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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dy Spider Oct 08. 2023

자유로운 영혼 켈리

2010년대생의 장래희망

# 통찰의 시간

켈리를 보내고 난 미얀마는 정말 텅 빈 것 같았다. 켈리와 함께 지냈던 25평 집 조차도 너무 넓은 것 같았고, 특히 퇴근 후에 맞닥뜨려야 하는 넓고 텅 빈 느낌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나는 켈리가 떠난 그 달부터 1인용 스튜디오로 이사를 했다. 코로나에, 딸까지 떠나 보내자, 나를 감싸고 있었던 필사적인 "책임감"의 아우라가 사라졌다. 사실, 아이가 없는 상황에선 제 아무리 코로나라 하더라도 모든 것이 쉬웠다. 물 속을 걷다가 뭍에 나와 뛰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난 무언가 주술에 풀린 괴물처럼, 변신에서 풀려난 헐크처럼, 허한 느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창 밖으로 쉐다곤 파고다가 바로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을 구한지라, 매일 저녁 나의 유일한 낙은 양곤의핑크빛 노을에 점점 더 존재감을 더해가는 쉐다곤 파고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었다. '서울에 가면, BTS 댄스를 배울거야, 요가 자격증을 딸거야, 박사학위를 해야지.' 회사 밖에 모르고 회사에서 위치지어진 역할에만 집중하던 나는 드디어 귀국 버킷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금강경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불교도는 아니었기에'수보리야~ / 세존이시여~ / 아뇩따라삼먁삼보리...'와 같은 단어들이 생소하긴 했지만 그저 금강경을 필사하고 있으면 마음이 놓였다. '응무소주, 이생기심(마땅이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 지어다)'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게 되면, 바로 여래를 볼지어다)'는 정말 주문 외우듯이 중얼거리고 다녔던 것 같다. 고시 볼  때는 성경을 필사했었는데, 어쨌든간 어딘가 기댈 곳, 기댈 사람이 없을 때 기독교든 불교든 경전을 필사하는 행위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심지어 난, 그 당시 금주라는 것도 해 보았다. 더블 홀리즘이라고 하여 워커홀리즘과 알코홀리즘을 둘 다 가지고 있던 나는 갑자기 술을 끊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홀로 미얀마에 남았던 반 년 남짓 동안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왠지 그냥 셀프 형벌 같았다. 엄마 몫을 하지 못하고 아이를 보내야했기에, 그냥 더 제정신이고 싶었다. 그리움이라는 느낌에 온전히 깨어 있고 싶었다. 


그렇게 켈리가 떠난 후의 미얀마 파견 기간은 나에게 깊은 통찰의 시간을 주었다. 원래 모든 상황과 경험은 좋고 싫음이 없다. 내 태도만이 그것을 결정할 뿐. 그 시간은 쇼생크 감옥 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나는 그 때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 '주말 워킹맘' 되기

천만다행인 건,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도 끝이 있다는 것이고, 나는 시간을 견딘 끝에 귀국을 하게 되었다. 귀국날 인천 공항에서 어느새 훌쩍 커 버린, 이제는 나와 생활 공간을 더이상 공유하지 않는, 살짝 낯선 켈리를 마주하였다. 엄마 보고 싶었다고 울거나 하지 않고 너무나 의젓하고 어른스럽게 나를 맞이하던 켈리가 왠지 애처로웠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시작한 켈리를 워커홀릭 워킹맘인 내가 케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남편쪽 부모들도 손녀 양육에 너무 적극적이고, 무엇보다 남편이 놓지 않으니 결국 켈리는 내가 귀국한 이후에도 남편쪽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난 주말에 만나는 주말맘이 되었다. 물리적으로 함께 지내지 못하다보니 예전처럼 사칙연산도 가르쳐 주기가 어려웠다. 대신 나는 주말마다 켈리와의 데이트를 즐겼다. 수족관, 미술관, 그림 원데이 클래스, 남산 공원, 서울대공원 등에 놀러다니다가 나중에는 수원, 통영이나 동해 등으로 국내 여행을 다녔다. 켈리는 정말 밝고 씩씩한 아이로 자라나고 있었다. 철없는 엄마 옆에 조숙한 초딩딸이 되어 있었고 우리 모녀는 어느새 주말 데이트를 즐기는 모녀/연인이 되었다. 나중에는 켈리가 "엄마 우리 여기 가볼까?"할 정도로. 


# "나는 엄마 닮아서 자유로운 영혼인가 봐"

켈리가 자랄 수록 켈리가 하는 말들이 너무 신기하다. 혼자서 켈리가 한 말을 떠올리며 풉~ 하고 바보같이 웃은 적도 여러번 되는 것 같다. 우리 모녀는 여행을 다니며 깊고 열린 대화를 많이 하곤 하는데, 어느날은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 나는 엄마 닮아서 자유로운 영혼인가 봐." 라고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게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이유를 물으니, "공무원 되기 싫어. 공무원 되면 N 잡을 못하자나" 라는 것이다. 


"그럼, 커서 뭐가 되고 싶은데?"라고 물었더니, "웹툰 작가랑 성우"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흠, 웹툰 작가도 켈리가 자라고 나서는 없어질 지도 모르는 직업 아닌가? 생각했는데 더 웃긴건, 

"나는 웹툰 작가 되도 딱 이틀만 일할거야. 그리고 여름에는 바닷가에서 카페를 할거야" 라고 하는 것이다. 

요즘 엠지다 뭐다 하는데, 2010년대생 아이들은 더 새롭구나. 아무리 날 닮아 자유로운 영혼이라지만, 조금 결이 다른 것 같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이 동경하는 "아이돌"이 되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니, "싫어. 맨날 다이어트하고 연습 엄청 많이 해야 하자나~"라고 한다. 뭔가 참 아이 치고는 현실적인 판단이다. 


솔직히, 이젠 딸 아이에게 뭐가 되어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이런 늙다리 말을 하기가 좀 그렇다. 평생 직장, 평생 직업 개념이 사라지고, AI가 나타나서 사람 하는 일들을 많은 부분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이 시점에선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어차피 무슨 직업이든지 "일"로서 하게 되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직업을 택하더라도 결국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고 할 것이기에, 하다보면 다른 일 하는 것보다 시간이 빨리 가고, 평균치보다 조금은 나은 정도의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 일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웹툰작가와 성우, 계절 카페 주인"이 되고 싶다고 하는 켈리에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을 뿐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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