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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dy Spider Oct 09. 2023

Epilogue

모녀간 유대는 강철 같은 것

# 자식 잃은 어미의 혼

어느날 꿈에서 어떤 비구니가 나왔는데 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억지로 잃은 억울함 때문에 몇 번의 삶을 반복하고 있네요. 자식 잃은 어미의 혼이에요. 이번 생에는 꼭 아이와 함께 사세요." 꿈 속의 나는 이 비구니의 말을 듣고 눈물을 훔치며, '그래, 이번 생에는 꼭...'이라고 하며 가슴 속에 새겼다. 부모는 당연히 자식에게 내리사랑을 주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이렇게 태어난 후 10년 동안 나에게 '올리사랑'을 보여준 켈리를 당최 보내줄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나와 똑같은 정도의 애착을 가지고 켈리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남편을 만나 난 그저 탈무드에 나온 여인네처럼 아이를 상대에게 내 줄 수밖에 없다. 왜냐 내가 진짜 엄마니까. 내가 상대와 똑같이 아이에 대한 소유욕을 가지고 집착할 때 발생할 재앙을 나는 알고 있기에, 내 쪽에서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 Being a mother

사실, 이 책을 쓰게 된 건 켈리와의 말다툼 때문이었다. 켈리는 자라나면서 더욱 섬세해 지고 정말 '사춘기'라는 게 빨리 오는 것인지 내가 당해낼 수 없는 말들로 나를 아프게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주말에 만나기로 했다가 갑자기 사무실에 나갈 일이 생겨서 나중에 보자 했더니 "엄마, 정말 회사 가는거 맞아? 엄마 의심스러워."라고 켈리가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그 "의심"이라는 단어에 화들짝 놀랐다. 그 단어는 남편이 자주 쓰는 건데... 순간 나도 모르게 "의심? 그거 아빠가 시켜서 말하는 거야?"라고. 그랬더니 되려 켈리는 "아니, 이거 내가 생각해서 말하는 건데? 엄마야 말로 왜 나를 의심해?"라고 하는 것이다. 켈리 키우면서 이런 적은 없었는데. 그러더니 켈리가 갑자기 "엄마, 엄마는 왜 나랑 같이 안살아? 왜 일만 해?"라고 한다. "켈리야, 너 어릴 적에 엄마는 너랑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어~ 중국에서도 미얀마에서도~" 라고 했더니 "그거는 내니가 나를 봐 준거자나"


딸 아이의 팩폭이라니, 가슴이 저리게 아팠다. 난 애가 태어나서 방긋 웃고, 뒤집기 하고 기어다니고 첫 걸음을 떼었던 기억, 중국에서 갑자기 아파서 밤새 해열제 먹이고 잠을 설쳤던 기억, 엄마 출근할 때 "엄마 사랑해"를 외치던 작은 다섯살 켈리, 어깨가 움츠러들었던 엄마를 안아주고 토닥이는 여섯살 켈리, 여러 나라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섞여 놀던 일곱살 켈리의 모든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데. 막상 아이는 기억이 나질 않는구나. 원래 연인의 기억상실증을 소재로 한 멜로 영화는 100 퍼센트 눈물을 짠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함께 한 추억이라는 것은 정말 소중한 건데. 나와 켈리의 추억은 나만 기억하고 있다니. 물론, 자식이 갓난아이였을 때 뜻도 모르고 의도도 없이 선사한 웃음만으로도 평생 효도를 다한다고 한다던데. 그렇기에 자식에게는 무엇도 바라지 않는 것이 정답이라고들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러한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나보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슬펐지만, 나는 어느새 자기합리화를 해 버렸다. 이럴 수밖에 없다고, 달리 방법이 없다고. 원래 자식들이 그런거고, 부모는 그런 자식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이런 말을 열한살 어린 남동생에게 해주었더니 "누나, T발 C야?"라고 한다. 좀 지나치게 T형인 사람에 대해 하는 말이라고 한다. 내가 극 T 형이기는 하다. 물론, 한밤 중에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에게 푹 빠져서 1년 넘게 자나깨나 모유수유를 했던 것, 아이를 끼고 주말 출근했던 억, 코로나 속에서 아이와 함께 사무실에서 동고동락했던 기억, 그 모든 것이 켈리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내가 켈리에게 무언가를 해 준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것이다. 그 소중한 선물이 내 머릿 속에만 명확하게 남아있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프지만,  


# 모녀의 영혼은 데칼코마니

켈리는 내 딸이다. 켈리와 나는 둘 다 나비의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비는 애벌레로 태어나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나비로 성장한다. 각각의 변화의 단계에서 나비는 모든 세포를 다 녹였다가 다시 새로운 형태로 그 세포를 재배열해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고 한다. 나도 그 성장의 과정에 있고, 켈리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어느새 자라서 엄마를 "의심"하고 엄마에게 "실망"하는 켈리를 보며,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추억을 간직하지 못한 켈리를 보며, 나는 켈리가 그동안 엄마인 나에게 주었던 아름다운 명언 선물을 내 기억에서 끄집어 냈다. 비록 켈리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켈리는 이미 지난 10년간 나에게 큰 사랑을 주었다. 그 파장이 나에게 남아있다면 언젠가 켈리에게도 전달 될 것이다.


엄마로서의 겡끼 인생도 아직 끝이 아니다. 어떠한 과정에 놓여있을 뿐이고, 그렇게 매 순간, 매 찰나에 제대로 깨어있기만 하면 된다. 괜시리 규정지을 필요도 없고, 굳건한 자신감과 사랑은 타인이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자식의 기억 속에도 그런 것이 없다. 오로지 내 안에서 자라나 곱게 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증명할 필요 없이 명징한 나의 사랑을 언젠가 켈리의 마음에도 와 닿길 바라며, 이 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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