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막 대만에 유학 갔을 때 일이다.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문학세계를 알고 싶어서 '당대唐代문학 전제專題 토론'이라는 석박사반 세미나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어라? 다루는 게 희한하다. 당나라 때 관리들의 봉급 수준은 얼마이고 출퇴근 시간은 어떠했는지, 당시 사람들이 좋아하던 꽃은 어떤 건지, 맨 그런 거였다. 아니, 이게 무슨 문학이라지?
뿐만 아니었다. 중문과에서 옛날 음악도 가르치고 춤도 가르치고 심지어 복식服飾, 즉 옷과 장신구 따위도 연구하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했다. 아니, 황당했다. 우리 전통의 '문학'과 'literature'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모르고 마음속으로 비난까지 했다. 'literature'가 바로 곧 '문학'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literature'는 '문학'이 아니다. 양자는 큰 차이가 있다.
어떻게 다를까? 먼저 도표로 요약해 보고 추후에 작품 감상 등을 통해 차근차근 느끼도록 해보자.
'literature'와 '문학'의 차이
(1) 우리 문학의 특징
'humanities'에서 비롯된 'literature'는, 이론적이고 분석적이며 딱딱하고 재미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려워한다. 그게 '인문학의 위기'를 불러온 결정적 이유다. 하지만 '문학文學'은 아니다. 어렵고 골치 아픈 심각한 이야기들도 부드럽고 흥미 있게 풀어내는 것이 공자孔子로부터 비롯된 동아시아 문학의 전통이었다.
동아시아 ‘학문’에서의 '문학'은 '역사/철학'과 어떻게 다를까? 다루는 대상은 똑같다. 모두 우주와 대자연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물론 그래도 차이는 있다. 아니면 이름이 다를 이유가 없을 테니까. 어떤 차이가 있을까? 굳이 말하자면 역할의 차이다. '역사'가 하는 일은 기록을 통한 포폄이다. 사건이나 인물의 행위의 잘잘못을 판단해 주는 역할이다. '철학'이 하는 일은... 없다. '철학'은 서양학이다. 동아시아 '학문'에는 없는 분야다. 이건 뒤에서 다시 얘기하자. 일단 패스! ‘문학’이 하는 일은 그 모든 영역에서 즐거움을 선물하는 초콜릿 역할이다. '얼마나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동시킬 수 있느냐', 그것이 문학의 최대 특징이다.
가령 수학 선생님이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서 학생들이 졸지 않고 잘 따른다면 그분은 아주 훌륭한 문학가다. 물리학자가 TV에 나와 재미있게 강연한다면 역시 훌륭한 문학가다. 그런 면에서 우주와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에 관한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며 인류를 감동시키고 순화시킨 예수나 공자나 석가모니는, 상징과 비유와 은유와 우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최고로 탁월한 문학가라고 할 수 있겠다.
(2) 우리 문학의 경계境界
서구의 'science'는 분리 패러다임의 산물답게 연구의 영역을 세세하게 분류한다. 그래서 ‘literature’의 영역은 ‘글자 letter’다. 글재주를 부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literature’는 '문학'이 아니라 ‘문장론文章論’으로 번역했어야 했다.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은 일원론이다. 분리하지 않고 결합하여 생각한다. 따라서 '학문'은 영역의 경계를 따지지 않는다. '문학文學'의 '文'은 '삼라만상 모든 것의 근본 이치를 그린 것物象之本'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 그러니까 삼라만상 모든 것이 전부 다 ‘문학’의 연구 범위요, 대상이다. 따라서 'literature'는 '글자 letter'만을 표현 매체로 삼지만 '문학文學'은 '글자'만이 아니라 '소리'도 매체다. 예컨대 동아시아 학문의 첫 번째 경전인《시》는 문학책인 동시에 당시의 유행가를 모아놓은 노래책이기도 하다. 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분리되었지만, 고대 동아시아에서 '음악'은 바로 '문학'이었다. 뿐만 아니다. 글씨체와 그림, 심지어 노래와 춤과 연극까지도 '문학'이었다. 요새라면 당연히 영화도 포함된다.
공자 시대에는 녹음기가 없었다. 카메라도 없었다. 그래서 문자로 소리를 녹음했다. '의성어擬聲語'가 바로 그것이다. '모방할 의', '소리 성', 글로 소리를 흉내 낸 것이 의성어다. '의태어擬態語'도 마찬가지. 글로 그 어떤 모습을 사진 찍어 놓은 것이 의태어다. '문학'에는 이 의성어와 의태어가 대량으로 등장한다. 그게 공자로부터 비롯된 동아시아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이다.
따라서 '문학'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머릿속으로 소리를 재현해서 들어야 한다. 귀머거리가 된 베토벤이 악보만 보면서도 미친 듯이 멜로디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동시에 그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떠올려야 한다. 그야말로 시각 청각 모든 감각이 동원되는 멀티미디어 종합 예술이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근자에 대두된 '문화콘텐츠'와 상당히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문화콘텐츠는 문자 대신 녹음기와 카메라로 소리와 이미지를 재현해서 들려주고 보여준다는 것 정도일까.
상상의 세계는 실제로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보다 인간의 감성을 훨씬 더 자극한다. 익숙해지기만 하면 '문학'이 훨씬 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할 터. 이곳 <브런치 스토리>에서처럼 글과 이미지를 결합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동영상이나 소리 파일도 올려주어 음성 지원도 해준다면 일반 독자의 호응이 훨씬 뜨거울 것이다. 글과 이미지, 소리와 영상이 합일된 멀티미디어 '문학'의 세계가 열려야 한다. 형식 면에서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보드라우면서도, 내용적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뭉클 움직이게 해주는 온유돈후 '문학'의 세계가 열려야 한다. 그래야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 표제 사진 ]
◎ [좌] 동방 세계 최고의 문인, 동파東坡 소식蘇軾 (宋, 1037~1101)
그림은 청淸 주학년朱鶴年의 1810년 작품. 간송미술관 소장.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연경에 가서 옹방강翁方綱을 스승으로 모실 때, 그의 제자이자 유명한 화가인 주학년에게 부탁하여 얻은 작품. 그만큼 추사를 비롯한 조선 문인들은 동파를 최고로 추앙했다.
◎ [우] 서방 세계 최고의 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W.Shakespeare1564~1616)의 초상화.
존 테일러(John Taylor, 1585-1651)의 1610년 작품으로 추정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