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꽃이 피었다. 아이와 함께 놀러 나간 집 앞 공원에는 길마다 작고 귀여운 산수유꽃들이 가지 위에 모여 있었다. 도심 속 숱 적은 산수유꽃들이지만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점처럼 노란빛이 흩뿌려져 내 눈으로 봄의 온기가 전해진다.
개나리, 산수유, 해바라기, 민들레 그 어떤 노란 꽃이 정겹지 않던가. 이름 아는 꽃 개수가 열 개도 채 안 되는 나지만, 노란 꽃들의귀여움은 참 좋다. 꽃을 좋아하면 나이가 든 것이라던데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뭐든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시기가 있다. 내 사십춘기에는 꽃이 찾아와도 좋겠다.
둘째와 공원 놀이터에서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고 놀아주었다. 아니, 아이가 나와 놀아준 것이다. 노는 내내 아빠가 아이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둘째의 에너지를 따라잡기엔 하찮은 연비를 갖고 있는 나는 한 시간도 안 돼 금세 피곤함을 느낀다. 하지만 숙련된 아빠라면달라야 한다.
정적인 놀이와 동적인 놀이를 적절히 섞어가며 휴식과 놀이를 반복한다. 아빠의 작은 손짓발짓에도 내 아이는 꺄르륵대며 맑은 웃음소릴 굴린다. 안아주려 하면 도망가고, 도망가면 다가오는 이 작은 녀석은 쉴 틈 없이 아빠를 들었다 놓는다. 문득 주변을 바라보니 노란 꽃 같이 작은 아이들이 공원에 있었다. 부모의 품을 가지 삼은 작고 노란 산수유꽃 아이들이 피어 있었다.
겨울은 늘 그렇듯 길었다. 하늘 아래 피조물들은 다시 찾아올 따뜻한 날들을 위해 웅크리고 인고했다. 그 사이 아이들도 겨울을 그냥 보내지 않고 저마다 싹을 틔웠다. 작고 노란 아이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가장 드라마틱한이때를 노란색과 아이로 추억하고싶다.
한낮의 공원엔 작은 산수유꽃들이 만들어낸 웃음꽃이 피었다. 맑은 웃음에는 활짝 핀 꽃이 연상된다. 꽃과 나무는 그렇게 서로를 안아주고, 아이와 나는 발을 구르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