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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침투부

사랑이 넘치는 엄마들의 육아 현장

by 삽질

요즘 1일 1 놀이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제 의지는 아니고 아이의 뜻이지요. 아이가 이제 말도 잘하고 몸도 잘 쓰다 보니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노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면 아파트 놀이터로 모입니다. 아내는 담임이라 바쁜 관계로 주로 제가 육아시간을 쓰고 아이하원을 시킵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동네는 맞벌이 부부가 거의 없어서 그런지 아빠는 항상 저밖에 없네요.(남편분들 능력이 좋으신가 봐요...) 조금은 뻘쭘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여초집단에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아줌마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침투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작년에 1년 동안 일을 쉬면서 아이를 돌본 덕분에 동네 키즈룸 네트워크도 형성한 터라 아는 분들도 꽤 많고요.


자연스럽게 놀이터에서 아줌마들과 섞여 지내다 보면 엄마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집집마다 육아철학이 존재하겠지만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요즘 널리 퍼진 육아 세계관이라고 보면 되겠죠.


가장 두드러진 장면은 간식 폭격입니다. 우선 아이들이 하원하면 엄마들은 가방에 한아름 싸 온 온갖 과자들을 펼치며 파티를 준비합니다. 제 아이와 가장 친한 아이는 젤리 마니아로 하원하자마자 양 볼에 하리보 젤리를 꼭 넣어줘야 하죠. 살살 녹여먹는 특기를 갖고 있습니다. 연년생으로 주로 할머님 손에서 자라난 두 남매는 돌이 되기 전부터 바나나킥을 섭렵한 고수들이라 항상 양손에는 성인들의 과자가 쥐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자극적인 과자를 먹고 싶을 땐 두 남매를 찾아가곤 합니다.(저도요) 유독 아이 건강을 챙기는 한 어머님은 과자를 먹고 있는 아이들 근처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견과류, 육포, 과일처럼 퀄리티 좋은 간식을 아이에게 먹여주죠. 그런 경계 때문에 그 아이는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진 못하더군요.


요즘 부모들은 과자, 사탕, 젤리 같은 초가공 식품을 별로 경계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주변 어머님들께 여쭤보면 아이들이 간식만 먹지 밥은 잘 먹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저희 아이도 가끔 친구들에게 간식을 많이 얻어먹으면 저녁을 잘 먹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조금만 먹게끔 조절해주려고 하고요. 예전에 읽었던 '초가공 식품'이라는 책에서 인위적으로 생산되는 식품에 들어가는 화학 첨가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자연식품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도 몇 가지 화학재료로 마법처럼 우리가 좋아하는 맛을 만들 수 있습니다. 초가공 식품은 사실상 식품이 아닙니다. 인공 향을 빼면 역겨워서 먹기 힘든 그런 종류의 제품이라고 합니다.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히 규명하기 어렵기도 하고요. 초가공 식품에 대한 경각심이 조금 널리 퍼지면 좋으련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제 아이라도 눈치껏 단속해야겠습니다.


요즘 부모님들을 보면 자녀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친구들보다 더 재미있게 옆에서 놀아주죠. 아이들 간의 다툼이 있었도 즉시 개입하고 살짝 다치거나 울음을 터뜨리면 주저 없이 달려가 안아주고 달래줍니다. 부모의 사랑이 가득 담긴 헌신적인 육아현장이죠. 그런데 저는 이런 과잉보호가 아이들을 연약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더 많이 개입할수록 아이들은 더 예민하고 까칠해지는 걸 목격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더 안절부절못하고 아이는 눈치껏 이런 상황을 이용하기도 하고요. 악순환입니다. 반면에 부모가 개입을 덜할수록 아이는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는 모습입니다. 과자 고수 연년생 남매는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방임상태로 성장을 했는데 아이들이 씩씩하고 성격도 무척 좋습니다. 아무에게나 가서 잘 안기고 아무 가방이나 뒤져서 과자도 잘 빼먹지요.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저는 부모의 태도가 아이들에게 많이 투사된다고 봅니다. 부모가 아이를 믿고 덜 개입할수록 아이는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것이죠. 아직 어린 아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마음만 강조하면 아이들은 딱 거기까지만 성장합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대단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옛날 우리네 할머니들은 유치원 나이 때부터 동생들 밥을 해줬잖아요. 혼자 아궁이에 불도 떼고요. 아이들을 과소평가해선 안 되는 것이죠.


지난번에 맑은 하늘에 아주 살짝, 진짜 느낌만 날 정도의 약한 소나기가 내린 적이 있습니다. 태풍이 몰려오는 것 마냥 어머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허둥지둥 실내 키즈룸으로 대피하시더군요. 결국 제 아이와 가장 친구인 남자아이만 덩그러니 놀이터에 남겨졌습니다. 시원한 비를 느끼며 즐겁게 놀았습니다. 이제는 흙은 만지면 안 되고 비는 맞으면 안 되는 독성물질이라도 된 것일까요."안돼, 만지지 마, 지지, 손 닦아"가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들립니다. 가방 속 물티슈는 항균 99%로 항상 대기 중이죠. 아이가 혹시나 병에 들지 않을까 하는 엄마의 애틋한 마음일 것입니다.


'부서지는 아이들'이라는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심리학자이자 작가 리타 아이켄스타인에게 요즘 많은 아이들이 공포증이나 불안을 겪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감각 경험이 부족한 탓입니다. 엄마 배 속에서 나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아이는 뒤쪽을 본 채 카시트에 앉게 됩니다. 또 어린이집은 얼마나 깨끗하고 조용한지 몰라요. 아이의 수면을 도와주는 백색소음기도 갖추고 있죠. 몸이 더러워질 일도 없어요. 밖에서 흙을 밟고 뛰어놀지 않으니까요. 정상적인 혼란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라는 거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겪어야 할 감각경험이 제한되면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최근 야외 화장실에서 볼일을 못 보거나 체육관 바닥에 편하게 앉지 못하는 아이들이 종종 보입니다. 이건 비정상이죠. 아이들은 흙을 밟고 비를 맞으며 자연스럽게 성장해야 합니다. 비를 맞고 흙으로 더러워져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더 튼튼해질 겁니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요.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경험하며 성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데 놀이터 어머님들이 가끔 이상하게 쳐다보시긴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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