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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Apr 01. 2024

루이비통 대신 레트로 냉동삼겹살

 오늘의 한마디: 외적인 화려함을 좇기보다 내면이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자.

  우리는 ‘미녀 삼총사’이다. 낯 뜨거운 이름의 우리 모임은 어느덧 6년이 넘었다. 1년에 한 번은 함께 여행 가자는 찬란한 목표를 가지고 모임을 꾸린 우리. 우리의 삶은 맨날 뭐가 그리 바쁜지 다음, 다음으로 미루다 6년이 넘게 흘렀다. 우리의 여행이 미뤄질수록 통장 잔고는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통장 잔고가 버거워질 무렵 우리는 해결책을 모색했다.


  “이번에는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사고, 다음에는 우리 꼭 여행 가요.”

  “그때는 지금보다 덜 바쁘겠죠?”

  “3~4년 후일 테니 학교도 가정도 지금보다는 훨씬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러길 바라면서 이번에는 저희에게 주는 선물을 하기로 해요. 어떤 품목으로 할까요?”

  “우리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팔찌를 똑같이 맞출까요? 아니면 시계를?”

  “저는 명품 가방을 샀으면 좋겠어요. 이럴 때 아니면 명품 가방을 사기 힘들잖아요.”

  “그럴까요? 그럼 다음 모임 장소는 더현대로?”

  “좋아요. 여의도에 맛집도 많으니까 맛있는 것도 먹고요.”


  우리의 행선지는 더현대로 정해졌다. 한껏 흐린 날씨에도 기분은 좋았다. 오랜만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인지, 명품 가방을 사서인지 모임 날 아침부터 설렘이 가득했다. 여의도역에서 만나 더현대까지 가는 동안 우리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학교일, 집안일, 나이, 추억 등 이야기 소재도 무궁무진했다.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는 더현대 앞 횡단보도에 이르자 비를 내리게 했다. 한, 두 방울 비를 맞으며 신호를 기다리는데도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 비를 맞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우리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본격적인 쇼핑을 하기 전에 지하에서 커피 한잔을 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인데도 곳곳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빈자리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우리의 눈은 바쁘게 커피숍에서 다른 커피숍으로 움직였다. 드디어 빈자리가 많은 커피숍을 찾았다.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자리에 앉고, 곧 청년 둘이 우리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 청년들은 앞 커피숍에서 직접 로스팅해서 만드는 커피를 들고 있었다. 커피잔과 주전자가 멋들어져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 이 자리는 공용석인가 보다. 우리가 주문한 커피가 맛있기를 바랄 수밖에. 그러나 불길한 생각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우리의 커피는 음... 맛이 없었다.

  바로 앞에 이렇게 멋진 커피숍이 있었는데 우리는 바보처럼 코앞에 있는 것을 못 본 것이다. 커피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드디어 우리는 1층 명품관으로 갔다. 루이비통 매장은 넓기도 넓었지만, 사람들이 많았다. 매장 안에 우리가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일 정도로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중국어, 일본어가 들리는 것을 보니 외국인들도 많은가 보다. 환한 미소를 머금고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찾으시는 물건 있으신가요?”

  “가방을 보고 있어요. 우선 전시된 가방들을 둘러볼게요.”

  “네. 편하게 보시고, 원하시는 물건 있으시면 얘기해 주세요.”

  전시된 가방들이 너무 예뻤다.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옥색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가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 가방 보여주시겠어요?”

  “네. 이것이지요? 요즘 아주 많이 나가는 제품이에요.”

  직원분이 친절하게 재질이며 공정 과정 등을 설명했다. 조심스럽게 어깨에 멨다. 캐주얼한 나의 복장에도 잘 어울렸다.

  “어머, 고객님 너무 잘 어울리세요.”

  “예뻐요. 잘 어울려요.”

  “자기야, 이거 사라. 너무 예쁘다.”

  저마다 칭찬의 말을 쏟아냈다.

  “가격이 얼마예요?”

  “삼백만 원이에요. 고객님.”


  허걱. 우리 예산에서 벗어났다. 1인당 백오십만 원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두 배 가격이다. 슬그머니 가방을 내려놓았다. 평소 명품 가방에 관심이 많지 않은 우리는 시세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백오십만 원으로 명품 가방은 택도 없었다. 솔직히 가방 하나를 백오십만 원 주고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다달이 모았지만, 갑자기 공돈이 생긴 것 같고, 공돈이 생긴 김에 남들이 말하는 명품 가방 하나 정도 가져볼까 했는데 정신이 확 들었다. 삼백만 원은커녕 백오십만 원 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 형편이 안 돼서 그런가? 삼백만 원의 가방을 거뜬히 살 형편이 되면 생각이 달라질까? 그럴 돈이 있으면 좀 더 값지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우리의 허세는 겨우 명품관 한 곳을 구경하고 끝이 났다. 평범한 소시민인 우리의 배포는 이 정도였던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방을 샀으면 더 후회할 뻔하지 않았을까?


  맛없는 커피를 마시고, 씁쓸하게 명품관을 나온 우리는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냉동 삼겹살집에 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식당 안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고기만은 배부르게 마음껏 먹고자 넉넉하게 주문했다. 맥주도 한 병 주문했다.

  양은 쟁반에 파절이, 계란말이, 새우젓, 고추, 쌈장, 기름장, 날계란장 등 한가득 나왔다. 불판에 냉동 삼겹살과 파절이, 김치, 양파를 가지런히 놓았다.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면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셨다. 더현대에서의 씁쓸한 기억이 시원한 맥주에 씻겨 나갔다. 냉동 삼겹살의 장점이 무엇이겠는가? 금방 익는 것이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는 동안 고기가 다 익었다. 상추 한 장을 놓고 우선 쌈장을 약간 넣었다. 익은 고기를 날계란장에 듬뿍 묻혀 상추에 얹고, 파절이를 넣은 상추쌈을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고소한 고기와 파절이가 어우러진 누구나 아는 그 맛. 아, 이 맛이다. 이번엔 상추에 고추 하나를 쌈장에 찍어 얹고, 고기와 볶은 김치를 올려 한 쌈 먹었다. 볶은 김치에 고기는 진리이다. 처음 한 쌈보다 더 맛있는 한 쌈이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주문한 고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고기를 주문하고, 미나리와 고사리를 추가했다. 불판 포일을 갈고 냉동 삼겹살, 미나리, 고사리, 콩나물을 가지런히 불판에 올렸다.

  고기, 미나리, 고사리 조합은 말이 필요 없었다. 이번엔 쌈을 싸지 않고, 고기 한 점에 미나리 한 젓가락을 날계란장에 묻혀 먹었다. 향긋한 미나리 맛과 어우러진 고기는 더할 나위 없었다. 다음은 고사리와 고기이다. 고소한 고기 맛을 배가 시키는 고사리 덕에 끝도 없이 고기가 들어갔다. 이미 4인분을 다 먹고, 두 판째 고기를 먹는 것인데 전혀 질리지 않고 맛있었다. 이렇게 잘 먹는 우리는 명품백이 없어도 명품으로 잘 살아갈 것이다. 루이비통 매장을 나올 때 들었던 조금의 초라한 마음은 냉동 삼겹살과 좋은 사람들 덕분에 금세 치유되었다. 명품을 몸에 휘감기보다 나 자신이 명품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오늘 레트로 냉동 삼겹살은 초라함을 치유해 주는 맛이었다.


음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에너지의 원천이자,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 Julia Chi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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