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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May 22. 2023

우리 '문학'은 온유돈후

1. 文學으로 literature 톺아보기

우리는 '우리의 문학'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우선 공자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크다. 첫 번째 오해는 그의 직업(?)이다. 우리는 그를 주로 위대한 사상가 정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위대한 '문학 선생님'인지는 잘 모른다. 동아시아의 문학은 바로 공자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거가 있느냐고? 물론이다.


유가儒家의 목표는 대동사회의 구현이다. 그 실천을 위해 《시詩》 · 《서書》 · 《예禮》 · 《악樂》 · 《춘추春秋》 · 《역易》등 6종류의 책을 경전으로 삼았다. 바로 이 책들이 당시 '학문'의 대상이었다. 모두 공자가 치밀한 의도를 가지고 편찬한 책이다. 그 첫 번째 경전이 《시》다. 문학 책이다. 놀랍지 않은가? 문학 서적이 경전의 하나란다. 게다가 모든 경전의 맨 처음, 첫출발이란다. 문학이 바로 모든 '학문'의 시작이요, '학문하기'의 방법론이라는 이야기다. 왜? 문학이 지니고 있는 초콜릿 같은 순기능 때문이다. 공자는 말한다.



젊은이들이여! 왜 시를 배우지 않는가? 시를 배우면 감성을 배양할 수 있고, 관찰력을 키울 수 있으며, 단결력도 기를 수 있고, 마음속의 응어리도 풀 수 있다. 가깝게는 부모님을 모시는 효를 배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는 충성심을 배우게 된다.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도 많이 알게 된다.

 小子!何莫學夫詩?詩,可以興,可以觀,可以群,可以怨。邇之事父,遠之事君。多識於鳥獸草木之名。《논어論語  · 양화陽貨》



여기 등장하는 문학의 순기능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전문 영역에 들어가니 의역으로 그 핵심만 적어보자.


① 감성(공감 능력)의 배양 기능 (可以興)

② 지혜(관조 능력)의 배양 기능 (可以觀)

③ 사회성(단결력)의 배양 기능 (可以群)

④ 정서의 순화 기능 (可以怨)

⑤ 정성의 도야 기능 (邇之事父,遠之事君)    ※ 충과 효의 핵심은 지극 정성의 마음이므로

⑥ 지식과 정보의 축적 기능 (多識於鳥獸草木之名)


모두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초콜릿 같은 기능이다. 그런데 우리는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그중 어떤 기능을 배양하고 있는 걸까? 기껏해야 맨 마지막의 '지식과 정보의 축적 기능' 정도일 듯. 무엇을 위해서?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서,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서서 남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공자가 말하는 문학의 목적은 달랐다. 



"시를 배우지 않고서는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不學詩,無以言) 《논어論語 · 위정為政》



문학은 상대방과의 효율적인 대화를 위해서 배워야 한단다. 무엇을 위해서?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즉, 문학이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타인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순화할 수 있는 최선의 설득 수단이라는 뜻이다. 그러려면 우선 내용에 깊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딱딱한 이론과 분석의 접근 방법으로는 타인을 순화하고 설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자가 가장 중시한 기능이 '감성'이다. 감성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 어떻게? 말이 필요 없다. 쉽고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하는 말이 귀에 쏙쏙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동적이어야 한다.


한漢나라 때의 학자들은 공자의 이런 문학 교육 특성을 한 마디로 '온유돈후溫柔敦厚'라고 했다. '온유'란 '보드랍고 따스한 것', '돈후'란 '내면세계가 두터운 것'이다. 형식은 말랑말랑 보드랍고 따스하면서도 내용은 심원한 깊이로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말이다. 그 '온유돈후'의 특성을 요새 말표현하자면 '초콜릿을 나눠주는 문학 교육'이다. 그게 어찌 문학관뿐이겠는가. 공자의 위인 됨됨이 자체가 바로 그러했다. 공자는 초콜릿을 나눠주는 문학 선생님이었다. 공자가 엄숙한 형식주의자일 것이라는 착각, 우리의 두 번째 오해다.


학생들에게 공자의 이미지를 물어보면 대부분 제사 이야기를 꺼낸다. 형식주의와 엄숙주의를 떠올리며 숨이 막힌다고 한다. 큰 오해다. 공자는 근엄한 형식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형식주의를 반대한 인간미 넘치는 휴머니스트, 초콜릿 같은 남자였다. 공자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전적으로 공자를 팔아먹은 자들 때문이다. 그리고 유가 사상과 공자를 근엄하게 가르쳐 온, 권위주의에 빠진 소위 '전문가' 들 때문이다.




대만대학 유학 시절에 공자의 77대 적손인 쿵더청, 즉 공덕성孔德成 선생님에게 한 학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석박사반 학생 6, 7명이 선생님 연구실에 모여 수업을 듣는데, 담배 파이프를 입에서 떼지 않는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벙글벙글 웃으시며 손수 모든 학생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곤 불까지 붙여주셨다. 담배 한 대를 다 피면 귀신 같이 알아채고 얼른 다가오신다. 또 벙글벙글 파안대소, 또 한 개비 물려주고, 또 불을 붙여주셨다. 그 작은 연구실은 그야말로 뽀오얀 연기로 눈을 뜨기 힘들 지경이었다.


(좌) 대만대학 문학원 건물. (우) 대만대학의 상징인 야림대도椰林大道. 쭉 뻗은 야자수 나무가 무척 인상적이다.


담배를 피우면서 강의를 하다니. 그것도 학생한테 권하면서 같이 피다니. 무슨 이 따위 교수가 다 있느냐, 요새 같으면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며 난리를 칠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들은 선생님의 그 파격적인 소탈함에 놀라며 감사했다. 스승님이란 그림자도 밟지 못하는 어렵고 어려운 존재인 줄로만 알았는데, 학생에게 먼저 다가와서 담배를 내밀고 같이 피우시다니. 그 격의 없음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이 주시던 그 담배는 우리에게 또 다른 형태의 온유돈후요, 초콜릿이었다.


하물며 선생님이 누구신가. 공자의 77대 적손 아닌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국 대륙과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의 유림이 하늘 같이 떠받들어 모시는 분 아니던가. 그런데도 한없이 소탈하고 부드러우신 선생님을 뵈면 공자님이 바로 저러하셨으리라,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논어》를 다시 한번 읽어보니 공자의 인간미 넘치는 보드랍고 따스한 휴머니스트의 모습이 곳곳에서 엿보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바로 온유돈후의 실천 문학일 것이다.


공덕성 선생님과 1980년 안동 도산서원 방문 시에 쓰신 휘호 <추로지향 鄒魯之鄕>.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뜻이다.




[ 표제 사진 ]

◎ 송나라 때 마화지馬和之가 그린 《시경 · 채미采薇 》시의도詩意圖.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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