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비염이 있어서 감기를 달고 살았던 나는 환절기가 되면 꼭 아팠다. 초등학교 2학년 한약을 먹기 전까지는 매년 감기와의 전쟁이었다. 아프게 되면 밥을 잘 먹지 못했고 '부모님은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말을 뱉으시곤 했다.
아이가 아플 때면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아이는 어떤 존재이길래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말을 부모들은 하나같이 말할까?라는 궁금증이 매번 있었다. 그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나 역시도 뱉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아이는 예쁘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아이가 커가는 예쁨보다는 나의 힘듦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모성애는 바로 생기는 걸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고 나는 원래 아이를 예뻐하는 사람인데 왜 내 아이는 생각보다 그 정도가 아닌 것 같지라며 고민했다. 또 주변에 아이를 정말 예뻐하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분들이 많아서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이제야 깨달아버린 것은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점차 정이 들고 더 사랑하게 된다. 호르몬의 변화를 아주 아주 아주 세게 겪는 나는 힘들었다가 우울했다가를 반복하다가 겨우내 아이와 나의 삶이 공존하는 법을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다들 둘째를 어떻게 1-2년 안에 갖는 거야?'라는 생각을 마구마구 하다가 이제야 '아! 이래서 둘째를 생각할 수 있게 되는구나'를 알고 다가서게 되었다.
12월이 되고 우리 집은 꽤나 힘들다. 정상적인 컨디션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도 콧물, 기침, 열을 돌아가면서 겪고 있고 항생제를 끊어버리면 다시 도루묵이 되어서 항생제를 근 한 달을 먹고 있다. 아이는 먹성이 아주 좋은 친구인데 아프고 나서 살이 거의 1kg이 빠져버렸다. 밥을 쫓아다니면서 먹는다는 말을 몰랐는데 이번에 아이가 밥을 먹지 않아서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쫓아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들은 가래가 생기면 기침을 하다가 '커어어 억'하면서 가래를 뱉곤 한다. 아이는 기침을 연신하다가 가래가 순간 걸려서 토를 해버렸다. 아이의 먹성이 떨어진 시점도 이때부터였다. 토를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기분도 나쁘고 순간 놀래버려서 그 뒤로는 기침을 심하게 하거나 토를 할 것 같을 때면 크게 울어버린다. 1일 1토를 하고 있는데 먹는 것도 별로 없는데 다 게워내니 부모의 마음은 좋지 못하다. 8시에 취침을 해서 6시 반에 일어났던 아이는 7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며 출근을 하는 내 삶이 아니, 아이를 챙기지 못하고 출근을 해야 해야 하는 부모를 둔 아이가 안쓰럽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남편과 나는 12월을 보내니 체력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회사에서 부정적 일이 있을 때, 더 크게 반응을 하곤 했다.
어제는 회사에서 야근을 했고 기분이 좋지 못한 일이 있어서 남편에게 '오늘은 꼭 닭발을 먹겠어!'라고 말했다. 남편은 '좋아!'라고 대답했고 아이를 재우고 닭발을 먹기로 했다.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자버렸고 10시 반쯤 졸린 눈을 겨우겨우 뜨며 일어났다.
남편은 나에게 "먹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지만 나는 "아니 오늘 놀 거야"라며 닭발을 포장해 오라고 시켰다. 둘이서 닭발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남편은 점심도 먹지 못하고 일을 했고 저녁에 아이 병원 대기를 기다리다가 근처 식당에서 아이와 밥을 시켰는데 아이가 먹다가 남편의 음식에 토를 해서 결국 마무리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남편도 역시나 힘든 하루하루를 겪었구나 안쓰럽기도 한 오늘이다. 그렇게 우리끼리의 이야기를 조잘조잘 나누다 보니 마음이 한결 좋아졌다. 나와 남편에게 중요한 건 이런 작은 시간들인데 이번 달은 이런 시간들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