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이란 '이름 바로잡기'라는 뜻이다. '포폄'은 '잘했으면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褒), 잘못했으면 잘못했노라고 꾸짖는다(貶)는 뜻. 즉 '올바른 어휘 사용'으로 역사의 '잘잘못을 평가'한다는 동아시아 역사 서술의 대원칙을 말한다. 후세 사람들은 공자의 이러한 어휘 사용법에 미언대의微言大義가 담겨있다고 말한다. 짧고 하찮게 보이지만 그 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는 뜻. 한두 마디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어휘들 속에도 우주 만물의 내재 원리가 작동하는 법이니, 올바른 이름은 올바른 가치 판단의 척도가 된다는 이야기다.
어느 날, 자로子路가 스승 공자에게 정치를 하게 되면 맨 먼저 무얼 하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공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즉시 소리치듯 대답한다. "반드시 이름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일세! 必也正名乎!” 성급하고 거친 성격의 자로가 그게 무슨 엉뚱한 말이냐며 툴툴대자, 공자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름이 올바르지 못하면 언어가 이치에 맞지 않게 되지. 그러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뤄낼 수 없단다. 그러면 학문과 예술이 흥성하지 못하게 되고, 또 그렇게 되면 형벌刑罰 주는 일이 형평성을 잃고 만단다. 그럼 결국 백성들이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게 되는 법. 그래서 군자는 반드시 사물에 제대로 이름을 붙이고 언어를 조리 있게 구사해야 하며, 말을 꺼냈으면 반드시 실천으로 옮겨야 하는 법이다."
권력자들은 흔히 '이름名'과 '실제實'가 다르다. 뒤가 켕기는 독재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예컨대 '공정公正'이라는 단어는 그에 상응하는 상태에만 그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만약 제 눈의 대들보는 모르는 척하면서, 정적政敵 눈의 티끌만 가지고 '공정' 운운하며 탄압한다면, 그가 하는 모든 말은 자꾸만 이상하게 꼬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언어가 이치에 어긋나게 되면 학문과 예술은 점차 쇠퇴하게 마련이고, 사법 기관의 형평성을 잃은 행태에 민심은 점점 흉흉해지며,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공자는 자신에게 정치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드시 먼저 이름부터 바로잡겠노라고 소리친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공정'은 '공정'이 아니며, 당신이 말하는 '정의'나 '자유'는 '불의不義'와 '독재/억압'으로 이름해야 옳다고 외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정명正名'의 의미다.
김춘수 시인이 노래했듯, 모든 언어는 '실제'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불러주어야만 비로소 빛나는 '꽃'이 된다. 그렇지 못한 '거짓된 이름'으로 불러주면 인간의 생각과 언어와 행동은 착각과 혼돈의 어두운 함정으로 떨어진다. 학문과 예술이 쇠퇴하고 균형을 잃은 국가의 권력은 결국 몰락하게 된다. '이름'이 중요한 이유다.
부족한 능력으로 중국 문학과 문화를 남에게 가르친 세월이 어언 수십 년. 비록 아둔하고 게으르지만 흘러간 세월이 있으니만큼 나름대로의 생각이 왜 없겠는가. 비록 얕은 지식일망정, 동아시아 고전의 그 싱그러운 지혜의 세계를 엿보는 동안 나름대로 아름아름 쌓여진 것들이 왜 없겠는가. 시간과 여건을 마련해서 꼭 그 헝클어진 것들을 정리하여 일반 대중에게 알려보리라, 오래전부터 다짐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그 첫 번째 작업은 '정명正名, rectification of names'. 공자가 가르쳐준 대로 인문학 각 분야의 '이름'부터 먼저 바로잡아야 하겠다. 모두 일본제국주의가 서양의 근대 문물을 들여오면서 번역 소개한 용어들이다. 그중에서 동양 · 인문학 · 동양학· 학문 · 문학 · 철학 · 종교 등의 7개 단어를 골라보았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 단어들 속에는 교묘한 언어의 함정이 숨어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이렇게 분열과 갈등에 사로잡히게 된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이제 그 '이름'과 '실제'가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정명의 길'을 떠나보고자 한다. 일제가 숨겨놓은 그 이름의 함정에서 벗어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