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공부하면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 그걸 느꼈다. 오후 2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실험 수업을 진행하는데 리포트 제출 기한은 저녁 6시. 그런데 수업이 시작할 때까지 리포트 완성이 안 되었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실 생명과학의 실험은 살아있는 생명을 다루는 만큼 데이터를 추출해 다루는 과정에 적합한 화학반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화학반응들이 너무 빠르거나 불순물이 많으면 오랜 시간 동안 생명을 길러서 만든 데이터가 소실된다. 그렇기에 생명과학 실험은 화학 처리 - 기다림 - 처리 - 기다림... 의 반복이다.
그러므로 이 기다림의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되는 생명과학 실험 특성상 기다리는 시간 동안 리포트를 쓴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기껏 교환학생까지 와서 모든 것을 생생히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는데 그걸 잃는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홍콩의 식당들은 한국에 비해 꽤 일찍 문을 닫는다. 아마 술을 마시며 새벽까지 있는 회식 문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공부하다가 저녁 8시를 조금 넘겨서 숙소에 돌아갔더니 마땅히 근처에 먹을 식당들 연 곳이 없었다.
괜히 과일이나 하나 먹기 위해서 웜포아(whompoa)에 있는 AEON 마트에 갔다. 지하에 있는 AEON 마트는 홈플러스나 이마트의 어지간한 푸드코트보다 넓어서 가끔 식사를 위한 도시락을 사기에도 좋다.
특이한 점은 건물이 배모양이라는 것인데, 아마 근처에 있는 웜포아 항구에서 모티브를 땄나 싶다. 물론 근사한 디자인과 달리 지상층에는 별게 없다. 그냥 다이소 같은 잡화점이랑 식당 하나 정도? 그래서 나도 지하에 있는 AEON 마트만 애용하고 있다.
추가로 오늘은 과일도 하나 먹어보기로 했다. 홍콩도 한국보다 위도가 낮은 만큼, 정말 다양한 과일들을 판다. 가끔 먹는 파인애플은 한국의 통조림과 달리 신맛이 하나도 없이 달달해서 내가 좋아하는 베스트 픽이다. 여기에 더해 오늘은 이름은 전혀 모르겠지만 여기서만 팔 것 같은 과일에 도전해 보았다.
저녁 세일 시간이라 둘 모두 합해서 100달러(한화 17000 정도) 안으로 살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가성비 최강이다. 물론 한국에서 먹는 식사가 더 싸겠지만, 과일을 잘라서 이렇게 파는 걸 살 기회가 거기엔 없으니 어찌 보면 이게 더 좋을 수도?
오늘 딱 하나만 있는 수업이 끝나고 이전에 대화만 나누었던 진구들이랑 밥을 먹었다. 일전에 만난 T군과는 다른 영어의 T군이 있는 그룹이었는데, 새롭게 W양과 L군을 알게 되었다. L군은 생김새가 홍콩 현지인 같지가 않아서 물어보니 부모님이 프랑스 계열이라고. 확실히 홍콩에 다양한 계열의 사람들이 있구나 - 왜냐하면 국적은 다 홍콩이니 계열이 맞는 표현이겠구나 싶었다.
이 친구들 덕분에 오늘도 도서관에 가서 의지박약인 나를 다잡을 수 있었다. 물론 여럿이서 공부하러 가도 결국 공부는 혼자서 했지만. 역시 같이 공부하고 싶으면 미리 서로 주제를 정해서 모여가지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