에 넣었다. 불향이 가득한데 자극적이지 않았다. 주꾸미의 오동통한 식감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달콤, 매콤한 맛이 입맛을 확 사로잡았다. 털레기 수제비를 많이 먹을 생각에 밥을 1/3만 넣고, 주꾸미를 넣었다. 참기름이 빠질 수 없었다. 참기름을 충분히 두르고, 무생채를 넣어 비볐다. 주꾸미, 무생채를 모두 골고루 넣어 한 입 크게 먹었다. 보리밥의 식감에 쫄깃쫄깃한 주꾸미, 불향이 어우러진 매콤한 맛. 정말 너무 맛있었다. 아들은 밥 한 공기를 큰 그릇에 담아 주꾸미와 참기름만 넣고 비볐다. 아들도 역시 크게 한 입을 먹었다.
“정말 군대에서 먹는 것과 차원이 다르네요. 주꾸미도 엄청 실해요. 양념도 짭밥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어요.”
아들도 나만큼이나 맛있나 보다. 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는 털레기 수제비를 접시에 가득 담았다. 된장 베이스에 보리새우가 듬뿍 들어간 털레기 수제비 육수는 고소하면서도 시원하고, 감칠맛이 그만이었다. 정말 모 광고에 나온 말처럼 국물이 끝내줬다. 거기에 얇게 빚은 수제비는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시래기 등의 넉넉한 건더기는 육수, 수제비와 어울러서 풍미를 더했다. 이 맛난 것을 아들은 맛볼 수 없다니.... 아쉬운 어미 마음에 앞접시에 젓가락으로 수제비만 건져서 아들에게 줬다.
“우와, 수제비 엄청 맛있어요. 육수를 먹지 않아도 수제비가 부들부들해서 아주 맛있어요.”
아들은 후딱 앞접시를 비었다. 아들의 빈 접시를 다시 수제비로 채웠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더 먹고 싶지만, 혹시 모르니 이것까지만 먹을게요.”
“그래. 너는 주꾸미 많이 먹어.”
“네. 밥 한 공기 더 시킬게요.”
아들은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고, 또 한 공기를 시켰다. 비록 아들이 알레르기 때문에 털레기 수제비를 마음껏 먹지 못했지만, 그 아쉬움을 주꾸미가 달래주었다. 아들은 추가한 밥 한 공기에 남은 주꾸미를 다 넣고, 참기름을 한 바퀴 두른 후에 맛있게 먹었다. 아들이 밥 한 공기를 뚝딱 먹고, 한 공기를 더 추가해서 먹는 모습을 보니 행복했다.
젊은 날의 행복은 특별한 날 맞이하는 화려한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행복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 추구해야 어느 날 문득 행복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연히 행복의 뒤꽁무니를 좇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그러나 지금은 소소한 행복의 맛을 안다. 특별한 날, 화려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에서 맞이하는 행복을 추구한다. 햇살 좋은 날, 거실 소파에서 맞이하는 커피 한 잔에 행복을 느낀다. 휴일에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과 함께 식사하면서 즐기는 수다에서 변치 않은 행복을 바란다.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게 있는 어느 날에도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오늘처럼 맛있는 음식을 가족들과 함께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함과 가슴 벅찬 행복을 느낀다. 아들과 맞이하는 이 행복한 맛은 2주 동안 지속되겠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 행복한 맛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3월에 먹은 주꾸미는 모처럼 아들과 함께 맞이한 행복한 맛으로 새겨질 듯싶다.
요리사는 행복을 파는 사람이다.
-Michel Br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