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랏말싸미 Mar 25. 2024

순댓국, 아버지의 소울 푸드가 아들의 소울 푸드로

오늘의 한마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랑으로 깊게 새겨진 추억의 음식

  “엄마, 오늘 순댓국 먹으러 가요. 지난번 휴가 때 먹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어요.”

  “그게 그렇게 먹고 싶었어?”

  “그럼요. 다른 곳도 맛있지만, 저희가 가는 순댓국집이 진짜 푸짐하고 맛있는 것 같아요. 작전 나가서 추울 때면 생각났어요.”


  아들과 점심에 동네 순댓국집에 갔다. 주인 내외분은 단골인 우리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짧은 아들의 머리를 보시고, 등을 쓰다듬어 주시기도 하셨다. 


  “제대한 건가? 아니면 휴가 나왔어요?”

  “휴가입니다.”

  “한동안 안 보이더니 군대 갔었군요.”

  “네. 작년 1월에 입대했습니다.”

  “조금 더 고생하면 제대하겠네요. 건강하게 잘 있다 나와요.”

  “감사합니다.”


  말을 건네는 말투에 정다움이 묻어났다. 그 정다움은 주문한 순댓국에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보통 순댓국을 시켰는데 아들 순댓국은 특급 순댓국보다도 고기가 많았다. 푸짐한 한 그릇을 받은 아들은 감사함을 표하고, 맛나게 식사했다. 아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식사를 했다. 오래간만에 먹는 순댓국 맛에 홀렸는지 사진 찍는 것을 깜빡했다. 


  “아, 사진 안 찍었어. 지금이라도 찍어야겠다. 미안한데 잠시만.”

  먹다 남은 그릇을 아무리 다른 각도로 찍어봐도 영 볼품없다.


 “안 되겠다. 어쩔 수 없지. 미안해. 다시 먹자.”

  “음식 사진 찍는 것이 익숙하지 않지요?”

  “응. 매번 음식 사진 찍는 것을 깜빡해. 이렇게 먹다 말고 사진 찍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니까.”

  “그럴 수 있어요. 이번 엄마 글 기대할게요. 그런데 이 집 순댓국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요. 옛날 할아버지랑 함께 갔던 그 집처럼요.”


  10년 동안 암으로 투병 생활하셨던 아빠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신 일이 아들을 등원, 하원시키는 일이셨다. 3살 어린이집부터 7살 유치원까지 아빠는 아들의 등원과 하원을 성심성의껏 돌봐주셨다. 암이 아빠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어 점점 약해지셔도 알람을 맞춰 놓으시면서 그 일만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으셨다. 아들의 손을 잡고 두런두런 얘기하시면서 걷는 길이 아빠를 그 힘든 투병 생활에서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셨을까? 22살이 된 아들의 모습을 지금은 보지 못하시지만, 아들도 그 옛날 할아버지의 사랑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엄마에게 혼난 자신을 온몸으로 품어주시고, 잘잘못을 떠나 항상 자신의 편을 들어주셨던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을. 


  아빠의 10년 투병 생활을 옆에서 온전히 받아내셨던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가요 교실을 가셨다. 노래를 좋아하시는 엄마께서 동네 분들과 함께 가는 가요 교실이 엄마의 유일한 탈출구셨다. 이렇게 엄마께서 가요 교실 가시는 날은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와 아들에게도 행복한 날이었다. 아빠와 아들의 외식 날. 아빠는 항상 아들에게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셨고, 아들은 짜장면, 족발, 순댓국 등을 얘기했다. 3살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외식을 해서인지 아들은 햄버거, 피자보다 족발, 순댓국을 더 좋아했다. 아빠의 음식 취향과 똑같은 아들의 음식 취향. 그것이 아빠를 더 행복하게 했으리라. 고사리 같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흐뭇한 얼굴로 걸어오시던 아빠의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다. 


  “할머니께서 가요 교실 가시는 날에 할아버지와 같던 식당들이 지금도 기억나요. 지하에 있던 중국집. 그 집 짜장면이 저렴하면서도 맛있었어요. 저는 짜장면만 먹으면 됐는데 항상 할아버지께서 탕수육도 시켜주셨어요. 3~4살 때는 탕수육을 남겼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탕수육도 다 먹었어요. 순댓국 먹을 때면 할아버지께서 양이 많으시다고 항상 고기를 저에게 더 주셨던 기억도 나요.”

  “그래. 할아버지께서 널 정말 끔찍이 아끼셨지. 너 혼내는 날이면 할아버지께서 꼭 엄마에게 뭐라고 하셨어.”

  “그러셨지요. 엄마가 늦으시는 날, 할아버지께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셨어요. 사주시면서 항상 엄마께는 비밀로 하라고 하셨어요.”

  “엄마가 못 먹게 하니까 그러셨지?”

  “네. 엄마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하시면서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을 사주셨어요. 그때는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지금 네가 이렇게 성격이 좋은 게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 것 같아. 옛날에는 몰랐는데 요즘 생각해 보면 정말 감사해.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네가 이렇게 잘 컸으니.”

  “그러니까요. 이렇게 말하니까 할아버지 보고 싶네요.”

  “그러네. 할아버지 뵈러 가야겠다.”


  군복 입은 아들의 모습을 보시면 눈물 많으신 아빠는 우실 지도 모르겠다. 고사리 같던 아들 손이 본인의 손보다 더 커지고, 듬직하게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좋아하실지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하다. 아빠의 사랑이 밑거름이 되어 이렇게 잘 큰 아들. 오늘은 그런 아들과 아빠를 더 많이 추억해야겠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브리야 샤바랭- 



이전 09화 털레기 수제비에 오동통한 주꾸미를 더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