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이 가득가득 차 있는 12월에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갔다. 심지어, 잠을 자고 온다고 해서 갑자기 자유부인이 되었다. 이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하는가? 갑작스럽게 생겨버린 자유시간에 무엇부터 할까라며 고민을 하다가 노트북과 펜 그리고 여러 가지를 챙겨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따뜻한 레몬차 한 잔을 홀짝거리며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감사일기도 쓰기도 했다.
매번 시간에 쫓겨서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다음엔? 지금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데 라는 빡빡한 일정들을 뒤로한 채로 내 눈앞에 있는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풍경을 멍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또 그렇게 다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할 수 있었다. 주말에 도서관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삶이라니! 평일의 복잡한 마음과 상반되는 행복이다.
그렇게 야무지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는 미루어두었던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컨디션이 나빠지고 나서부터 아이의 음식, 어른의 음식은 가리지 않고 점차 단조로워졌다.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며 주방을 치우다 보니 엄마가 말려서 보내주었던 고사리가 눈에 띈다. 오랜만에 장도 봐야겠다. 육개장을 집에서 만들어볼까라며 무와 버섯 등을 장바구니에 쏙 하고 넣어본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것저것 해본다. 무나물도 만들고 아이가 먹을 수 있는 닭곰탕도 만들어본다. 그동안 몸이 좋지 못해서 못 챙겼던 미안함을 음식으로 꼭꼭 눌러 담아본다. 나물도 무치다 보니 엄마가 왜 그렇게 깨를 듬뿍 뿌려서 음식을 마무리했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아이 옷과 장난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친구 언니가 남아를 키우고 있고 1년 반정도의 차이가 나서 아이의 물품을 대부분 물려받을 수 있었다. 둘째는 없다고 외쳤던 언니가 현재 3개월 된 둘째(남아)를 키우고 있어서 '물품을 빠르게 정리해서 보내줘야지.'라며 생각만 하다가 나의 임신기간을 맞아버렸다. 어느새 우리 아이도 제법 커서 작아진 옷들이 많아졌고 우리 아이보단 언니네 둘째에게 더 적합한 장난감들도 눈에 띈다. 아이의 물건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집 안은 풍선처럼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아이를 키우는데 꽤 많은 물품들이 공간을 차지한다. 특히, 영유아시기의 아이의 물품은 부피가 커서 순환을 빠르게 시켜주어야 한다. 그렇게 물건들을 정리하고 다시 물려줄 옷들을 빨래를 돌리니 시간이 금세 후루룩 흘러버렸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 그리고 집안일을 어느 정도 끝내고 나니 떠오르는 것은 다음 주 회사 마감일정이다. 다음 주는 마감 주인데 1월 1일 빨간 날도 있고 밀려버린 일들이 문득 내 머릿속을 스친다. 남편의 회식일정으로 다음 주에 야근을 하기란 쉽지 않고 또 아이가 있어서 매번 야근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빠르게 치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는 불편한 생각이 요리조리 올라온다.
요즘 회사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그 이유는 10월부터 인원 충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고 일을 나눠도 9월 대비 1.5의 일을 쳐내다 보니 매번 회사에서 아등바등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더 해서 쳐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닌 경우도 허다하고 또 떨어진 임산부의 컨디션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니 집중력도 낮아졌다. 그렇게 저번주에는 회사 관두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너도 알고 나도 알겠지만 현재 경제상황은 박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율은 치솟고 있고 수입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경기침체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내 월급의 가치는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회사를 관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회사를 다닐 수 있음에 일을 하고 나서 내년에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감사하는 하루하루를 쌓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