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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koon Nov 13. 2024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1)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삶에서 낭만적인 영역만큼 운명적 만남을 강하게 갈망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p.7)


1. 사랑은 여러 종류가 있다. 물론 사랑이라는 단어 말고 수많은 표현으로 바꿔 말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사랑이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 친구들 간의 우정, 물건에 관한 애착, 동물과 자연환경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은혜까지. 결국 사랑이다.


2. 그러나 보통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연인 간의 사랑을 말한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관계이지만 아주 특별하므로 보통의 관계와는 차별된다. 가족 간의 사랑은 피로 이어진, 자연스럽게 강제된 관계이므로 그 어떤 운명적 관계보다 끈끈하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가족과의 관계는 그 이외의 인간관계보다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아이러니 중 하나이다. 누구나 갈망하는 운명적 관계는 가족에 해당하지 않고 오직 연인과의 관계에만 해당하는 느낌이다.


3. 이런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는 우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정에는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에 베프라고 부를 수 있는 아주 끈끈한, 가족 다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우정에 한해서 이야기하자면 그들과의 관계 역시 우연성보다는 운명적 관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들과의 시작은 우연에 할지라도 결국 다양한 군중 속에 강한 운명적 이끌림으로 뭉쳐진 하나의 선택된 운명적 관계임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일련의 보통 사건으로는 깨어지기 어려운 관계다. 그런 의미에서 우정은 감정이기보다는 꾸준한 위치에 가깝다.


4. 하지만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영역에서는 어떨까. 사랑은 다른 어떤 인간관계를 비교해서도 우연성이 짙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이나 스타일, 표정이나 분위기 만으로 '어쩌면 할아버지가 잃어버린 (가상의) 가족을 찾았어.' 라거나 '이 사람이라면 앞으로 30년간, 혹은 죽을 때까지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며 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성을 만날 때는 '한눈에 반한다.'. 순전히 왜곡된 시선으로.


 그렇게 따지고 보면 사랑하는 연인관계는 완전한 우연이다. 한 가지의 우연한 조건이라도 틀어졌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그런 불안정한 관계이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도 이어졌을지 모를 그런 사이지만 그러한 우연함은 더더욱 강한 운명적 만남을 원하게 되는 이유인 것 같다.


클로이를 만난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딱 맞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p.12)


5. 첫눈에 반하게 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그 온종일 그 사람만 생각하게 된다.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예정 없이 도착한 알려지지 않은 도시의 풍경만큼이나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왠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나와 잘 맞을 것 같고, 우리는 행복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단한 공통점이 아니더라도 아주 사소한,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해서 가지고 있는 공통점들도 우리가 운명이기에 딱 맞는 신비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산책을 좋아한다든지, 초콜릿을 좋아한다든지, 가을 하늘을 좋아한다든지. 오히려 이런 공통점들은 아주 거창하지 않을수록, 그러니까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하찮은 습관이면 더 좋아진다. 이런 요소들이 모여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운명이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엄청나게 작은데도 결국 일어났다면, 운명론적 설명에 호소를 한다고 해도 용서받을 수 있자 않을까? (p.16)


6. 모든 순간은 한번뿐이다. 다시 말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같은 순간은 없다는 것이다. 곧 모든 순간은 일어날 가능성이 엄청나게 작은 운명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많은 운명적 순간들은 의미 없이 흘려보낸다.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운명적 순간이 우연히 다가오기를 바란다. 사실 우연이란 무지의 또 다른 말이다. 분명히 모든 우연은 우리가 모르는 필연적인 조건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연은 운명이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했다는 것. 우리가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결국 우연일 뿐이라고, (...) 느끼게 되는 순간은 동시에 그녀와 함께하는 삶의 절대적 필연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 즉 그녀에 대한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p.18)

7. 결국 우연을 운명으로 여기는 것이나 우연을 우연이라고 믿는 것이나 둘 다 같은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좀 더 특별한 환상에 빠지게 만들고, 후자의 경우에는 의미 없는 일상으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 후자의 경우에는 흔한 이별의 순간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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