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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교육이라는 달콤한 환상

우리 아이는 실험용 생쥐가 아닙니다.

by 삽질

요즘 초등학교 교실을 보면 오래된 스마트폰을 교체하듯 기존 시스템과 도구를 전부 디지털, AI, 최신 트렌드로 갈아엎으려는 모습입니다. 개인용 스마트패드와 각양각색의 학습용 플랫폼으로 아이들의 학습을 업그레이드 해주고 있죠. 저희 학교는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교육을 한다고 시끌벅적합니다. 교장선생님은 자신의 마지막 교육적 사명을 위해 꺼져가는 불씨를 깜빡이고 계십니다.


어제 1정 연수 실행학습에 다녀왔습니다. 스마트하신 교육담당 선생님께서는 AI를 활용한 수업과 다양한 디지털 수업 플랫폼을 소개해주셨습니다. 경기도 교육청은 디지털 교육 홍보를 위해 많은 교육적 실험을 하고 관련 영상을 제작 중인 듯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도구의 도입과 사용능력 향상이 학생들의 사고력, 문해력, 집중력과 같은 학습능력을 크게 향상시킨다는 증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트렌드한 교육방법과 최신 상담기술 따위로 인한 문제점은 늘어만 가고 있죠. 학생들의 기초학습능력, 정신건강과 관련된 지표는 최신교육의 지향점과 정반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어제 연수에서 콜버그의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교육담당 선생님께서 도덕수업에서 많이 활용하신다면서 소개해주셨죠. 교대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일 것입니다. 지금도 도덕 교과서에 실려있고요. 그런데 도덕성을 합리적으로 훈련할 수 있다는 이론은 이미 현대 심리학자와와 신경과학자들에게 반박됐습니다. 인간의 도덕성은 이성이 아닌 감정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죠. 행동경제학도 이와 비슷한 논리로 전통경제학의 오류를 들춰냈고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는 끊임없이 변화되고 폐기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지금 믿고 선망하는 것들도 언젠간 오류로 판명될 충분한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인류역사를 조금만 돌이켜 보면 최신이라는 이름이 저지른 치명적이 실수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X선이 처음 발견 됐을 땐 사람들은 X선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추었습니다. 납이 포함된 유연휘발유는 엔진의 진동을 줄여주는 효과가 대대적으로 홍보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몰았지만 수많은 납중독자를 낳았습니다. 스마트폰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성년자들은 스마트폰과 SNS에 무분별하게 노출됐습니다.(호주와 뉴질랜드는 이제 미성년자 SNS연령 제한 법안이 발효되었죠.) 인간의 짧은 시각과 눈앞의 이익이 만들었던 비극은 셀 수 없이 많고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최신이라는 말은 정말 달콤하게 들립니다. 인간은 누구나 최신, 새로운 것을 선망하고 때론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최신 것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합니다. 오히려 오랜 세월을 살아남을 것들이 앞으로 더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많죠. 지금까지의 생존기간이 길수록 예상 생존기간이 길어진다는 린디법칙입니다. 고전, 철학, 오래된 교육적 가치와 방법들이 최신의 것들보다 앞으로 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말입니다. 교육에 관해서 아이들이 먼저 익혀야 하는 건 최신 디지털 기기 사용법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왔던 학습 방법입니다. 종이책을 읽고 연필로 공책에 필기하고 친구, 선생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고, 다양한 신체활동을 하는 지겹고 낡은 방법이야말로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믿을 만한 교육방법입니다.


백번 양보해 AI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기르기 위해 아이들을 디지털 네이티브로 양성을 한다고 칩시다. 과연 디지털 사용법을 숙달한 학생들이 미래에 필요한 인재가 되는 것일까요? AI를 써보신 분은 알겠지만 창조적이고 실용적인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굉장히 심도 있는 지식과 질문 수준을 갖춰야 합니다. 그건 단순히 기계나 소프트웨어를 잘 만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죠. 오히려 고루한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잘하는 분야입니다. 사람의 인지기능은 재미없고 지루한 훈련을 통해서 향상될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글씨를 쓰고 대화와 토론, 질문을 하는 아주 전통적인 방법이 필요한 것이죠. 디지털화를 전면적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주객이 전도되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도구나 방법이 목적이 되어선 안됩니다.


지금 교육 현장은 수많은 사공이 서로 다른 나침반을 갖고 항해하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교육부, 교육청, 장학사, 교장, 교감, 학교에서 승진하려는 분들, 수많은 강사들 모두 교육 발전을 위해 각자의 나침반을 들고 열심히 노를 젓고 계십니다. 하지만 결국엔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지금의 디지털, 최신 교육 잔치를 벌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교육판에서 자신의 행위가 만든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요. 그리고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챙기는지를요. 명백한 건 잘못된 결과에 대해 피해를 보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건 아이들이라는 것이죠. 본인의 행동이 만든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사람을 믿어선 안됩니다. 우리의 자녀가 그 피해를 받는다면 더더욱 믿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 제 아이를 실험용 생쥐로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학생들에게 최신의 교육 방법과 시스템을 제공하는 건 바람직해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빠르게 변하는 AI시대에 최신이 없으면 시대를 앞서가는 인재를 만들 수 없는 것일까요? 혹시 지금의 상황이 몇 년 뒤 혹은 몇십 년 뒤에 엄청난 부작용으로 돌아오진 않을까요? 최신 트렌드 교육 광풍에서 한 발짝 떨어져 정말 중요한 교육적 가치와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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