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릴 땐 길게 늘어뜨린 것만 사랑인 줄 알았어. 하루에 두 번만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거든. 심장이 요동치던 그때를 기억하니. 나는 우리가 영원할 줄 알았던 걸까. 흘려보내지 못한 우주의 바닷물이 입김으로 증발해서 먹먹한 소금이 되는 꿈을 꿔. 너에게 나는 고작 그런 존재로, 이제는 이름조차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상하다는 말은 사랑의 증거.
붉은 눈빛에 휩싸인 전등이 비추는 깊은 뭍을
내내 짊어지다가
내려놓고 싶지 않아서 울기도 하고,
욕심이란 걸 알면서도 납득하고 싶지 않은 건.
서로가 깨문 이빨 자국이 불면 같아.
오늘 죽은 사람은 내일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외면하지 말자며 껴안았지. 해가 떠오르는 속초 앞 개울가에서. 구름이 짙게 드리운 게, 눈을 감아도 어두운 게, 꼭 누굴 닮았다고 웃으면서. 울면서 우는 법을 알려주니까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 나한테 물었어, 하염없는 게 뭐냐고 하길래.
희망을 알면서 가라앉는 거.
일 분만 다리를 접고 앉아 봐. 아려오지. 불편하지. 평범이 아니게 되는 거야. 보통이 아니라서 행복하고 싶어 하는 거야, 금세 주변의 얼굴들과 비슷해지고 싶어서 그래서 다리를 자르는 일까지 벌일지도 몰라. 나는 언제부턴가 오른쪽 엄지발가락에게 도청당하는 기분을 느껴. 꽤 깊었지만 이미 잘라냈는데, 그게 나한텐 아픈 손가락이래.
너는 누구의 말을 듣고 사니, 무슨 밥을 먹고 있어. 알람이 울리면 세 번 귀를 틀어막고 잠에 들 거니. 탁자의 모서리를 긁어먹으며 현관 앞 신문을 주울 거니. 네가 뭐 하는지 물으면 숨을 쉴까, 눈을 떴을까, 고작 이런 상상밖에 할 수 없어서. 영영 모르게 됐는데 왜 보고 싶은 건지 수천 년 전 남긴 글자까지 뒤적대는 중이야. 한 번은 만나지 않았겠니. 처음 태어난 감정을 묽은 죽처럼 씹어 삼켜도 보고. 차가운 시멘트를 후후 불어서 태양처럼 커다란 불을 피우기도 하고.
우리는 삼일 만났지. 헤어지자는 인사도, 잘 지내라는 지긋한 장마철 같은 통보도 없이. 기억이라는 언어로 뒤돌아 볼 수도 없게 되었겠지. 빗물에 젖은 옷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후련해 보여. 투명한 마음일 거야.
너는 내 종국일까,
아니면 방금 잃어버린 편지.
짧고 간결하게 말하는 법을 나는 몰라.
그리워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