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시는 왜 04화

두려운 것

by 김박은경

하루 이틀 저녁의 허기가 지옥이라고

두려운 건 오직 그것이라고


공복의 한 걸음 두 걸음은

너무 멀어서 신도 찾지 않는다고

아무리 원해도 구해도 빌어도

만난 적이 없다고


신호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바뀐다 해도

어떻게 어디까지 언제까지

앞이 아니라 밑으로 가고 있다면


도로 위에 멈춰 선

텅 빈 무덤 한 채,


봄꽃은 떨어지고 지는 해는 불타오르고

불붙은 차들이 무섭게 달리는 8차선 도로를

느릿느릿 걸어가는 저 노인의 두 눈은

감은 건지 뜬 건지 다만 바닥을 향한 채

형광조끼를 입고 작은 몸을 구부리고

고분처럼 쌓인 폐지 끝에 매달린 채


선지자여 당신은 진정으로

무엇이 두려운가 묻는다면

밤은 더욱 밤을 향하여




KakaoTalk_20221109_225002805_01.jpg (2022 MMCA서울, 최우람 [작은방주] 중 <천사>)

신호를 기다리던 8차선 도로였어요. 퇴근길 정체가 심해서 가는가 하면 멈추고 다시 가는가 하면 멈춘 채 지지부진하였습니다. 이쪽 차선도 저쪽 차선도 지친 차량과 지친 얼굴들로 가득했어요. 그 사이로 커다란 물체가 있었습니다. 폐지더미였어요. 형광 조끼를 입은 아주 작은 노인이 산더미만큼 쌓인 폐지를 싣고 도로를 가로질러 가시는데 그곳은 건널목도 아니었습니다. 느릿느릿 간신간신 움직이는 아니 움직이려고 파고들려고 애를 쓰는 그를 향해 아무도 클락션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붉은 신호등이었으니까요.


눈 감고 귀 막고 길을 건너기를 멈추지 않는 까닭은 공복 때문입니다. 무섭고 두렵고 힘들어도 하던 그 일을 멈출 수 없는 건 배가 고프기 때문이에요. 돈이라는 게 없을 때면 단돈 천 원도 없을 수 있으니까요. 가난은 눈치도 없고 염치도 없어요. 허기는 이목구비가 아예 없고요. 배가 고프면 누구라도 뭐라도 해야 합니다. 뭐라도 달라고 아우성치는 입이 거대한 싱크홀처럼 느껴집니다.


신호가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역광으로 보이는 리어카가 한 채의 작은 무덤처럼 보이네요.


모든 것이 진동 속에 있다면 삶도 죽음도 진동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한 기의 무덤도 움직이는 중이겠지요. 사라지면서 살아나기를 되풀이하고 있겠지요. 무덤 속의 존재가 흙이 되고 풀이 되고 짐승이 되고 사람이 되고 언제나 무엇이 무엇이 되고 더욱 되고... 이 숨이 저 숨과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겠지요. 어두워지는 도로가 펄떡펄떡 뛰는 혈맥처럼 보입니다. 붉은 후미등이 찬란하네요.


p.s. (p.s.로 쓰기에 적절치 않은 질문입니다만) 신은 정말 존재할까요. 있을 수 없는 비참이 일어날 때, 흡사한 참사가 되풀이될 때 아무도 죄지은 자가 없다고 할 때 세상의 신은 과연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전지전능하고 만능인 신이 왜 이런 일을 주시하는가 따지고도 싶습니다. 신도 늙고 외롭고 지치고 허기진 노인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신이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신이라면 게임 속 캐릭터처럼 위풍당당 천하무적의 존재였으면 좋겠습니다. 압도적인 게임 체인저로 멋지게 강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우리들 내부에 신이 거하신다고요? 그렇다면 저는 좀 더 유연하고 지혜롭고 자유로운 제 자신(自神)을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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