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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Apr 25. 2024

다음은 네 차례야

일상드로잉

아내가 임신한 첫째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아이와 꼭 함께하고 싶은 몇 가지 희망 사항이 생겼다. 같이 손잡고 집에 가기, 목욕탕 같이 가기, 운동장에서 공놀이하기, 자전거 가르쳐주기 등 사소하지만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것들.


아이가 첫걸음을 내딛고 제법 잘 걷게 되자, 아내는 종종 아이와 함께 퇴근길의 아빠를 집 앞에서 맞이했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 들어오는 길이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때는 하루하루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이 기쁨이었고 기적이었다.    




요즘 아들이 자전거에 푹 빠져 있다. 또래 아이들이 킥보드 또는 자전거로 노는 것에 큰 호기심을 보이길래 작고 예쁜 네발자전거 하나를 선물해 줬다. 직접 안장에 앉아보곤 자기 자전거 맞냐고 방방 뛰는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비쌌던 자전거의 가격이 아깝지 않았다.


아내는 결혼 전까지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처녀 시절엔 겁이 많아 배울 엄두도 못 냈다는데, 내가 어디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겨 자신도 배우고 싶다 말했다. 나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예쁜 미니벨로 하나를 먼저 사준 후 타는 법을 가르쳐줬다. 배운 지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흔들거리던 자전거 손잡이는 앞을 향해 똑바로 나아갔고, 아내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바퀴 두 개가 주는 자유로움은 아내의 기대보다 좋았고, 자동차에 이어 자전거까지 가르쳐준 남편을 한동안 우러러봤다. (아내는 립서비스에 인색하지만, 이번만큼은 칭찬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소심하고 예민한 아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일은 이와는 달리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녀석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자신의 계획과 다르면 심하게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처음이라는 기억을 좋게 남겨주고 싶은 아빠는 마음을 비우고 아이의 기대감을 자연스럽게 부풀렸다.


처음 자전거에 탄 아들은 긴장으로 온몸이 경직돼 있었다. 뒤에서 안아주듯 자전거를 밀어주는 아빠에게 안정감을 느꼈는지 금세 몸에서 불필요한 힘이 빠졌다. 나는 손으로 페달을 직접 돌려주며 발을 구르는 방법과 브레이크를 밟는 법, 시선을 앞에 두고 손잡이를 고정하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쳤다. 녀석은 평소답지 않게 한 시간이 넘도록 말 한마디 없이 부지런하게 페달을 밟았다. 됐다 싶은 어느 순간 뒤에 있는 아빠를 의식하지 않고 따릉 소릴 내며 아들은 앞을 향해 나아갔다. 녀석의 뒷모습에선 활짝 핀 미소가 보였다.  


이젠 주말만 되면 아이와 자전거를 타고 노는 것이 일정에 포함되었다. 아들은 집에서도 매일 자전거에 올라 연습하듯 페달을 뒤로 헛바퀴 돌리며 타는 날만 기다린다. 한가한 주말 아침,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들에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다가왔다. 처음엔 단순 호기심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아들에게 같이 놀자며 손을 내밀었다. 쑥스러움 많은 아들이지만 평소 자신보다 나이 많은 형들을 좋아하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 어울렸다.


녀석은 바쁘게 쫓아다니는 아빠를 잊은 채 형들과 자전거를 타며 공원 구석구석을 쑤시고 다녔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학원에 다녀 바쁘거나 집에서 핸드폰 게임만 하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순박한 아이들도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약속도 필요 없이 알아서들 놀이터에 모이면 모든 것이 해결됐다. 나는 놀이터에서 형들에게 놀이를 배웠고, 그 경험을 다른 아이들과 긴 시간 동안 공유했다.


한때 골목대장이었던 아빠가 새로운 무리에 들어간 아들을 본다. 녀석은 무리에 뒤처지지 않으려 작은 몸을 쥐어짜 부지런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형들은 끊임없이 아이를 독려하고 이에 호응하듯 아들의 운전 솜씨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할 일을 잃은 아빠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십여 년 전, 지인을 따라 경기도에 있는 한 작은 사찰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파들거리는 작은 촛불들이 불단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주지 스님께서는 지인과 내게 차를 건네주며 말씀하셨다.


"지혜는 저 촛불과도 같아서 곁에 나눠주고 또 나눠줘도 그 크기와 빛을 잃지 않습니다."   



내가 배운 것들을 그대로 나눈 것이 몇 가지나 될는지 모르겠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아직 나는 이 길의 끝을 알 수 없다. 멀어 보이는 길은 잠시 잊고 가까운 곳을 본다. 아이 몸이 기억할 자전거의 처음이 아빠로부터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아들은 자라서 누군가에게 이를 그대로 전달할 것이고....


              

  

세상과 세상이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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