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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Jan 07. 2025

어린이집에 약 12시간을 맡겼다.

나는 둘째를 임신했다.

회사는 여전히 다니고 있으며 약 30주가 넘었을 때까지 다닐 생각이다. 

임산부는 체력이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회사 일이 덜어지진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임산부라고 월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첫째를 임신했을 때 다녔던 회사보다 업무의 강도가 센 편이다. 덕분에 야근을 종종 하게 되는데 남편과 내가 둘 다 야근을 하는 날은 아이를 늦게 하원하게 된다. 


물론, 최대한 조정을 해서 남편이 야근하는 날은 내가 야근하지 않고 내가 야근하는 날은 남편이 야근하지 않도록 조정하지만 그게 어려운 날도 있다. K-직장인들은 모두 공감하겠지?


여하튼, 오늘도 그런 날 중에 하루였다. 기존 업무시간 내에 최대한 업무를 끝내보려 했지만 마음처럼 그게 되지 않았다. 나는 5시 퇴근인데 6시가 다돼서도 업무가 남아있자 어린이집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OO이 엄마입니다. 죄송하지만 오늘 하원을 7시 넘어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어렵게 뱉었다. 어린이집에서 절대로 눈치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냥 복합적인 마음이 올라올 뿐이다. 아이를 오래 맡겼다는 미안함,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우리 아이 때문에 늦게 퇴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대한 미안함, 이럴 때마다 관두고 싶은 회사, 둘째를 갖지 않았다면 '업무강도가 조금 더 낮은 회사로 이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등이 머릿속에서 휩싸인다. 


등원 1등 하원 꼴뜽이라고 생각하니 약간은 우울하다.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 딱히 여유롭지 않은 가정에 둘째는 욕심이 아니었는지 그냥 혼란스러울 뿐이다. 


됐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아이와 잠자기 전까지의 시간을 아주아주 알차게 보내리!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빵집에서 '뽀로로빵'을 사주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뽀로로빵을 연신 외쳤다. 저번에 산 건 '에디빵'이었는데 이번엔 '뽀로로빵'이네라는 말이 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 이천 원이 안 되는 돈으로 너의 행복을 산 기분이다. 너의 해맑음에 나의 한숨의 깊이는 얕아진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는 바닥에 빵을 놓고 뽀로로빵에게 외쳤다.


뽀로로빵, 기다려!


집에 돌아오면 스스로 양말을 벗고 손을 씻어야 하는 루틴이 있다. 아이는 양말도 벗어야 하고 손을 씻고 나서 빵을 먹을 수 있음을 알고 그동안 뽀로로빵에게 기다리라고 말한다. 4시에 하원한 친구들보다는 적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남은 오늘 하루를 알차게 보내본다.


잠이 폭 하고 들어 버린 너를 보다가 하루의 마무리는 글쓰기로 해본다. 아이 덕분에 글감은 넘쳐난다. 때로는 우울감에 잠식되기도 하고 때로는 행복함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글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너와 나도 한 뼘 성장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을 살아내느라 우리 참으로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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